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안나 작가│임안나
코로나19 사진전 <거리의 기술> 임안나 작가
“사회를 배우는 최초의 교육제도이자 환경인 유치원에서 실행되는 모든 것은 이제까지 어른들이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에 근거한 최선의 내용과 배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사회 공동체도 극복하지 못한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 유치원은 어떤 환경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호기심을 안고 그 세계로 들어가 보았다.”
코로나19 사진 전시회인 <거리의 기술>에 참여한 임안나 씨의 ‘작가 노트’에 적힌 글이다.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 숫자 뒤에 숨겨진 시민들의 삶을 드러내는 전시다. 임 작가는 코로나19 하면 떠오르는 바깥 공간이 아닌 내부의 공간, 특히 어린 아이들이 모이는 유치원을 선택했다. 그는 유치원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감염자와 사망자의 수치를 인식하는 일, 마스크를 쓰는 일, 안전한 만남을 분류하는 일들이 버거울 때마다 아이들이 마주하는 이 상황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고 답했다.
‘2019 프랑스 아를국제사진축제’에서 ‘포토폴리오(Photofolio) 리뷰 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그는 당시 수상 소감에서 “사진은 질문하는 매체”라고 말했다. 아를국제사진축제는 1888년 반 고흐의 작품 소재가 되기도 한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에서 해마다 열리는 세계적 권위의 사진 축전으로 ‘사진계의 칸’으로 불린다. 1977년 김중만 작가가 ‘젊은 작가상’을 받은 이후 42년 만의 수상이자 ‘포토폴리오 부문’에서 첫 수상이었다.
▶임안나 작가의 ‘코로나19 모아유치원 B-1’│임안나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 던진 아이들
코로나19를 맞은 유치원의 풍경, 임 작가의 사진 앞에서 관객들은 수많은 질문을 받는다. 정작 사진을 찍은 작가는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걸까? 그는 “유치원과 아이들의 긴장감은 어떨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훗날 이 상황을 어떻게 기억할지 어른들은 그들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지 아니 예측이라는 것은 가능한지 질문을 시각화하려고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임 작가는 모든 사진이 질문하는 매체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임 작가는 “사회 상황이나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작업은 개인 경험이나 시선이라도 그것을 공유할 때 자연스럽게 질문의 형식으로 작동한다”며 “기억 속에 저장된 어떤 것을 꺼내어 연상하고 또는 사진 속 멈춰진 사태가 다시 생동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 이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와 사진 속 장면 그리고 관객의 반사 작용이 엉키면서 공감, 충돌, 추측 속에서 다양한 문답이 오간다”고 설명했다.
카메라를 들고 찾아간 임 작가에게 아이들은 왜 사진을 찍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답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 크리스마스가 오면 마스크를 안 쓰게 되고 그때는 지금 이렇게 마스크를 쓴 모습이 재미있을 테니 기억하기 위해 찍는 거지.” 임 작가가 아이들에게 답했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직접 찍어보겠다고 해 임 작가가 카메라를 목에 걸어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고 찍히는 행위에 익숙해졌고 작가가 찍은 사진이 맘에 안 든다며 지워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마스크를 쓰기 때문에 아이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소리를 크게 내야 했다. 그때 임 작가는 아이들의 미세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기보다 서로에게 달려가 정면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손동작과 눈빛을 통한 미세한 동조와 부정을 알아내고 알려주고 있었다. 아이들과 만나면서 목이 쉰 건 나 하나뿐이었다.”
▶임안나 작가의 ‘코로나19 모아유치원 G-1’
불안 정서보다 더 가혹한 불안의 기운
촬영은 두 갈래로 진행됐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생활을 담는 것과 세상을 향해 무언가를 발언하는 독자적인 존재로서 한 명 한 명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일이었다. 임 작가는 “그들이(아이들이) 공동체에 내려진 이 ‘형벌의 시기’에 찾아온 미력하지만 무력하지 않은 새로운 에너지와 이야기를 안고 미래에서 온 메신저처럼 여겨졌다”며 “아이들이 평소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과 교구들을 더미로 쌓거나 바닥에 깔아 일상적이었던 물건과 공간을 비일상적인 것으로 재구성하고 아이 한 명 한 명을 카메라를 향해 장면을 이끄는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껏 전쟁 무기를 소재로 한 <차가운 영웅> 등 작품의 주요 정서로 불안을 다뤘다. 코로나19 속에서 불안은 과거 그가 다룬 불안과 어떤 지점에서 같고 어떤 지점에서 다를까? 임 작가는 2010년부터 작업한 <차가운 영웅> <불안의 리허설> 등의 작업에 대해 “타인의 고통과 우리 사회의 재난이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관람자에게 전해지고 또 체감돼 불안이라는 정서에 다다르게 될지 관심을 뒀다”며 “이 모든 비극이 구경거리 이미지로 소비되는 건 아닐까 하는 가설로 작업했고 실제 재난과 비극적 이미지 그리고 불안과 불감증의 혼재가 주요 화두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코로나19의 위험성은 달랐다. 그는 “시각적인 충격에 의한 불안이라기보다는 데이터와 정보 같은 과학 자료나 뭔가 사라지고 정적이 느껴지는 기이한 풍경에서 오는 불길함인 것 같다”며 “인적이 사라진 풍경과 만날 수 없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사투는 불안의 정서보다 더 가혹한 불안의 기운인 듯하다”고 답했다.
