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이미지뱅크
사람이 걸어가는 길은 모두 다르다. 같이 일하는 사람도, 같이 사는 사람도, 그 길이 완전히 중첩되지는 않는다. 사소한 결정부터 중대 결심까지, 사람은 누구나 매일 갈림길에 선다.
“이런 사람하고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10여 년 전, 너구리 굴에 살던 내가 담배를 끊었을 때, 주변에선 상찬이 아니라 비난이 쏟아졌다. 중독의 대명사인 니코틴과 절연하는 건 독한 사람이란 걸 방증한다는 얘기였다. 앞으로 소개팅을 해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까지 대두됐다.
사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 내가 선택한 길이 나를 보호하고 또 고립시켰다. 나는 극도로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도 일정 수준 건강을 유지했다. 그만큼, 그 크기만큼 친구들과 결속력을 잃었다.
“난 너의 모든 걸 용서하지만, 그 옷은 더 이상 용서할 수가 없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어머니의 말은 변곡점이었다. 그의 과거는 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무엇 하나 쉽게 사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만 원짜리 한 장도 마음 가는 대로 쓰지 못했다. 오래된 것들, 고장 나서 버려야 하는 물건도 몇 번씩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런 사람이 나를 보고, 구질구질해서 못 봐주겠으니, 새 옷을 좀 사라고 재촉했다. 돈이 없으면 사주겠다고 했다.
거울을 봤다. 거울 속에는 내키는 대로 옷을 사던 청년 대신 10년 된 옷을 입은 삐딱한 남자가 있었다. 그만큼 나는 변해 있었다. 남들의 시선을 우위에 두고, 소유에 열을 올리던 과거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인 소비를, 물질이 주는 기쁨을 거스르며 살고 있었다.
인스턴트식품과 배달 음식을 먹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무난하기보다는 까다롭게, 넘치기보다는 부족하게, 맛없는 음식으로 영위하는 재미없는 인생.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중독으로부터 자유, 물질로부터 자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글쓰기에서의 자유를 꿈꾼다. 코미디의 길을 가는 것.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
이른바 문단이라는 곳에서, 엄숙하고 진지한 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곳에서, 코미디 소설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코미디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하위문화로 취급받았고, 비극만큼 정서적 호소력과 보편성을 획득하기도 어려우며, 작가 자신의 무게를 내려놓지 않고서는 다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동영상 콘텐츠와 웹툰이 넘쳐나는 시대에 글로 사람을 웃기려는 시도 자체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나는 코미디를 한다.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가장 다루기가 힘든 문학 장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인들이 앞다투어 만류한다. 이제 코미디는 그만하면 안 되냐고. 난해하고, 불편하고, 재미없고, 다 말장난 아니냐고.
그래서 나는 말한다. 죽기 전에는 웃기겠다고. 오래 살라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게 특정인만이 할 수 있는 영웅적 결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길을 간다. 일상에서, 꿈을 향해,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 삶의 지향점을 향해 예각으로 각도를 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나온 삶의 궤도에서 180도 다른 길을 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길 위에 사람이 있다. 국내에서는 통하지 않는 영어 성적으로 영미권 국가에 정착한 사람도 있고, 어렵게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독립 서점을 차려 먹고사는 사람도 있고, 연고도 없는 지역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모두 다 내려놓고 세계 일주를 가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자신 앞에 어떤 길이 펼쳐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소설가로서 꽃길만 걷고 싶지 않느냐고.
나는 말한다. 꽃길만 걷고 싶다고. 그런데 가시밭길이라고. 맨발이라고. 혼자라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겠다고. 그게 코미디라고.

우희덕_ 코미디 소설가. 장편소설 <러블로그>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