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한국 드라마 ‘킹덤’에서 의외의 주인공은 배우들이 쓰고 나온 갓이었다. 당시 누리소통망에서는 갓에 대한 전 세계적인 찬사가 쏟아졌다. 명품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통하는 법이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대나무실로 엮어 만드는 갓의 디테일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갓의 모양을 잡는 양태 작업 24단계, 갓대우(갓모자) 부분을 만드는 총모자 17단계, 이렇게 만들어진 양태와 총모자를 하나로 만드는 입자에 10단계 등 총 51단계를 거쳐야만 하나의 갓이 탄생한다. 이 모든 과정을 뜻하는 갓일은 고도의 집중과 인내를 요구한다. ‘바른 정신은 바른 옷차림에서 나온다’고 믿었던 우리나라 선비들에게 갓은 품격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상투를 틀어 부모가 준 머리를 지키던 효 사상과 선비들의 자긍심은 1895년 단발령 선포와 함께 잘려나갔고 이와 함께 갓의 쓰임도 사라졌다.
“8~9개월 엮고 나면 시력을 버리고 온몸에 진이 다 빠져나가.” 국가무형유산 제4호 갓일 보유자 정춘모의 말이다. 1958년 갓과 인연을 맺은 그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에게 세 가지 갓 공정의 모든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젠 갓을 찾는 사람도, 갓을 만들려는 사람도 없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유물이 됐지만 그는 갓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 한 땀 한 땀에 자신의 신명을 담고 있다.
“내가 안하면 누가 하겠나. 갓은 나의 운명인 모양이다”라고 말하는 그가 완성을 앞둔 갓을 점검하고 있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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