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유문자가 없는 전세계 7000여 개 언어는 대부분 로마자 또는 알파벳으로 표기한다. 자음과 모음, 초성·중성·종성이 결합돼 만들어지는 한글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글자로 컴퓨터와 ‘찰떡궁합’이라고 할 만큼 어떤 소리도 표기가 가능하다. 순경음비읍(ㅸ) 등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가 살아 있다면 B와 V처럼 구별이 어려운 영어 발음까지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다.
한글맞춤법에서 사라진 네 자를 포함해 훈민정음 기본자인 28자(자음 17자, 모음 11자)의 창제 원리와 소리 내는 법, 사용법을 상세하게 적어놓은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해례(解例)가 붙어 있어 ‘해례본’으로 불린다. 유네스코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사적 중요성을 지닌 독창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세계기록유산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이 1940년 경북 안동의 고가에서 발견해 기와집 열한 채 값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사서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고 지켜낸 보물이다.
일반인이 좀체 보기 힘든 훈민정음 해례본이 오랜만에 공개됐다. 9월 초 문을 연 대구간송미술관이 개관을 기념해 연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 국보·보물 특별전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선보였다. 서울에서도 간송미술관 밖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짧은 시간 동안 전시됐던 것이 전부고 서울 밖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귀한 인류의 보물을 전시 첫날 촬영했다.

강형원
1963년 한국에서 태어나 197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이민했다. UCLA를 졸업한 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 등에서 33년간 사진기자로 근무했고 언론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2회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