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물냉면
우리나라는 냉면 종주국이다. 세상에 그런 음식은 없다. 용암처럼 절절 끓는 뚝배기와 식탁 위 불판으로 대변되는 우리 음식문화는 외국인에게 ‘충격과 공포’를 줄만한 열식(熱食) 문화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겐 실로 차력에 가까운 묘기이자 진풍경이다.
여름하면 또 살얼음 낀 차가운 냉국이나 냉면으로 대표되는 궁극의 냉식(冷食) 문화도 있다. 극단적이다. 온도 차가 100도 가까이 난다.
중국엔 량반미엔(凉拌麵)이 있고 일본에도 자루소바를 식힌 쯔유(가다랑어로 맛을 낸 일본식 간장)에 찍어 먹긴 한다. 하지만 ‘서늘할’ 뿐 ‘차가운’ 음식은 아니다. 찬물이나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고 여기는 중국에선 차가울 렁(冷) 자를 음식에 쓰는 것조차 경계해 서늘하다는 량(凉) 자를 고집한다.
뚜렷한 사계절을 품은 탓일까? 한식의 세계에는 열식과 냉식이 공존한다. 팔팔 끓어오르는 뚝배기나 전골, 석쇠 얹은 숯불 화로를 끼고 먹었지만 그 옛날부터 벌써 빙고(氷庫)를 두고 얼음을 저장해 음식에 썼다(<삼국유사>에 얼음 저장을 관장하는 관청 빙고전이 등장한다).
왕은 여름에 신하에게 얼음을 내려 다양한 음식에 쓰게 했다. 화채 같은 음식이 상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겨울철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는 빙고 덕이다.
차가운 음식 중엔 냉면이 있다. 주로 겨울철에 먹던 음식이지만 근대 들어선 차가운 우물물을 길어다 여름에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지역마다 다양하게 발달했다. 그중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유명하지만 해주냉면과 진주냉면 등 지역마다 다양한 냉면 문화가 있어 입맛을 충족시켜왔다.
경상남도의 거대 읍성이었던 진주가 원조인 진주냉면은 그간 알고 지냈던 냉면과는 결이 좀 다르다. 냉면이야 애초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아무나 접하기 어려웠다지만 특히나 진주냉면이 그렇다.
당시 진주 양반들의 식문화에서 선주후면(先酒後麵·술을 마신 다음 국수를 먹음)으로 먹었다는 냉면은 맥이 끊겨 지금과 같은 조리법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이어졌다 해도 식재료의 면면이 과거의 것과 같지 않아 그 맛은 고스란히 보존될 수 없다. 마늘, 생강도 배추와 무도 그저 50년 전의 것과도 확연히 다른데 조선시대의 것을 어찌 그대로 복원할까? 문헌을 따라 재현했느니 하는 것은 그저 추측일 뿐이다.
1994년 북한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평양과 진주의 랭면이 제일”이란 내용이 나오지만 그 이전까지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진주냉면이 소설 같은 개인 기록에 등장한 것은 1972년에 나온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이다. <지리산> 1권에 진주냉면을 좋아하는 구사마 선생이 등장한다. 이후 1985년에 편찬된 <한국요리문화사>(이성우)에 비로소 진주냉면이 등장한다.
이때는 이미 1966년 진주 중앙시장 화재로 인해 맥이 끊긴 시점이다. 화재 당시 진주냉면을 팔던 수정, 은하, 평화식당 등이 모두 폐점하며 예전 냉면 조리법은 사라졌다.
지금의 진주냉면은 다시 일어난 것이다. 나름대로 조리법으로 타 지역 냉면과 차별화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육전
소고기나 돼지고기 육수가 아닌 해물을 써서 육수를 낸다는 점이 평양냉면과 큰 차이다. 디포리(밴댕이), 멸치, 말린 홍합, 바지락, 건새우, 다시마 등 해산물에 고기 육수를 섞어 식힌 다음 국수를 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눈에 들 만한 특징이 있다면 바로 화려한 고명이다. 대부분 평양냉면집은 삶은 고기를 꾸미로 얹는데 반해 진주냉면은 달걀옷을 입혀 부쳐낸 육전을 썰어 올린다. 여기다 알고명(지단), 실고추, 버섯 등을 얇게 썰어 얹는데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조리법이다. 다양한 재료를 미리 준비해야 하니 품도 많이 들고 이를 다루는 칼솜씨도 있어야 한다. 여염집에선 엄두를 내기 힘든 양반 문화임을 알 수 있다. 양반이 많이 살던 개성이나 전주의 전통 음식 또한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이 특징이다.
미디어나 대량자료(빅데이터)상 진주냉면 대표 맛집으로 꼽히는 식당이 몇 집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옥과 황○냉면, 산○ 등 현대의 진주냉면을 지역 명물로 알린 공들이 크다.
오이채나 황태포를 올리는 등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타지역 냉면에 비교해 진주냉면이란 차별점을 유지하고 있다. 소고기 사태와 해산물로 우려낸 진한 육수에다 메밀과 전분을 섞어 뽑아낸 면을 말아낸다. 차가운 육수는 입에 들어간 순간 향을 스멀스멀 피우고 면발은 탱글탱글 탄력 있게 혀에 감긴다. 척 보기에도 화려한 담음새 하며 식재료의 면면 또한 고급스럽다. 평양냉면의 수수하고 투박한 맛과 달리 진하고 강렬한 인상을 미각에 남긴다.
보통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보드랍게 지져낸 육전까지 곁들여 먹는다. 같은 지역 별미인 진주비빔밥도 함께 팔아 한 번에 모두 즐길 수 있지만 진주비빔밥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은 중앙시장 인근에 따로 있다.
여느 한국인의 입맛처럼 시원한 국물에 말아 한그릇 쪼로록 빨아들이는 냉면을 좋아한다면 진주를 찾아 다녀올만 하다. 코로나19 여파로 올 가을엔 유등축제가 열릴지는 모르겠으나 수확의 계절에 눈도 입도 만족하는 식도락 여행지로 진주가 딱이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