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혁신은 경계 허물기다
2023년 9월 경북 상주시에서 하천 교량을 건너던 승용차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구역은 경북119항공대 관할이었지만 충북119항공대가 사고 지점으로 출동했다. 경북119항공대에서 사고 지점까지 122㎞, 헬기로 40분이 걸리지만 충북119항공대에선 62㎞ 거리였다. 20분 만에 신속하게 사고 현장에 도착한 충북119항공대는 차 지붕에 올라가 차체를 붙잡고 있던 운전자 A씨를 무사히 구조했다.

소방청은 2023년 4월부터 이처럼 관할 지역에 관계없이 사고 지역과 가까운 곳의 헬기를 우선 출동시키는 ‘소방헬기 국가 통합출동’ 시스템을 대전·충북·충남·전북에서 시범운영했다. 그간 소방헬기는 지역별 소방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 재난상황을 제외하고는 시·도별 관할 지역 안에서만 운용해왔다. 때문에 사고 현장과 가까운 곳에 출동 가능한 타 지역 소속 헬기가 있어도 먼 거리에 있는 관내 헬기를 기다려야 해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경기 북부 지역인 남양주시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하면 같은 관할이라는 이유로 60㎞ 이상 떨어진 경기 남부의 용인시에 있는 헬기가 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소방청이 과감하게 관할 지역의 경계를 허물자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시범운영 기간 전체 소방헬기 출동 건수 194건 가운데 통합출동 건수는 44건(22.7%)에 달했다. 재난 유형은 구조·구급(34건)이 가장 많았고 산불진화(6건), 화재집압(4건)이 뒤를 이었다. 해당 출동을 분석한 결과 출동 시간은 총 610분, 출동 거리는 1828㎞가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출동 1건당 출동 시간은 평균 14분, 출동 거리는 41.5㎞ 줄어든 셈이다. 운항시간 감축으로 연료비 및 소모품 교체, 부품 수리 등 정비 비용 또한 절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소방헬기 국가 통합출동 시스템을 2024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1월부터 현재 시범운영 중인 4개 지역 외에 추가로 부산·대구·광주·울산·전남·경북·경남·제주 등 8개 시·도가 운영에 들어갔다. 봄·가을철 산림화재에 대비해 서울·인천·경기·강원 지역에도 통합출동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경계를 허물고 벽을 넘어서는 정부의 혁신은 계속되고 있다. 매년 행정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분야별 우수한 정부혁신 사례를 발굴하는 정부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 수상작을 통해 이 같은 혁신 성과를 엿볼 수 있다. 소방청의 소방헬기 국가 통합출동 시스템 역시 2023년 대통령상을 받은 우수사례다. 이번 호에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협력해 국민의 삶을 개선한 정부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긴급차량 신속 출동 위한 벽을 없애다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은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소방차나 구급차 등 긴급차량이 정지 신호를 받지 않고 목적지까지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호체계다. 교통신호시스템은 경찰청이 관리하지만 소방차량 등이 출동할 경우 교통신호 정보와 차량 위치정보 등을 활용해 우선신호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이 시·군 경계를 넘으면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군마다 다른 교통신호체계와 우선신호시스템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1년부터 국토교통부 지능형 교통체계(ITS) 공모사업을 통해 경찰청, 소방청, 국가정보원, 도로교통공단, 경기도소방재난본부와 함께 ‘광역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 도입을 준비했다. 지능형 교통체계는 첨단 교통기술을 적용한 미래형 교통체계를 말한다. 이 시스템은 긴급차량 출동 시 교통신호 정보와 긴급차량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우선적으로 통행할 수 있게 해준다. 경기도는 도 내 모든 시·군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표준신호체계를 만들어 각 시·군에서 활용 가능하게 하는 한편 경찰청, 소방청과 함께 광역 긴급차량 우선신호에 대한 표준(안)도 만들었다. 2023년 8월에는 전국 최초로 고양시와 파주시에 새로운 광역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을 설치했다.

