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못 보던 심청이 아버지 심 봉사가 눈을 떴을 때 이랬을까? 암흑 속에서 찬란한 빛을 마주한 듯 눈이 부시다. 선명하고 또렷하다. 40여 년 전 컬러 텔레비전을 처음 봤을 때처럼 신기하기까지 하다. 화가 추니박의 그림을 보고 느낀 감정이다. 예전 그의 작품은 주로 먹색이 두드러졌다. 이른바 ‘수묵 산수화(水墨 山水?)’ 전통을 고집했던 것.
그런 그가 몇 년 전부터 확 달라졌다. 화려할 정도로 다양한 색을 과감히 사용한다. 작품 스타일이 확연히 변한 것이다. 예전 작품은 부분적으로 채색을 더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흑백에 가까웠다. 반면 최근작은 색채가 돋보인다. 원색을 과감히 사용하면서 딴 그림처럼 밝고 명징해졌다.
여행 경험에서 탄생한 그림
추니박은 화가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다. 경험과 실천으로 이런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경험은 여행을 말하고 실천은 엄청난 작업량을 뜻한다. 그는 누구보다도 여행광이다. 일찍이 영월, 태백 등 강원도 내륙 오지를 비롯해 남해안 여러 섬과 제주도 오름까지 전국을 샅샅이 탐방했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여행지는 세계로 넓어졌다. 중국과 인도 곳곳을 돌아다녔다. 남반구 호주와 남미 여러 나라도 다녀왔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엔 역시 화가인 아내, 아들과 함께 1년 동안 유럽을 종횡무진 누볐다. 이때도 엄청난 양의 스케치와 화첩을 들고 귀국했다.
특히 미국 여행은 특별했다. 그림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도시보다는 자연을 찾았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체취가 남아 있는 서북부 오리건주 시골이 대표적 장소다. 장엄한 풍광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대륙의 속살을 들여다봤다. 추니박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검은색 물감, 즉 먹만으로는 이처럼 숭고한 자연 본연의 색을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2013년 성곡미술관 개인전 때도 일부 색깔이 들어간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인도 풍경 시리즈와 일본 야쿠시마 원령공주 숲 연작이었다. 하지만 최근작에서 보이는 색채의 의미는 각별하다. 단순히 풍경과 대상을 색으로 인식한 결과가 아니다. ‘자연의 색’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진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추니박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오리건에서 작업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먹만으로는 진실을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변하는 계절과 자연 풍경을 그리는 일은 시간을 기록하는 일임과 동시에 진실을 밝히는 행위예요. 그동안 동양화 기법으로 익힌 선과 점이 컬러와 결합되면서 자연과 시간에 대한 해석이 넓고 깊어졌어요. 수묵 필선에 색을 더하면서 진실에 한발 다가간 느낌입니다. 제가 그린 풍경화를 얼핏 보곤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과 색채가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그 속에 포함된 저의 독창적인 필선을 보면 확실히 다르게 보입니다. 비교 대상이 아니에요. 흔히 서양 풍경화는 현실적이고 동양 산수화는 관념적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이제 그런 경계를 의식하지 않아요. 왜냐면 그 두 요소 모두가 이미 제 몸 깊숙이, 뼛속 깊이 배어 있기 때문이죠.”
타고난 화가의 길
‘동양화 대 서양화’, ‘수묵 대 채색’, ‘구상 대 추상’이라는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 작가가 추니박이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회화의 본질과 예술의 보편성을 꿰뚫는 통찰로 화가로서 자신감을 보여준다. 자연에서 받은 영감과 보편적 미의식을 자신만의 고유한 조형 언어와 색채로 표현한다. 동서고금을 넘나들고 실재와 상상을 아우른다. 국가나 지역, 민족, 인종,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 의정부시 외곽, 고즈넉한 마을 한 귀퉁이에 추니박 작업실이 있다.
“바늘로 우물을 파듯 그림 그리기”, “어제 그린 그림은 오늘 생각하지 말자”,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리는 것이 곧 창조다”, “내가 찍는 점은 나의 호흡, 맥박이다. 점은 그 하나가 돌이 되고 나무가 되고 생명이 되어 예술로 태어난다”….
물감 흔적이 가득한 작업실 벽면에서 발견한 문장들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인 게 아니다. 자신에게 스스로 채찍질하듯 새긴 다짐의 글이다. 야외에서 스케치하고 사생(寫生)할 때 느낀 감흥과 정서를 작업실에서 큰 화면에 옮겨 그릴 때, 그 감정을 올곧이 유지하기 위한 다짐처럼 읽힌다.
추니박의 전성기는 ‘오늘’이다. 일찍이 그림에 뜻을 품고 화가로서 삶을 시작한 이래 그의 전성기는 한결같이 오늘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오늘, 현재를 치열하게 사는 화가. 그림에 인생 전체를 저당 잡힌 운명. 화가로서 길을 숙명처럼 여기고 묵묵히 걷는 사람이 추니박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