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노인전문요양병원 치매병동의 복도 벽화
치매국가책임제 4년 ‘1호 치매안심병원’을 가다
2021년 8월 27일, 경북 안동 시내에서 차를 타고 낙동강 지류 하천을 따라 남쪽으로 20분가량 내려가니 이윽고 남후면 무릉리에 닿았다. 한적한 농촌에 들어서니 ‘치매국가책임제 보건복지부 지정 전국 제1호 치매안심병원’이라고 쓰여 있는 대형 현수막이 병원 외벽과 현관에 걸려 있다. 의료법인 안동유리의료재단이 설립·운영하는 ‘경북도립 노인전문요양병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를 발표하면서 효율적인 국가 치매 치료·관리대책으로 제시한 정책 중 하나가 치매안심병원이다. 안동 노인전문요양병원은 2019년 9월 16일 보건복지부가 제1호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현재 신경과 의사, 작업치료사, 물리치료사, 임상심리사, 치매관리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치매 전담 전문 인력 수십 명이 24시간 내내 치매노인 입원 환자(총 133명)를 치료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활용해 돌보고 있다. 병원 안에는 3개 병동에 걸쳐 총 133개 치매 병상(신관 51병상, 본관 82병상)을 운영 중이다.

▶안동 노인전문요양병원 치매병동의 복도 벽화
환자에 소득 지원·보장프로그램도 상담
신관 치매병동 4층에 들어서면 긴 복도의 양쪽 벽마다 치매 환자들에게 기억과 감각을 일깨워주기 위한 각종 벽화가 가득 차 있다. 농촌에서 윷놀이하는 장면, 꽹과리를 들고 사물놀이하는 풍경, 어머니가 호롱불 아래서 바느질하는 그림 등이 눈길을 끈다.
“여기 입원해 치료·관리 중인 치매 환자 어르신들이 어릴 적에 경험하고 직접 놀았을 법한 장면을 벽화로 그려 치매 질환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고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겁니다.” 손성애 사회복지사의 설명이다.
마을에서 단체로 김장을 담그는 장면, 닭장과 소 마구간 등 농사일 벽화도 눈에 띈다. 여기 병동에서 사회복지사는 치매 환자들에게 공적인 소득 지원·보장프로그램을 상담해주고 각종 불만과 고충을 해결해주는 일을 한다.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된 이후 2년간 국가에서 치매치료·관리에 쓰이는 각종 시설·장비를 지원받았다. 복도 벽화도 그중 하나다.
4층 병동 한쪽에는 스노즐렌실(Snoezelen Room)이 마련돼 있다. 26㎡(8평)가량 되는 방으로 일종의 심리안정치료실이다. 치매 환자들의 대표적인 증상이 배회, 초조, 불안, 신경과민, 불면, 흥분과 공격성이다. 스노즐렌실은 치매 환자에게 기분 좋은 자극을 제공하는 등 비약물적 방식을 적용해 환자들이 겪는 증상들을 경감시키는 요법이다. 방 내부는 여러 은은한 색깔의 조명 아래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장비로 구성돼 있다. 환자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고 신체·심리적인 재활을 촉진한다. 이 심리안정치료실도 보건복지부 지원금으로 설치했다.

▶안동 노인전문요양병원 입구
후각 되살리는 향기 요법 치료도
병동은 각종 조명·색채·영상·음향 등을 이용해 행동심리증상(BPSD·치매에 동반되는 망상 등의 증상)을 완화하는 환경을 곳곳에 조성했다. 노트북 등을 활용한 전산화 인지능력 개선 프로그램도 있고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기억을 더듬어 치매 회복을 돕는 회상 치료법도 시행하고 있다. 젊은 시절 논밭에 나가 농사지을 때 썼던 농경 장비 사진을 치매 환자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발레 음악 ‘백조의 호수’를 들려주면 선율에 맞춰 몸짓을 따라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종욱 치매종합관리센터장은 “여름철에 물장구치던 이야기, 동짓날에 팥죽을 만들어 먹던 이야기 등 계절에 따라 음식과 장소를 달리해 이야기를 꺼내 들려주면 환자들의 치매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동화책을 읽어주면 등장인물에 대한 옛 기억을 더듬으면서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아로마테라피로 후각을 되살리는 향기 요법도 있다. 향기 요법은 치매 환자들이 접근하기 쉽고 거부감도 적은 편이다.
안동·영주·풍기·의성·군의·청송·영덕·울진 등 경북 북부 지역 시·군 곳곳에 마련돼 있는 치매안심센터에서 해당 지역 주민에 대한 치매질환 검사 의뢰가 들어오면 여기에서 치매 증상 진단을 거쳐 일정 등급 이상이면 곧바로 입원 치료에 들어간다.
현재 입원 치료·관리 중인 치매환자 약 130명은 노인(여성 70%, 남성 30%)이다. 이 센터장은 “우리 요양병원과 협약을 맺고 있는 치매안심센터 일곱 곳에서 하루 평균 두세 건가량 치매검사 의뢰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치매안심센터에서 검진을 의뢰하면 검진 비용은 전액 국가 부담이다.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되면서 병상 침대, 체중계, 심전도계측기, 심장충격기 등 약 20종의 시설 장비도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시설·장비 지원금은 병상 수에 비례해 지원된다. 정부 지원금 덕분에 기존 병동을 치매 환자들이 더 쾌적하게 요양할 수 있도록 기존 6인실을 4인실로 개·보수했다. 병실 안과 복도 내벽도 노랑, 초록, 황톳빛 등 자연 원색의 시원하고 청량감을 주는 색깔로 칠했다.
손 복지사는 “어린이집처럼 화사하고 밝게 꾸며 치매 환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고 말했다. 치매 증상으로 우울한 상태에 있다가 복도와 병실 곳곳에서 머리를 부닥치는 작은 사고도 간혹 일어나는데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난간도 여기저기 설치해뒀다.