▶임안나 작가의 ‘코로나19 모아유치원 A-1’│숲과나눔
거리두기가 생활의 타격이 된 사람들
이번 전시명은 <거리의 기술>이다. 거리두기의 기술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고 있을까?
“서로가 합의하고 지켜야만 가능한 거리의 설정과 유지는 기술(技術)이 필요한 것 같다. 소외되지 않는 소속감을 주면서 종속되거나 불편함을 주지 않은 관계 미학의 기본처럼 말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는 선택이나 미덕이라기보다 사회적인 공공의 합의가 중요했기 때문에 개인의 특성에 따라 거리두기가 소외와 생활의 타격으로 다가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사회가 대의와 효율에 집중하느라 또는 나 개인과 가족의 안녕에 몰두하느라 지나친 사람들, 상황들, 사연들을 찾아가 바라보고 귀 기울여 다가가 보기, 그것이 전시가 기술(記述)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이다.”
코로나19 상황은 작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서울 상명대 사진영상미디어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처음 비대면 수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작가로서는 코로나19 초기에 전시 활동을 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상황에 맞춰 미뤘던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생활에서는 코로나19를 핑계로 만남의 거절과 연기가 쉬워졌다. ‘사회적 관계 다이어트’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누리소통망(SNS), 가상세계에서 활동이 늘어나 균형감을 잃었다”며 “(이제는) 일상의 범주와 내용이 오롯이 나 자신의 몫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유리 기자
예술가 시선으로 코로나19 일상 기록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사업 공모
예술가의 시선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역·의료·교육·예술 현장 등을 기록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사업을 45억 원 규모로 새롭게 추진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예술로 기록’ 사업은 코로나19로 변화된 일상의 아픔과 희망을 예술가들의 창의적 시선과 다양한 예술적 표현 양식을 통해 기록하고 보급해 사회적 정서 치유와 시대적 연대 회복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코로나19 장기화로 창작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가들의 활동을 지원함으로써 침체된 예술창작 활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역·의료·교육·예술 현장 등 다양한 일상과 사회 모습, 목소리를 예술가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활동계획(프로젝트)을 공모한다. 공모에 선정된 예술가(팀)는 원고, 영상, 이미지, 오디오, 복합 형식 등으로 기록물을 창·제작해 보존하고 온라인으로 공개해야 한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8월 말) 예술활동 경력 중 대표 활동을 증빙할 수 있는 예술가 개인 또는 팀(최대 10인)이 이번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 10월 8일까지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www.ncas.or.kr)을 통해 신청서를 접수한다. 공모에 대한 문의 사항은 별도의 질의응답(FAQ)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수 활동 결과물에 대한 기록 보관도
아울러 문체부와 위원회는 이번 사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기록 활동계획 의도부터 예술가들의 활동 과정 등을 담은 홍보 영상 ‘미리 가보는 예술로 기록 산책’을 제작하고 국민이 우수 활동 결과물을 직접 선정하는 참여형 행사도 추진한다.
그뿐만 아니라 온라인미디어 예술활동 누리집(artson.arko.or.kr)에 우수 활동 결과물을 보관(아카이빙)해 대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코로나19 일상 기록을 보존한다. 누리집에서는 기록 콘텐츠를 분야나 유형뿐만 아니라 참여자와 주제별로도 분류해 접근성을 높일 계획이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아직도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힘을 합쳐 코로나19 어려움에 대응했다. 이번에 예술가의 시선과 방식으로 이러한 과정을 기록해 국민 정서를 치유하고 예술의 사회 가치를 다시 한번 새겨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