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를 중심으로 2000년 전부터 동아시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해상제국 백제의 전성기는 한성백제시대 제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년) 때였다. 한성백제시대는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했던 시기로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은 돌무지무덤이 즐비해 돌마리(돌마을)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사진을 보면 초가집 두 배 이상 높이의 대형고분이 있었고 주변에는 300여 개의 백제 고분 군락촌이 모여 있었다. 송파구가 도시화를 거치면서 돌무지무덤 대부분은 제대로 조사도 못한 채 사라졌다. 그나마 석촌동고분군(石村洞古墳群)에 근초고왕릉으로 추정되는 고분과 주변 몇 기의 고분이 남아 있는 것은 고고학자 이형구 동양고고학연구소장 덕분이다. 이 소장은 1963년부터 돌마리 고분을 탐사했다. 1983년 5월경 석촌동고분군을 방문했는데 중장비가 왕릉급 고분을 파헤치고 있었다. 놀란 이 소장은 몸을 던져 중장비를 가로막았다. 파헤쳐진 왕릉급 고분에서 파손된 옹관, 유골 등이 보였다.
“백제 고분을 보존해야 4세기 후반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주장을 뒤엎을 수 있다”는 이 소장의 학술발표 후속조치로 그나마 석촌동고분군은 살아남았다. 그중에서 근초고왕릉으로 추정되는 ‘돌방 3호’가 있다. 고구려 무덤 형식인 기단식 돌무지무덤으로 밑변이 50m에 이르지만 복원한 높이는 4.5m에 불과하다. 중국 길림성 지안시에 있는 7층 높이의 장군총의 규모에 비해 ‘돌방 3호’의 작고 초라한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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