▶약국에서 일하고 있는 박훌륭 작가│글담출판사
약국에서 책방 운영하는 박훌륭 약사
“내가 일할 때 가장 우선으로 생각했던 것은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로 인해 보람을 느끼고 싶었는데 그게 힘들었다. 진심으로 대했던 인사는 대답 없는 사람들을 겪으며 소심하게 잦아들었고 방어적으로 변하며 급기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또 전문가 입장에서 내가 상대를 생각해 권하는 약들이 거부당하고 광고품의 가격만 흥정하려 할 때는 힘이 빠졌다. (…) 그렇게 의기소침해 있던 나에게 딱 맞는 약 처방이 책방 운영이었다.” (‘경계가 사라지고’ 중에서)
여기 본업이 약사인 사람이 있다. 그의 일상은 언뜻 보기엔 평범하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비범하다. 약을 조제하고 필요한 약을 주문하고 손님들에게 약을 권하는 사이마다 끼워 넣은 일들이 예사롭지 않다. 약사 업무 이외에 그가 하는 일은 책 리뷰 쓰기, 책 주문하기, 책 정리하기, 도서 이벤트 기획하기다. 그의 또 다른 직업은 책방 주인이다. 먹고사는 일과 좋아하는 일의 균형을 맞추며 오래오래 재미있게 살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에세이 〈약국 안 책방: 아직 독립은 못 했습니다만〉을 발간한 박훌륭 작가를 인터뷰했다.
▶약국 한 귀퉁이에는 책방을 찾은 손님들의 메모가 붙어 있다.
‘워라밸’ 위한 자신만의 현실적 돌파구
그는 책에서 “거절당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한 가지를 잊고 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 자신을 거절하고 있다는 거다. 특히 내 욕구,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거절한다. 다른 이에게도 거절당하는데 나 자신까지 거절해야 할까?”라고 질문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거절하지 않기로 결심한 날 그는 책방 운영을 다짐한다.
“거절은 주로 인내심이 강하고 꾸준한 사람들이 더 많이 겪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거절한 행위에 대해 언젠가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걸 생각합니다. 그게 나중엔 나를 향한 원망을 넘어서 주변인들에 대한 실망과 원망으로 바뀌기도 하죠. 약국 안에 책방을 낸 계기는 책에도 썼지만 사람들에게 받은 수많은 거절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마저 시간과 공간을 핑계로 거절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죠.”
언젠가부터 ‘부캐’(부캐릭터의 줄임말)처럼 일에 대한 신조어들이 생겼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오늘도 일과 생활의 확실한 분리라도 되면 좋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산다. 그 속에서 등장한 신조어들은 지금 하는 일 이외에 진짜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의 또 다른 표현 아닐까.
일과 사생활을 자로 잰 것처럼 구분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일찌감치 불가능함을 깨달은 박 작가는 현실적인 돌파구를 찾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약국 안에 책방을 차려 겸업을 시작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시되는 시대에 그는 쉼과 먹고사는 일의 균형이 아닌 취미를 또 다른 일로 바꾼 것이다. 책 읽는 취미가 좋아하는 일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는 뭘까? 즐거운 노동이 가능할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 또한 일이고 힘들지만 좋아하기 때문에 지속하고 또 사람들과 주고받는 긍정적인 에너지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요. 한번에 거창하게 놀이나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뭐든 작게 시작해서 서서히 상황에 맞추며 즐겼으면 좋겠어요.”
▶약국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아직 독립 못 한 책방’
좋아하는 일을 대하는 긍정적 에너지
책방을 차린 2018년 8월 이후 그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책에서 저자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책방을 운영하며 신 나기까지 했다”고 표현한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방 손님을 묻는 질문에 그는 “웬만하면 다 기억에 남는다”고 답했다.
“교보문고처럼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곳은 아니라서 웬만하면 다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가까운 곳이 아닌 멀리서 찾아주신 분들은 더 기억에 남죠. 일이 있어 서울을 들르면서 일부러 ‘아독방’(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을 찾아주시는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런 감사한 것 하나하나가 제가 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이유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대하는 저자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졌다.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좋아하는 일도 즐겁게 하는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약국 안 책방의 이름은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이다.
