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교수와 그가 펴낸 <격렬비열도>│김정섭
<격렬비열도> 펴낸 김정섭 성신여대 교수
‘새들이 열을 지어 난다’는 본래 뜻보다 독특한 음을 빌려 ‘격렬’과 ‘비열’의 로맨스를 담아낸 박정대 시인의 양가적 시상이 ‘창조적 오독’으로 먼저 떠오르는 격렬비열도. 최근 이 섬이 서해 수호의 거점으로 뜨겁게 부상했다. 박정대 시인의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로 격렬비열도에 눈을 뜬 김정섭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직접 현장으로 달려가 2년간 발품을 팔아 이 섬의 문화·관광·역사·생태·안보 콘텐츠를 민속지학 방법으로 채록·검증하고 심층 분석했다. 수필처럼 간직하고 싶은, 방대한 내용이지만 산뜻한 원색감으로 가볍게 읽히는 색다른 연구서를 낸 김정섭 교수를 인터뷰했다.
-어떻게 ‘격렬비열도’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시와 수필을 좋아하던 저에게 바다는 어릴 때부터 늘 동경의 대상이었죠. 그래서 현역병 입대 당시 상급부대 잔류를 마다하고 말단부대 배치를 일부러 고집해 충남 서산·태안·당진 해안부대로 가서 그곳 먼바다에 떠 있는 이 무인도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그땐 작전지역이 아니라서, 그 이후엔 정기항로가 없어서 갈 수가 없었죠. 결정적으로 박정대 시인의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2001, 민음사)란 시집을 보고 관심이 뜨거워졌어요. 그래서 오래 마음에 두고 있다가 몇 해 전 직접 연구에 뛰어들어 어렵사리 태안군의 배편 협조를 받아 현장 탐사까지 마친 것입니다.
-2년간 발품을 팔아 이 섬의 문화·관광·역사·생태·안보 콘텐츠를 민속지학 방법으로 채록·검증하고 심층 분석해 집필한 책입니다. 어떤 이들과 인연이 기억에 남는지요?
=안면도, 가의도, 옹도 등 격렬비열도 인근의 낯선 마을과 섬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을 만나 북격렬비도, 서격렬비도, 동격렬비도의 소유주를 수소문하고 섬의 역사, 전설, 사건 등을 수집했죠. 어느 날 안면읍 사무소를 들렀을 때 마침 이장 회의가 있어 많은 난제를 해결한 장면도 떠오릅니다. 동격렬비도 실종사건은 무려 42년이나 흘러 돌아간 분이 많았기에 그 주역들을 찾기 매우 어려웠죠. 겨우 찾아낸 분 중에 지금도 사고 후유장애를 겪는 분이 있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생존자 인터뷰는 설득을 거듭해 어렵게 해냈습니다. 섬 관리를 맡은 태안군청, 충남도청, 해양수산부, 해양경찰청 공무원들도 자주 만나다 보니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아담한 규모의 태안군립도서관 사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교수님’이 우리 고향 일에 열정을 쏟는다며 고맙게도 자료 복사를 도와주셨죠.
▶등대와 기상관측기지가 있는 북격렬비도와 태안군 어업지도선│태안군
-격렬비열도에서는 대한민국 초유의 최장기 무인도 조난 사고가 있었습니다. 1978년 크리스마스에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울 요량으로 약초를 캐러 갔던 태안 주민 12명이 동격렬비도에서 조난당해 장장 44일 동안 추위와 배고픔, 두려움에 맞서야 했습니다.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요?
=그땐 박정희 정부 말기로 농어촌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죠. 용돈 벌려고 섬에 갔는데 돌아오는 배편의 선주가 잊어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이 사건이 일어났죠. 생존자들은 당시 일행이 실종임을 자각하며 공포에 휩싸이는 과정, 조개·풀뿌리를 채취해 허기를 채우며 사투한 일, 매일 봉우리에 올라 옷을 찢어 흔들고 불을 피우며 구조를 요청한 일, 절벽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유일한 생명수를 받아먹은 일, 폭설에 막사가 무너지고 다치고 병들어 신음하던 일, 간첩 신고로 내려진 ‘사살 명령’도 모른 채 구조를 기다린 일, 얼굴 반이 수염으로 덮인 깡마른 모습으로 군산항에 들어와 카메라 세례를 받던 일 등을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너무 큰 가치가 있는 실화이기에 제가 2019년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머지않아 상업영화로도 제작해 많은 이들이 공감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격렬비열도의 문화·관광·역사·안보 콘텐츠는 각각 어떤 것이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격렬비열도의 핵심 문화콘텐츠는 시를 통해 형성된 뜨거운 사랑(격렬애)과 지키지 못한 사랑(비열애)이 공존하는 ‘판타지 로맨스 섬’이란 상징성입니다. 서해 수호신인 백룡의 전설과 용굴 설화, 전통식 어구인 독살과 소금 제법인 자염 염벗터, 산제와 풍어제 등도 빼놓을 수 없죠. 관광 콘텐츠는 천혜의 비경과 희귀종 동식물입니다. 역사 콘텐츠는 유구한 문명을 끼고 있는 환황해권과 한중 교류의 중심지이자 제주도보다 오래된 화산섬으로서 국가 재정을 책임지던 험난한 조운로였다는 점입니다. 안보 콘텐츠는 천혜의 황금어장이자 서해의 독도로서 갖는 ‘영토주권 수호’의 상징성 그 자체입니다.
