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치료의 대모’ 조현섭 총신대학교 중독상담학과 교수
일명 ‘대학가 마약 동아리 사건’의 파장이 크다. 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연합동아리 ‘깐부’에서 수차례 마약을 투약하거나 유통한 사건이다. 동아리 회원 중에는 명문대 재학생, 의대·약대 재입학 준비생 등도 다수 포함됐다.
검찰은 동아리 회원들은 물론 텔레그램 단체 채팅방에 참여한 회원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주범 격인 염모 씨 등 3명은 수도권 13개 대학 학생 수백 명으로 구성된 동아리 운영진으로 활동하며 2022년 11월부터 작년 11월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마약을 투약하거나 유통했다. 이들은 지난 7~8월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동아리 회원을 넘어 일반인에게도 마약을 팔거나 제공한 점이 추가로 확인돼 재차 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는 9월 26일 마약류관리법상 향정·대마 등 혐의로 염 씨 등 3명을 추가 기소했다. 동시에 여기서 유통된 마약이 대학가를 넘어 대형병원 의사와 기업임원 등 일반에까지 퍼졌다는 수사 결과도 공개했다. 이들은 고급 호텔과 클럽은 물론 놀이공원, 해외 여행지 등에서 집단으로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는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함께 마약 파티를 벌이기도 해 충격을 던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가 마약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도 이런 우려를 확인시켜준다. 2023년 전체 마약사범 2만 7611명 중 20대가 30.3%(8368명)다. 이는 전년(5804명) 대비 약 44.2% 증가한 수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대학가 마약 실태에 주목해 대학생·유학생 대상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 예방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연말까지 10개 대학을 대상으로 마약류 예방교육 외에도 대학 축제에서 마약 예방부스 운영, 마약류 예방 캠페인, 영상 공모전, 콘테스트, 전문가 초청 강연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조현섭 총신대학교 중독상담학과 교수가 함께 주관한다. 일부 대학교를 중심으로 마약류 오남용 예방교육 활동을 이어오던 민간단체 답콕(DAPCOC)과 식약처가 손을 잡은 정책인데 조 교수는 답콕의 연구 및 사업개발원장을 맡고 있다. 국내 중독상담 분야의 권위자인 조 교수는 한국중독융합학회 회장, 한국대학생마약예방활동단 단장 등 다양한 직함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마약예방대책협의회 등 정부부처 자문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대학가에 파고든 마약의 실태와 대응 방안 등을 듣기 위해 9월 27일 총신대 연구실에서 조 교수를 만났다. 그는 “대학생 마약 근절을 위해서는 자발적인 예방 활동을 통한 건전한 문화 확산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약 동아리 ‘깐부’의 실체를 보니 심각성이 느껴진다.
대학생들이 마약을 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마약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는 건 인지하고 있는데 소위 명문대 재학생이 주축이 됐다는 것에 더 놀란 것 같다.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하다. 대학생 마약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어쩌다 마약이 대학가까지 파고들었나?
근접성이라고 본다. 마약을 접하기 너무 쉽다. 포털 사이트에서 마약을 검색하면 구입하는 방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로 주문해보면 음식을 배달한 것보다 빨리 온다. 심리적인 거리감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또 연예인 등 마약사범 사례를 너무 쉽게 접한다. 과자나 젤리 형태로 나오는 신종마약도 문제다. 주로 20대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빠르게 유행하고 새로운 물질로 대체돼 구조적인 관리가 어렵다. 뭔지도 모르고 먹은, 비자발적인 마약 경험도 늘어나고 있다. 한마디로 중독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대학가 마약류 예방교육은 어떻게 시작됐나?
통계를 보면 20~30대 마약사범이 가장 많다고 나오는데 대학생을 위한 예방교육 프로그램이 없더라. 6월 각 부처 간 마약예방대책협의회가 열렸을 때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내가 제안했다. 식약처가 주무부처로 나섰고 8월 19일 국회에서 ‘대학생 마약예방을 위한 답콕 및 대학생마약예방활동단 발대식’을 가졌다. 기존에 마약 및 중독 예방센터 활동을 펼치던 민간단체 답콕과 협력하는 형태라 체계가 빨리 갖춰졌다.