“‘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은 참 단순한 생각으로 지은 이름이다.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하고 지었는데, 첫 번째는 실제로 우리 책방이 약국 한쪽 구석에 함께 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숍인숍(shop in shop)의 개념인데 사실 기세가 강하지 않아서 근근이 연명하는 느낌이다. 두 번째 의미는 선배 독립 서점들에 보내는 존중과 존경의 의미다. 여긴 아직 독립‘도’ 못 한 책방이라는 뜻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해서 운영하는 여러 독립 서점들에 비하면 너무 소소하고 아마추어적이라는 의미다.” (‘시작을 하긴 한 건가?’ 중에서)
코로나 우울 극복 위한 다양한 이벤트
그는 약국을 운영하며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특히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를 극복하기 위한 이벤트를 꾸준하게 열었다. 가정의 달인 5월에 진행한 이벤트는 가정 방문이었다. 직접 책 배달을 가는 것이었다. 경기도 안성, 전북 전주, 제주까지 당일치기로 책 배달을 다녔다. 책방과 약국이 공존하는 곳, 그곳에서 그는 점심을 먹으면서 손님을 응대한다.
“점심을 먹는다. (정해진 점심시간은 없다.) 먹다가 일어나서 손님 응대를 한다. 밥을 한 숟갈 먹는다. 일어나서 손님을 맞이한다. 그렇게 점심시간을 보낸 후 오후를 맞이하고 오전과 비슷한 일을 반복한다. 자영업자니 특별한 세금 이슈가 있으면 자료를 준비하고 제출하고 돈 내고…. 이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투리 시간에 개인 업무와 취미 생활을 모래로 바꾸어 채워 넣는다.” (‘시간을 달리는 남자’ 중에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마치고 퇴근하는 마음은 어떨까? “약국 문을 닫고 퇴근할 때면 항상 ‘아,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유독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날은 기분 전환을 위해 막춤을 좀 춥니다. 집에 가면 예쁜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잠깐이나마 아이와 이야기하고 소통하며 하루를 마감합니다. 자기 전엔 ‘오늘도 고생했다!’ 하는 맘이 가장 크죠.”
박유리 기자
▶박훌륭 작가가 자신이 쓴 에세이 <약국 안 책방: 아직 독립은 못 했습니다만>을 들고 있다.│글담출판사
코로나 시대 더 빛나는 책 읽기
책 읽으며 코로나 우울 극복을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를 극복하기 위한 박훌륭 작가만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코로나 블루가 올 때면 이벤트를 합니다. 이벤트를 하면 나도 즐겁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해서 함께 어려움을 극복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습니다. 대면이 힘든 요즘은 혼자 할 수 있는 취미 생활도 도움이 됩니다. 그중 하나가 책이고 음악을 듣거나 춤을 추는 것입니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많은 사람이 내색하지 않지만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습니다. 내색하지 않지만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정말 다양한 분야가 있어서 웬만한 취향은 다 맞출 수 있거든요. 대형 출판사, 대형 작가의 책뿐 아니라 숨겨진 보석 같은 책과 작가들도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고 또 그것으로 여러 사람이 잠시라도 위안을 느끼면 좋겠습니다.
-책은 사람들에게 어떤 위안을 줄까요?
=책은 지금과 같은 시대에 더욱 빛납니다. 대면이 꺼려지고 어딜 가기도 힘든 상황에서 간접 경험이라는 건 정말 소중하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요. 책을 읽으면 (저자와) 대화를 하게 됩니다.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며 즐거울 수 있다면 최고겠지만 그게 힘든 상황이라면 책이 대안이지 않을까요?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책을 읽는 사람도 더 많아졌고요. 그걸로 위안을 얻는 사람 또한 많아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 여기저기 작게 숨어 있는 독립서점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인터넷에서 고르는 책이 아닌 조금만 걸어가면 책을 직접 보고 고를 수 있다는 건 이런 시대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에요.
-코로나19로 책방에 생긴 변화는 무엇인가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일단 오프라인으로 자주 찾아주시던 손님들이 쉽게 오기 힘든 상황이 됐고 ‘아편책’(아주 편한 책이야기) 같은 북토크를 진행할 수 없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온라인 아편책을 위해 2021년 1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유튜브로 또 다른 재미가 생겼지만 지금은 라이브 방송을 위해 게스트를 모시는 것도 코로나19 때문에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안타깝습니다. 코로나19로 독립서점들은 많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원래도 좁은 장소여서 수용 인원이 적은데 좁은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오기 힘들게 됐죠. 많은 책방이 온라인으로도 주문할 수 있도록 급히 바꾸긴 했지만 그마저도 기존의 대형 온라인 서점보다 부족한 콘텐츠와 자금력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