김상수 경기도 교통국장은 “시스템 설치를 완료한 고양시와 파주시를 대상으로 운영 실태를 파악한 결과 긴급차량들이 일 평균 130여 회 출동했고 출동 시간도 약 40%로 감소하는 등 골든타임 확보에 한 단계 더 가까워졌다”면서 “소중한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광역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이 2026년까지 경기도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광역 긴급차량 우선신호시스템은 대형 재난상황 발생 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한다는 점, 기존에 지역을 넘어가면 작동되지 않았던 시스템을 표준화하고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2023 정부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색깔 유도선으로 나들목 사고 40% 감소
낯선 곳에서 운전하다 보면 갈림길 앞에서 당황할 때가 있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분기점이 연달아 등장하면 어떤 출구로 빠져나가야 할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바닥에 그려진 분홍색, 초록색 등 색깔 유도선이 큰 도움이 된다. 색깔별로 방향을 알려주는 색깔 유도선이 곳곳에 설치되면서 헷갈리기 쉬운 도로를 처음 접한 운전자나 초보운전자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색깔 유도선은 창의적 아이디어로 국민의 편의와 안전을 높인 정부혁신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색깔 유도선은 한국도로공사의 한 직원이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도로공사 지사에서 도로관리를 담당하던 직원은 서해안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계기로 운전자들이 진입로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집에서 아이들이 크레파스로 색칠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고속도로에 색칠하듯 색을 입혀 진입로를 안내하면 되겠다 싶었다.

도로공사는 경찰청의 협조를 받아 2011년 6월 안산분기점에 색깔 유도선을 최초로 적용했다. 그 효과는 놀라웠다. 연간 20여 건 발생하던 안산분기점의 사고 건수가 3건으로 줄었다. 효과를 체험한 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판교분기점에 제2호 색깔 유도선을 만들었고 이후 주요 고속도로 분기점과 진출입로에 적용했다. 한국도로공사가 2011~2015년 고속도로 내 76개 지점에서 색깔 유도선을 시범운영한 결과 색깔 유도선 설치 후 교통사고 건수가 222건으로 설치 전(305건)보다 27% 감소했다. 특히 여러 도로가 만나는 나들목(IC)에서는 사고가 40% 가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색깔 유도선이 실제 도로 위에 그려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현행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8조 2항에 따르면 도로에는 노랑색, 하얀색, 파랑색, 빨강색 이외 색을 칠할 수 없다. 여러 색깔이 섞이면 자칫 운전자가 헷갈릴 수 있어서다. 전문가들의 반발도 거셌다.

그러나 2017년 국토교통부는 색깔 유도선의 효과를 인정하고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제작해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이후 2021년 4월부터는 정식으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 명기되면서 노면 색깔 유도선은 법적 근거를 갖추게 됐고 이제는 도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올바른 폐의약품 폐기·처리로 환경보호까지
폐의약품은 유효기간이 경과·임박한 약 또는 변질되거나 변질이 의심되는 약, 더 이상 이용하지 않는 약을 일컫는다. 의약품은 땅에 묻거나 하수구에 배출하면 토양·수질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또한 인체에 유입돼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분리배출 후 소각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올바른 배출 방법을 몰라 쓰레기통이나 하수구 등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2022년 서울연구원의 ‘생활계 유해 폐기물 관리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시민의 절반가량은 폐의약품을 종량제봉투에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고·파스류를 종량제봉투에 버린 시민이 46.5%에 달했고 알약을 종량제봉투에 담아 처리한 경우도 43.2%였다. 16.1%는 물약을 싱크대 또는 변기에 흘려보낸다고 답했다.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는 가정 내에 방치되거나 잘못 버려지고 있는 폐의약품을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환경보호와 분리배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개선한 우수사례로 꼽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환경부, 세종시약사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우체국 공익재단과 함께 2023년 1월부터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는 시민이 가정에서 발생한 폐의약품을 밀봉해 우체통이나 약국·보건소·주민센터에 설치된 전용 수거함에 넣으면 우편집배원이 수거해 지방자치단체별로 폐의약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배달한다. 이후 각 지자체가 폐의약품을 소각장으로 옮겨 안전하게 소각 처리한다. 세종시에선 서비스 시행 이후 월별 수거량이 전년 대비 121%(2023년 11월 기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정사업본부와 관계 부처, 기관, 지자체가 함께 폐의약품 수거·처리 문제를 해결한 폐의약품 회수 우편서비스는 2023년 7월부터 서울시 25개 자치구와 전남 나주시에서도 시행 중이며 2024년부터는 전국 시행이 예고돼 있다. 조해근 우정사업본부장은 “다양한 유관기관과 협업으로 우체국 인프라를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우정사업본부는 공적가치 제고를 통해 국민 행복을 위한 적극행정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강정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