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경기도 파주트레이닝센터(N F C)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대표팀 2차 소집 훈련에서 김학범 감독이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대한축구협회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빗대 ‘학범슨’으로 불리는 김학범(61) 감독의 꿈은 이뤄질 것인가?
명문대 출신도 아니다. 국가대표 경력도 없다.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이다. 흔한 말로 축구계의 ‘흙수저’ 김학범 감독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역대 우리나라 축구 최고의 성적을 꿈꾸면서 축구팬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스타 출신은 아니지만 지도자는 또 다른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그의 행보에는 ‘독한 맛’이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20 아시아 23세 이하 축구챔피언십 금메달 획득은 최근 3년간 완숙기를 맞은 그의 지도력을 보여준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일궜던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성과 이상을 넘본다.
근거 없는 전망은 아니다. 코로나19로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공백기가 길어졌지만 그는 수시로 K리그 현장을 찾아가며 선수들을 관찰했고 기회만 나면 올림픽팀을 소집해 조직력을 끌어올렸다. 2021년 1월, 3월, 6월에도 소집훈련을 소화했고 K리그 팀과 3월 실전 연습(3전 3승), 6월 가나 평가전(2전 2승)에서 승리 행진을 펼쳤다.
6월 30일 이뤄진 최종 엔트리 18명의 발표 과정을 보면 그는 선수 선발에서 개인적인 친소관계나 주관적인 평가는 최대한 자제한다. 6월 22일 이뤄진 최종 엔트리 발표 직전 마지막 소집훈련에서는 지금까지 각종 경기에서 팀에 큰 공헌을 해온 조규성, 오세훈(이상 김천 상무)을 단칼에 탈락시켰다. 일정한 기준점을 제시한 뒤 여기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내치는 모습에서 그의 냉혈함이 보인다.
7월 22일 뉴질랜드와 조별리그 1차전
강릉농공고, 명지대, 국민은행 출신의 그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오로지 실력으로 결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조금이라도 비교 우위가 있다면 그 선수가 뽑힌다.
물론 선수 선발 기준은 뚜렷하다. 최상의 몸 상태, 헌신성, 체력은 중요한 요소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월드컵의 23명 엔트리와 달리 올림픽에서는 골키퍼 2명을 제외하면 필드 플레이어는 16명밖에 안 된다. 이 인원으로 무더위 속에서 최대 6경기를 치르려면 체력적으로 준비돼 있어야 한다. 전술적으로도 여러 위치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가 중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두 16개국이 출전하는 올림픽 본선에서 B조(한국·온두라스·뉴질랜드·루마니아)에 속한 우리나라는 7월 22일 뉴질랜드와 조별리그 1차전을 벌인다. 이어 25일 루마니아, 28일 온두라스를 상대한다. 모두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지만 못 넘을 산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경우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볼 수 있다. 이는 동기 부여 요소다. 일본과는 시차가 없고 이동 거리도 짧다. 강온 양면의 선수단 관리로 조직을 장악하는 김학범 감독의 리더십도 선수단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조별리그를 통과해 8강에 진입한다면 그때부터는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바로 이웃한 A조(일본·남아공·멕시코·프랑스) 팀과 8강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8강전 대진은 B조 1·2위와 A조 2·1위로 이뤄진다. 자칫 8강전부터 한일 맞대결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 메달권 후보로 꼽히지만 일본 역시 안방 이점이 있고 개최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강의 팀을 구성했다.
8강에서 한일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B, A 각 조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모두 1위를 하거나 2위를 해야 한다. 이것이 틀어질 경우 8강전에서 일본을 만나게 된다. 만약 8강전에서 서로 피해 나간다면 3~4위전이나 결승에서 한일전이 펼쳐진다.
A조에서 8강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멕시코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또 C조(이집트·스페인·아르헨티나·호주)와 D조(브라질·독일·사우디·코트디부아르)의 팀들과는 4강전부터 대진이 이뤄진다.
흙수저 감독의 올림픽 정상 도전
올림픽은 우리나라나 일본에는 매우 중요한 대회다. 하지만 축구에 국한해서 본다면 올림픽은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이른바 축구 강국한테는 크게 주목받는 대회는 아니다.
월드컵을 지구촌 최고의 상품으로 만든 국제축구연맹은 월드컵의 권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올림픽 선수단을 23세 이하로 꾸리도록 하는 등 연령별 대회로 묶어뒀다. 국제축구연맹의 선수 차출 규정도 올림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가령 프랑스 올림픽 대표팀에는 에두아르두 카마빙가(렌) 등 유망주가 포함돼 있지만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는 빠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올림픽 열기가 뜨겁다. 우리나라가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 일본이 1968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국민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올림픽 우승팀들이 월드컵과는 다른 점도 보인다. 최근 10개 올림픽 대회에서는 체코, 소련(현 러시아), 나이지리아, 카메룬, 멕시코, 아르헨티나(2회), 브라질, 프랑스, 스페인 등 다양한 나라가 정상에 올랐다.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도 꿈만은 아니다.
김학범 감독은 2001~2003년 성남일화의 K리그 3연패 때 코치로 역할을 했고 성남과 광주FC 등의 사령탑을 역임하면서 전술적 능력을 다양하게 끌어올렸다. 만약 도쿄올림픽에서 승전보를 전해온다면 그가 차기 국가대표팀 사령탑 후보 영순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흙수저 감독의 올림픽 정상 도전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