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 대한 시민 목소리
여성가족부는 11월 25일까지 누리소통망(SNS)에서 ‘약속 잇기’ 챌린지를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하자는 일종의 국민참여형 캠페인이다. ‘세상 모든 가족과 함께하기로, 약속해요!’라는 약속 메시지와 ‘해시태그’, 약속 동작(제스처)을 한 사진을 자신의 누리소통망에 게시한 뒤 지인을 지목하거나 추천하면 된다.
1인 가구, 비혼 가구, 한부모가족 등 가족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는 가운데 여가부는 지난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 방안을 내놨다. ‘모든 가족, 모든 가족 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비전 아래 4개 영역 11개 정책과제로 구성된 기본계획에는 현재 우리 사회에 등장한 여러 가족 형태 변화를 인정하고 누구나 평등하게 돌보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혼인·혈연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닌 동거와 사실혼 가정이나 학대 아동 위탁가족도 법률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와 민법 제799조를 개정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이루며 사는 시민들에게 기본계획의 의미를 물어봤다.
비혼 동거 가구 “법률상 가족 인정 의미 있어”
2019년 강원도에 살림을 차린 이 모(47) 씨와 장 모(45) 씨는 결혼식은 물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기보단 둘이 서로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어” 비혼 동거를 택했다.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데도 “나이가 좀 있지만 병원 다니며 노력해보자”는 장 씨 부모의 다소 과한 간섭이 비혼 동거 쪽으로 마음을 굳히게 했다. 결혼과 더불어 가부장적 분위기 속에 끌려가듯 살고 싶지 않았다.
“둘 모두 현재 상황에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합니다. 다만 걱정이 전혀 없진 않죠. 아직 체감하진 못했지만 서류상으로는 결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종 제도나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도 해요.”
동거 및 사실혼 가정도 법률상 가족의 범위 안에 포함하는 등의 기본계획 내용은 두 사람에게 매우 의미 있다.
“병원에 함께 가도 보호자 맞느냐며 가족관계부터 먼저 묻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아마 저희 같은 비혼 동거 가정 말고도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많이 있을 텐데 가족 다양성을 현실적으로 반영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한부모가족 “사회 인식도 함께 달라지길”
경기도에 사는 최 모(37) 씨는 이혼 후 아홉 살 딸과 단둘이 살고 있다. 남편과 다툼이 반복되면서 더 이상 함께 살기 어렵다는 결론이 섰고 2016년 이혼했다.
“요즘 한부모가족이 뭐 한 둘인가? 안 맞는 걸 참고 살던 시대는 지났어. 잘했어.” 이혼 결정 내린 것을 후련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한 걸까’ 걱정도 많았던 그에게 친한 지인의 말은 큰 힘이 됐다. 한데 편견의 벽은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요즘엔 한부모가족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지만 제가 이혼하던 당시만 해도 편모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군가 ‘부모 혼자 키운 자식들은 어두운 면이 있다’는 얘기를 유치원 학부모회 모임에서 했다가 제가 이혼했다는 걸 알고 미안해하던 일도 있었죠. 악의는 없었겠지만 한부모가족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제도가 개선되면서 함께 사회 인식 또한 많이 달라졌으면 합니다.”
“양육비 책임 법률 강화 잘 정착했으면”
서울에 사는 강 모(28) 씨는 이번 기본계획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봤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부양육자(자녀와 함께 생활하고 있지 않은 양육자)의 양육비 이행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그는 양육비 문제를 회피하려는 것 같은 전 남편의 태도 때문에 불안했다. 최근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부양육자의 양육비 미지급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를 혼자 양육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 양육비가 없으면 일과 육아라는 부담을 동시에 떠안을 수밖에 없어요. 그만큼 아이에게 신경 써주기도 어렵고요. 여기에 대한 책임을 법률적으로 강화한다니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이번 기본계획이 계획으로만 머물지 않고 정말 실효성 있는 제도로 정착됐으면 합니다.”
강 씨는 ‘건강가정기본법’에 포함된 ‘건강가정’이라는 표현을 가치중립적인 용어로 변경하겠다는 내용에도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표현 안에 숨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적했다.
“‘건강가정’이라는 말 자체가 마치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 있다는 걸 상정해둔 거 같잖아요. 이런 법안과 계획 하나하나에서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고 평등함을 추구하려는 사회인지를 말해준다고 봐요. 건강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가정기본법’이라고 하는 등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다른 표현을 고민해보면 어떨까요?”
김청연 기자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무얼 담았나?
여성가족부는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 제정 이후 5년마다 가족구성원 모두 행복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앞으로 5년간 가족정책 추진의 근간이 될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은 1인 가구 증가 등 가족 형태 다변화, 개인 권리에 대한 인식 증대 등 최근의 급격한 가족 변화 등을 반영했다.
기본계획에 따르면 우선 미혼부 자녀의 출생신고에서 차별을 없앤다. 기존에는 친모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거나 친모가 협조하지 않으면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친모가 특정됨에도 불구하고 소재불명이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 제출에 협조하지 않는 경우에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한부모가족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생계급여를 받는 한부모에 아동양육비를 지급하고 추가 아동양육비 지급대상 연령을 만 24세에서 만 34세로 확대한다. 법원의 감치명령 후에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제재도 강화하기로 했다. 양육비이행법 개정으로 2021년 7월 13일부터 출국금지 요청, 명단 공개, 형사처벌 등을 할 수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정책도 강화한다. 고독·고립 방지 등을 위한 생애주기별 사회관계망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돌봄공동체 모델을 개발·확산해나갈 계획이다. 청소년 부모의 임신·출산에 대한 의료비 지원을 2021년 만 18세 이하에서 만 19세 이하로 향후 만 24세 이하로 점진적으로 확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