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홍엽의 계절이다. 또한 오곡백과 무르익어 식욕을 당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붉은 색 계열은 다른 계열보다 식욕을 자극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인류가 오랫동안 사과와 체리 등 과일과 육류를 먹어서 그렇다 한다. 고추 양념과 김치, 고추장 류 등을 즐겨 쓰는 한식에는 대체적으로 빨간색이 많지만 그중 떡볶이는 유독 붉다.
간식의 대명사로 꼽히는 떡볶이에도 따로 제철이 있다. 바로 햅쌀이 나는 가을이다. 도정을 마친 햅쌀로 가래떡을 뽑자면 향긋한 쌀 향이 감돌며 찰진 맛까지 좋다. 지금이야 밀떡, 쌀떡을 따지지만 떡볶이의 원형(궁중떡볶이)은 당연히 쌀떡을 썼다. 쌀도 귀했지만 밀은 더욱 구하기 힘들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바뀌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밀떡은 귀한 쌀을 쓰지 못하던 시절에 대용품으로 생겨났다. 막걸리도 쌀로는 빚지 못했다. 1970년대 생까지는 어린 시절 떡볶이라 하면 당연히 밀떡이 익숙했다. 이후 다시 돌아온 쌀떡이 지금 떡볶이의 뜨거운 인기를 이끄는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다.
떡볶이는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지금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고기와 해물, 채소 등을 떡과 함께 간장에 조렸다. 떡만 해도 값진 재료인데다 진귀한 식재료가 한 가득 들었으니 민가에선 엄두를 못냈다. 궁중에서 수라상에 올렸다.
현재의 떡볶이를 조리 형태로 구분하자면 일반적인 떡볶이, 국물 떡볶이, 즉석 떡볶이, 기름 떡볶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일반 떡볶이는 조림 형태다. 끈적하니 양념에 조려 그대로 집어 먹는다. 보통은 사각 어묵이나 양배추, 대파 등을 함께 넣어 조리는 경우가 많다.
국물 떡볶이는 글자 그대로 흥건한 국물이 포인트다. 국물에 다양한 사리나 부재료를 적셔 먹는다. 주로 튀김 종류를 적시거나 만두를 넣는다. 떡볶이 국물을 기본으로 많은 분식류를 포용할 수 있다.
즉석 떡볶이는 냄비를 앞에 놓고 끓여먹는 떡볶이다. 처음부터 쫄면이나 라면 사리를 넣기도 하고 자신 입맛대로 다채롭게 조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최종적으로 밥을 볶아 먹기도 한다.
기름 떡볶이는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지진 다음 양념을 한 떡볶이다. 가장 전통적 방식으로 조리하지만 매끈한 떡 맛에 익숙한 이들이 많아 보편적 떡볶이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1970년대부터 떡볶이의 ‘빨간 열풍’이 전국을 휩쓸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매운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대구 지방이 떡볶이로 유명해졌다. 전국 ‘몇 대 떡볶이’니 하며 호사가들이 꼽은 떡볶이 맛집 중 많은 곳이 대구에 위치하고 있다. 고추가 많이 나는 경상북도의 중심 도시에 소비가 발달한 지역이거니와 학교가 많은 교육도시라 그렇다. 호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에게 맛있고 든든한 떡볶이는 최고의 간식이 됐다.
시내 중심가 동성로와 중앙로는 물론이며 각 학교 앞이나 재래시장에는 어김없이 맛좋은 떡볶이 집이 자릴 잡고 있다.
신떡, 중떡, 달떡 등 이름난 떡볶이집은 이제 누리소통망(SNS)을 타고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으며 떡볶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한 가게도 대구에 많다.
대구의 떡볶이집은 대부분 저렴하고 이것저것 곁들여 먹을 메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기름에 튀겨낸 어묵이나 만두 등을 떡볶이 국물에 적셔 맛이나 영양적으로 보강을 해 먹는 경우가 많다. 매운 정도 역시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어 더욱 좋다. 따지고보면 이만큼 포용력 있는 음식은 드물다. 동서고금을 통 털어도 훠궈나 퐁듀 정도 밖에 없다.
비단 대구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떡볶이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모른다. 추억의 음식이라 50대 중년까지는 각자 자신의 사연이 담긴 떡볶이집을 가슴 속에 간직하는 이들이 많다. 동네마다 단골 떡볶이집이 하나쯤 있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학교 앞 떡볶이집은 주된 내용이 펼쳐지는 공간이 됐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여고 앞 브라질 떡볶이의 경우도 그렇다.
낙엽이 새처럼 날아드는 도심 수직 빌딩 숲. 이 붉은 색 음식은 우리에게 허기와 한기를 날리고 입맛까지 살린다. 가을 밥상 위에 매혹적인 단풍이 들었다. 대구로 단풍놀이를 갈 채비를 해야겠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전국 유명 떡볶이집
★대구 윤옥연할매떡볶이
매운 국물떡볶이로 유명하다. 후추와 땡초(매운 고추)를 적절히 배합한 얼얼하고 매콤한 양념이 흥건한 국물 속에 녹아들었다. 밀떡을 쓰며 국물에 튀긴 어묵과 만두를 적셔 먹는다.
주소 대구 수성구 들안로77길 11
메뉴 떡볶이, 만두, 튀긴어묵, 쿨피스
★부산 범일동 매떡
엄청나게 ‘매운 떡볶이’로 소문났다. 큰 가래떡에 끈끈히 묻은 양념은 국내산 고추와 후추를 섞어 맛을 낸다. 얼얼한 혀를 씻어주는 팥빙수는 필수다. 버석한 얼음에 달달한 팥과 미숫가루를 얹은 별 것 아닌 맛이지만 떡볶이와는 궁합이 좋다.
주소 부산 부산진구 골드테마길 52-2
메뉴 떡볶이, 만두, 김밥, 순대, 팥빙수
★고양 어디로가든
최근 새로운 매운 맛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마라 양념이 적절히 녹아든 국물 떡볶이를 선보인다. 쓰촨 지방의 명물 마라 국물에 떡, 채소와 비엔나 소시지 등 다양한 재료가 들어 안주와 끼니를 동시에 해결하는 메뉴다. 푸짐한 재료가 퍽 새로운 매운맛의 국물에 잠겨있다.
주소 고양시 일산서구 일현로 97-11 지하 1층
메뉴 떡볶이
★창원 625 떡볶이
과거 마산 부림시장 좌판에서 시작했는데 손님들이 모두 바닥에 쪼그려 앉아, 떡볶이를 먹는 광경이 꼭 전쟁 당시 같다고 해서 이처럼 독특한 상호가 생겨났다. 건어물을 넣어 깊은 맛을 내는 육수에 칼칼한 고춧가루를 써 시원한 뒷맛이 난다. 떡볶이는 기본 쌀떡을 쓴다.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써 개운하다.
주소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북 12길 16-23
메뉴 떡볶이, 군만두, 튀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