▶안동 노인전문요양병원 치매병동의 스노즐렌실 내부
“더 잘 치료하려면 더 많은 의료 인력 필요”
치매안심병원은 치매 진단과 치료, 요양 등 치매 관련 의료서비스를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제공하고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행동심리 증상을 동반한 치매환자를 집중 치료하는 시설을 갖춰 단기 입원 치료로 조속한 지역사회 복귀를 돕는 병원이다.
치매관리법에 따라 병원급 의료기관이 치매전문병동 등 치매환자 전용시설 인프라(치매환자 전용병동 30~60병상 규모 4인실 이하로 설치)와 신경과·정신과 전문의 등 치매 전문 의료 인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지정받을 수 있다. 그동안 치매 환자는 주로 종합병원·정신의료기관·요양병원 등에서 치료받았지만 인구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치매 전문 병동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치매안심병원은 공모로 선정된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거칠고 힘이 든다. 드물지만 간혹 간호사나 다른 환자들에게 갑자기 공격성을 보이거나 욕설을 내뱉은 치매 환자도 있다. 특히 지방에 있는 요양병원들은 요양치료사 등 의료 인력들이 근무를 기피해 사람을 구하기도 힘들다.
이 센터장은 “지역에 있는 여러 병원마다 대부분 근무를 꺼리는 탓에 간호사나 요양보호사, 임상심리사 등 필요한 인력을 구하기 쉽지 않다”며 “국가에서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하면서 요구한 필수 의료 인력은 확보했지만 환자들을 더 잘 치료하고 관리하려면 더 많은 의료 인력이 필요하다. 치매안심지정병원에 시설·장비뿐만 아니라 인건비도 지원해주는 쪽으로 확대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치매안심병원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환자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인근 노인요양시설을 찾아간다고 한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4년간 치매안심센터 256곳 설치 치매환자 의료·돌봄 지원 강화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전체 인구 대비 비중은 2000년 339만 명(7.2%)→2017년 712만 명(14.2%)→2020년 813만 명(15.7%)으로 늘었다. 2025년에는 1051만 명(20.3%)으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국 치매 환자(65세 이상)는 2020년 86만 3000명(추정)이다. 2025년에는 107만 7000명으로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17년 9월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한 이후 4년간 국가 차원의 치매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치매환자에 대한 의료와 돌봄 지원을 강화했다. 전국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 256곳을 설치하고 치매안심병원과 치매전담형 요양기관 등 치매 치료·돌봄 인프라를 계속해서 확충했다. 치매안심병원으로는 안동노인전문요양병원, 경북도립 김천노인전문요양병원, 경북도립 경산노인전문요양병원, 대전광역시립 제1노인전문병원 등 네 곳이 지정돼 운영 중이다. 공립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도 115곳 설치됐다.
지난 4년간 장기요양서비스 대상과 혜택을 확대하고 치매 의료·검사비 부담 경감 등으로 치매 환자와 가족의 부담도 대폭 줄었다. 2018년 1월부터 장기요양 인지지원등급을 신설했고 그해 8월부터 장기요양비 본인부담 경감을 확대했다. 앞서 2017년 10월부터 고비용 치매 검사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중증치매질환자에게 산정특례도 적용했다. 보건복지부는 “중증 치매 환자는 향후 전국적으로 더 확충될 치매안심요양병원을 통해 단기 집중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