▶수풀이 우거지고 식생이 풍부한 동격렬비도│김정섭
-수필을 융합한 연구서를 내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있는지요?
=불붙은 격렬비열도 수호 캠페인을 지켜보면서 ‘근거 이론서’가 한 권쯤 있어야 한다는 저만의 생각이 있었기에 공익 기여 차원에서 연구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런 유의 연구서는 늘 무겁고 딱딱해서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받지 못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이 섬에 담긴 무거운 담론들을 어떻게 풀어 편하고 쉽게 전달할까 고민해 지금과 같은 책 디자인을 구상했습니다. 저의 구상과 출판사 생각이 일치해 ‘누구나 한 권쯤 갖고 싶은 예쁜 책’을 만들기로 의기투합했습니다. 사실, 자료, 직접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느낌’과 ‘감성’을 듬뿍 담고 표지 디자인, 판형, 편집 등 모든 요소에서 산뜻하고 세련됨을 살려 누구에게나 끌리도록 세심하게 고려해 원색의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격렬비열도는 그 옛 이름과 같이 서해의 최서단에 위치한 무인도입니다. 격렬비열도의 역사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암초 등 12개로 이뤄진 이 섬은 백악기 말기, 즉 약 7000만 년 전 화산 분출로 생겨나 제주도보다 역사가 깊습니다. 인근에서 발견된 패총 등 유물들로 보아 4500~5000년 전부터는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삼한시대 마한 54개국 가운데 신소도국과 고랍국에 속한 이래로 태안과 운명을 함께했습니다. 고려·조선 시대 왜구가 자주 출몰해 노략질을 하자 거주민들을 철수시켜 오늘날처럼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서쪽 바다 끝에 있어 ‘물치’로 불리다 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새가 열을 지어 날아가듯 대형을 갖춘 섬들’이란 뜻의 한자명 ‘격렬비열도’가 붙여졌다 합니다. 섬 앞바다는 고려~조선시대 한중 외교·교역의 핵심 경로였는데, 지난 2014년 중국인이 서격렬비도 매입을 시도한 일을 계기로 뜨거운 섬으로 부상했습니다. 한미합동군사훈련 지역으로 중국이 엄청 경계합니다.
▶격렬비열도 지도
-격렬비열도는 남한의 극서점 중 하나이기에, 영해를 구분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이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중국 어선의 불법어획과 밀입국이 횡행하는 것은 물론, 중국 정부가 인근 해역에 대해 공세를 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격렬비열도 해역이 온통 갈등의 중심지인 것만은 아닙니다. 이곳은 오랜 역사 속에 한중 문화 교류의 장이었고, 그에 따라 숨은 이야깃거리도 풍성한데요.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으면 소개 부탁합니다.
=살진 감성돔·참돔·농어·광어·조기 등이 파닥거리는 서해 최대 황금어장입니다. 중국 어선들이 침투해 ‘조업전쟁’이 벌어져 우리 해경 경관과 어부들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조희팔 밀항 사건부터 최근 모터보트 입국 사건까지 밀입국의 주요 경로이기도 했죠. 저는 연구하면서 2012년과 2015년 각각 중국이 조선족을 앞세워 섬을 사들이려 한 것 외에 어장 확보까지 노린 사실을 파악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백제:남북조, 고려:송, 조선:명·청 등의 교류사에서 중국 사신들이 계절풍을 이용해 배를 타고 서울을 오갈 때 격렬비열도 인근 안흥의 ‘안흥정’ 또는 태안의 ‘경이정’에 머물러 거쳐간 일도 인상적입니다. 경상·전라·충청의 세금을 걷어 수도로 운송하던 중 틈만 나면 험한 해저지형과 격랑으로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역이라서 내륙을 관통하는 운하 굴착까지 시도한 일, 관리들이 종종 침몰 사고로 위장해 조세를 갈취한다고 정약용이 지적한 점 등은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격렬비열도는 그 남다른 이름만으로도 많은 예술가의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문학적 은유의 섬이기도 한데요. 격렬비열도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작품이나 문화 콘텐츠가 있으면 소개해주세요.
=시쳇말로 이 섬은 문화 예술인에게 원초적 감성을 자극하는 ‘핫 플레이스’입니다. 박정대 시인은 ‘음악들’에서 ‘격렬’과 ‘비열’을 섬 이름에서 빌려 극단적인 사랑이 병존하는 ‘로맨스 섬’으로 재창조했죠. 이 시를 오마주(존경, 경의)해 박후기 시인은 <격렬비열도>란 시집에서 ‘격렬’과 ‘비열’로 다시 투사했죠.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은 섬에 갔다가 섬의 의미와 비경에 감취되어 ‘격렬비열도’란 즉흥시를 지어 저의 책에 실리게 허락해주었습니다. 함정임 작가는 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에서 한 여자가 초콜릿으로 새들을 빚어 시폰케이크 위에 점점이 올려놓은 ‘격렬비열도 케이크’를 만들어 의미를 부여하는 장면을 설정했죠. 곽재구 시인은 <곽재구의 신 포구기행>에 이 섬의 여행기를 수록했는데, 처음 맞닥뜨린 원추리꽃과 동백터널에서 느끼는 대자연의 서정과 품격을 묘사했어요.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