세부 내용이 궁금하다.
연말까지 10개 대학(강원대, 고려대, 을지대, 전북대, 조선대, 중앙대, 총신대, 충남대, 한국외대, 한동대)에서 대학생·유학생을 대상으로 마약류 오남용 및 중독 예방교육 활동을 진행한다. 대학 축제에서 마약 예방부스를 운영해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영상 공모전, 콘테스트 등 각종 활동을 펼친다. 마약류 분야의 전문가 초청 강연도 진행된다. 9월 25일부터 3일간 서울 중앙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예방교육이 진행됐는데 학생들의 현장 반응이 좋았다.
외국인 유학생이나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강화한다고 들었다.
태국, 룩셈부르크,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선 기호용 대마 사용을 합법화하고 있다. 대마 사용 경험자가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인데 그걸 간과할 수 없었다. 실제 외국인 마약사범이 최근 5년간 1.7배 늘어나기도 했다.
예방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주안점은 무엇이었나?
일단 학생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접근이 중요했다. 동시에 현재 외국에서도 진행하고 있고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게 뭔지 고민했다.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 활용이 대표적이다. 카드뉴스, 쇼트폼 영상을 제작하고 마약 예방을 주제로 자체 개발 콘텐츠 대회 등을 운영할 예정이다. 크리스마스 기간에 진행할 레드리본을 활용한 캠페인은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 마약 근절 서약서 작성과 함께 레드리본을 나눠줄 계획인데 누리소통망(SNS) 등에서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처럼 확산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는 기간이 짧아 시범사업의 개념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2025년 본격적으로 사업이 시작되나?
그렇다. 11월까지 10개 대학에서 마약 예방교육을 진행한 것을 토대로 체계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규모도 커진다. 대상을 50개 대학으로 늘리고 더 많은 교수진과 학생이 참가해 대학생 마약중독 실태조사, 예방교육 교재 개발, 강사 양성과정 개발 등 심도 있는 연구를 펼쳐나갈 생각이다.
예방교육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필요한 이유는 뭔가?
자발적인 예방 활동을 통해 건전한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마약에 한 번 빠지면 회복이 어렵다. 사후 치료나 재활보다 예방이 최선이다.
이미 마약중독에 빠진 경우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빨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중독치료의 핵심은 마약이 아닌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게 하는 것이다. 똑같이 상습적으로 마약을 투약했더라도 자발적으로 한 케이스와 비자발적으로 한 케이스는 다르다. 최근 여성 마약사범이 늘었는데 그중에는 데이트폭력의 일종으로 마약을 접하게 된 경우도 있다. 불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도 비슷한 사례다. 이런 비자발적인 케이스는 잘 분리해 치료의 영역으로 가는 것이 필요하다.
마약 예방교육이 성공하려면 어떤 노력이 더 있어야 한다고 보나?
지속성이다. 반짝 등장했다가 조용하면 없어져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다. 마약 대책은 놓아선 안된다. 중독이라는 특성에 맞게 장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예방교육과 동시에 다양한 치료 시스템도 도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국 등 선진국의 우수 사례를 참고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병원이나 외래상담센터 외에 치료 공동체,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 한 개인이 삶의 전반적인 태도와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다각도로 노력해야 한다.
캠퍼스 밖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중독자들을 만나면 어렸을 때 꿈이 무엇이었는지 물어본다. 그 질문을 들으면 대부분 운다.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그런 과정이 너무 없다. 가치관과 철학의 부재가 마약을 비롯한 각종 중독을 낳는다고 생각한다. 부모 교육도 놓쳐서는 안될 것 같다. 부모가 제대로 서면 아이는 절로 제대로 선다.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마약은 왜 근절돼야 하나?
중독으로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망가진 모습을 수도 없이 봤다. 여러 도움을 받아 회복된 다음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봤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게 힘든지 잘 안다. 아이가 망가지면 부모가 망가진다. 부모가 망가지면 아이의 삶은 없다. 얼마나 처참한가. 한 인간으로 태어나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지 깊게 고찰해보길 권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임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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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