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근조기 하나로 행사의 격이 달라졌습니다.”
참전용사들의 장례 의전을 진행하는 무공수훈자회 본부 장세훈 선양단장의 소감이다. 6월 1일부터 국가유공자 장례에 사용되는 근조기의 명의가 국가 보훈처장에서 대통령으로 격상되면서 현장의 반응 역시 뜨겁다. 이제 사망 시 유족이나 장례 주관자가 가까운 보훈관서로 국가유공자 사망 신고를 하면 장례 장소에 따라 보훈병원, 위탁병원, 무공수훈자회 선양단 등을 통해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를 받을 수 있다. 무공수훈자회는 현재 421여 회(6월 20일 기준)의 대통령 근조기 전달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 국가유공자의 빈소에 들어서는 대통령 근조기. 국가보훈처장과 무공수훈자회 회장의 조화도 함께 전달된다. ⓒC영상미디어
따뜻한 보훈으로 애국을 생각하다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검은 단복을 갖춰 입은 16명의 선양단원이 도열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날은 열일곱 살에 6·25전쟁에 참전해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고(故) 정영수(87) 옹의 장례가 있었다. 아내 고재순(85) 여사와 유족들은 예를 다해 선양단원을 맞이했다. 선양단원은 무공수훈자회의 근조기와 국가보훈처장의 조화 등을 들고 입장했고, 영전 앞에 고인의 약력을 낭독한 뒤 단체 묵념으로 깊은 애도를 표했다. 관포식을 할 수 있는 영구용 태극기도 유족에게 전달됐다. 이전까지 우편으로 지급되던 것을 무공수훈자회에서 인편으로 직접 전달하고 있다. 대통령 근조기는 사망 소식이 전달되는 즉시 비치되고 행사의 마지막까지 함께하기 때문에 장례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서울 신촌세브란스 장례식장에 검은 단복을 갖춰 입은 16명의 선양단원들 ⓒC영상미디어
상주인 정석용(63) 씨는 “아버님이 국가유공자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확인하니 놀랍고 새롭다”는 소감을 밝혔다. 육군 항공 조종사로 근무하다가 소령으로 제대한 정 옹은 평소에도 가족들에게 6·25전쟁에서 겪은 치열한 전투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훈련 교관으로 후배들에게 비행 훈련을 하던 후일담도 손자들에게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고는 했다. 그 영향으로 손자들 역시 군에 대한 동경과 자부심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정훈장교로 군 복무를 마쳤다는 손자 정승연(29) 씨는 “할아버지는 낙동강 전투 얘기를 많이 들려주셨는데, 당시 총상으로 대퇴부가 관통되는 부상을 겪을 만큼 치열하게 싸우셨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할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특히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공군 조종사가 되었다는 손자 정기연(30) 씨는 훈련 수료식에 참석해서 기뻐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군인으로서 국가유공자의 장례를 바라보는 소감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대통령 근조기부터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시는 일련의 과정을 보니 보훈이라는 것이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의 영광이 과거 할아버지 세대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랑스럽고, 저 역시 국가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고 정영수 옹은 아내와 3남 2녀에, 9명의 손자들을 남기고 6월 20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현재 등록된 국가유공자는 애국지사, 참전용사, 순직공무원, 5·18민주유공자 등을 포함해 총 73만여 명에 이른다.
이웃 희생으로 일군 위대한 대한민국
대통령 근조기가 시행된 첫날(6월 1일), 대통령 근조기 1호가 전달된 곳은 6·25전쟁 참전용사인 고 김기윤(89) 옹의 빈소였다. 상주인 김철호 씨는 “대통령께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끝까지 예우하겠다고 하신 말씀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며 “막상 1호 대통령 근조기를 아버님 영전에 바치니 생전의 아버님 생각이 더 난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국가유공자 의전과 함께 대통령 근조기가 비치되면 주변에서 어떤 공로를 세운 분인지 관심을 보이며 물어보는데, 이 과정에서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김동진 본부 행사지원대장은 대통령 근조기를 빈소 입구에 세우고 싶어 했던 유족도 있었다고 말한다.
“훼손의 우려도 있고, 빈소 안에 비치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유족분들께 잘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장세훈 선양단장은 6·25전쟁에 참전한 삼형제의 장례식을 기억했다.
“막내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올봄에 첫째 형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대통령 근조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둘째 형님 때 있으니까 참 보기 좋다고. 내 차례에도 장례단이 오고 대통령 근조기도 올 거 아니냐면서 아이처럼 좋아하시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무공수훈자회의 장례의전 선양단의 시작은 선의였다. 현재 무공수훈자회 박종길 회장이 창원지회장과 경남지부장을 맡으며 국가유공자의 빈소를 조문할 때였다. 당시 국가유공자들의 빈소가 너무 쓸쓸하고 외로워서 이들을 위로하자는 의미로 2006년부터 시작한 장례의전 선양단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장례의전 선양단은 국가유공자 사망 시 예복을 입은 역전의 용사(평균 연령 75세)들이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례의전 봉사팀이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박종길 회장은 “일종의 부채의식에서 시작한 활동”이라며 “생사의 격전에서 동료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후배 전우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무공수훈자회는 현재 2226분의 국가유공자 장례의전과 6572분의 영구용 태극기를 영전에 올렸다(2018년 6월 5일 기준). 이와 함께 전국 산야에 잠들어 있는 국가유공자들의 유해를 수습해 전국 광역시도별로 14회의 합동 봉안식을 거쳐 모두 238위의 영현을 국립현충시설에 안장하는 일도 병행해왔다.
우리에게 가족이 소중한 이유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 곁에서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을 때 우리도 국가에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 이런 믿음 속에서 진정한 애국이 싹트는 것이다. 국가유공자를 영예롭게 보내고, 그들의 삶이 젊은 세대의 마음속에 전해질 때 진정한 애국이 시작된다.
강보라│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