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1 성남FC와 울산현대의 경기에서 울산의 신예 강윤구와 김민준이 교체되고 있다.
신인이야? 거물이야?
프로축구 K리그에 ‘겁없는 신예’ 돌풍을 몰고 온 수원삼성의 공격수 정상빈(19) 이야기다. 2021년 경기 수원 매탄고를 졸업한 그는 국내 프로축구 최고 무대인 K리그1에서 ‘태풍의 눈’으로 떴다. 5월 말까지 치른 리그 19라운드에서 14경기에 출전하며 4골 1도움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평점은 7점이다. 고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가 벌써 리그 중견급 선수 이상의 활약을 펼친 셈이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기회 포착 능력이 뛰어난 그가 순간 속도를 폭발시키며 저돌적으로 파고들면 상대 수비수들은 아찔함을 느낀다. 175cm, 72kg으로 큰 체격은 아니지만 탄탄한 몸으로 상대와 부딪혀도 쓰러지지 않는다.
3월 17일 포항스틸러스와 데뷔전에서 첫 골을 터트릴 정도로 스타성을 갖췄는데 FC서울과 울산현대, 전북현대 등 K리그 명문 팀을 상대로 골을 뽑아내 ‘강팀 킬러’라는 별명도 얻었다. 박건하 수원삼성 감독은 아직 어린 선수라고 하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돌하게 상대 진영을 파고드는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매탄소년단 리더 정상빈, 벤투호 승선
정상빈은 K리그에 앞서 2020년 말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고교생 신분으로 처음 대회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많은 출장 시간을 보장받지 못했다. 하지만 2021년 프로 데뷔 뒤 그는 ‘무서운 아이’가 아니라 각 팀의 경계 대상 1호가 됐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도 6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 정상빈 선수를 소집했다. 물론 고정 선수들로 선발을 꾸리는 벤투 감독의 성격 상 정상빈이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약체 팀 상대로는 투입이 가능하다. 박건하 감독은 “정상빈은 A대표팀에 가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감독 입장에서는 더 좋은 활약을 보여 자신감을 갖고 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상빈이 수원삼성의 유소년팀(유스팀)인 매탄고 출신이라는 것도 K리그의 새로운 선수 충원 방식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현재 12개 프로팀은 연고지의 중·고교를 선정해 지도자와 훈련 프로그램, 시설 등을 제공하면서 선수들을 키운다. 수원삼성이 매탄고에 성남FC가 풍생고, FC서울이 오산고, 광주FC가 금호고, 울산현대가 현대고, 포항스틸러스가 포항제철고를 지원하는 식이다.
수원삼성의 경우 울산현대나 포항스틸러스와 함께 이 시스템을 가장 잘 활용하는 구단으로 평가 받는다. 프로팀과 매탄고 코치진이 끊임없이 의견을 교환하고 프로 선수들은 고교 선수들과 일대일로 소통하면서 자신감을 북돋고 있다. 활동량 많고 격렬하기로 유명한 K리그 무대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도 특화돼 있다.
최원창 수원삼성 홍보팀장은 “과거 고교에서 프로로 넘어와 선수들이 투입됐을 때 느끼는 한계가 체력이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문제를 공유했고 학교에서 실전에 투입할 정도의 체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실제 수원삼성은 매탄고에 전담 체력(피지컬) 트레이너를 배치했고 선수들의 몸 상태를 점검해 그 주기에 따라 훈련을 접목하는 과학적인 방식을 일찌감치 도입했다. 정상빈을 비롯해 강현묵(20), 김태환(21) 등 19~21세의 ‘매탄소년단’이 이런 배경에서 성장했고 매 경기 핵심 구실을 하면서 팀을 리그 상위권으로 올려놓았다.
수원삼성의 정상빈이 5월 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 열린 K리그1 전북현대와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기뻐하고 있다.│ 프로축구연맹
22세 이하 선수들 활약 돋보여
매탄고의 힘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박대원(23), 김건희(26), 민상기(30) 등을 합치면 공격과 미드필드, 수비의 베스트 11의 절반을 매탄고 출신이 차지한다. 또 6월 중순에는 병역 문제로 유럽에서 복귀한 권창훈(27)이 합류하고 상무에서는 전세진(22)이 돌아온다. 모두 매탄고 출신으로 해외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등의 선순환 구조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제도적 장치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연맹은 2021년부터 K리그1 12개 팀은 22세 이하 선수를 18명 출전 명단에 두 명 이상 올리고 이 가운데 한 명은 선발로 다른 한 명은 교체로 출전할 경우 다섯 명까지 교체할 수 있도록 했다. 각 팀은 시즌 초기 22세 이하 선수들을 전반에 반짝 투입하고 빼는 ‘꼼수’를 부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진 육성의 토양으로 정착하는 모양새다.
울산현대의 새내기 골잡이 김민준(21)과 미드필더 강윤구(19)도 매탄소년단 못지않게 활약하는 새 얼굴이다. 울산 현대고 출신의 김민준은 데뷔 무대인 2021년 17경기에서 4골을 터트리며 골잡이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울산현대의 공격형 미드필더 강윤구도 고교를 갓 졸업한 신인답지 않게 사령탑의 전술을 잘 소화하면서 홍명보 감독의 신뢰를 얻고 있다.
이 밖에 광주FC의 신예 엄지성(19), 포항스틸러스의 고영준(21), 수원FC의 조상준(22)과 이기혁(21) 등이 시즌 프로 데뷔전을 치른 22세 이하 선수들로 프로 무대에 성공적으로 녹아들어 가고 있다.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중·고교 유소년팀에서 선수를 발굴해 육성하는 것은 경영 효율화를 추구해야 하는 프로구단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다. 연맹이 추구했던 유소년 선수 육성이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인 투자라는 것을 매탄소년단을 통해 이번 시즌 각 구단들이 느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창금 <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