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꽃들이 놓여 있다.│연합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김영림 팀장이 전하는 ‘정인이 사건’과 아동인권
2021년 새해 벽두 대한민국은 분노했다. 양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생후 16개월 만에 세상을 뜬 ‘정인이 사건’ 때문이다.
이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은 1월 4일 “입양 아동을 사후에 관리하는 데 만전을 기해달라”며 “입양 절차 전반의 공적 관리·감독뿐 아니라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국회는 빠르게 응답했다. 1월 8일 본회의를 열고 ‘민법 개정안’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민법 개정안은 자녀에 대한 친권자의 징계권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이다.
현행 징계권 규정이 아동학대를 정당화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에는 아동학대 신고 접수 즉시 수사 의무화, 현장 출동 때 경찰과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조사 결과 공유, 경찰과 전담 공무원의 출입 가능 장소 확대 등 조사·수사 책임자의 의무와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조사에 비협조적인 아동학대 혐의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조항도 마련했다.
‘정인이 사건’을 바라보며 대한민국의 아동인권은 어디쯤인지 궁금했다. 20년간 아동 복지와 아동 옹호 활동을 해온 현장 활동가에게 들어봤다. 다음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옹호사업팀의 김영림 팀장이 전하는 현장의 소리다. 인터뷰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정인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진행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김영림 팀장│김영림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권리공약’ 3장 내용을 보면 한국은 일찌감치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방정환 선생은 제네바선언(1948년 제네바의 세계의사회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 이전에 어린이권리공약(1923년)을 발표했어요. 방정환 선생이 제시한 어린이권리공약 첫 번째 조항이 “어린이를 완전한 인격체로 예우하라”입니다. 그로부터 98년이 흐른 대한민국의 현실은 아동이 인격체로 대우받고 있다기보다 어리고 미숙한 존재,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2019년 재단 아동복지연구소에서 실시한 ‘보호자와 아동 간의 권리 인식 차이’ 조사 결과로 설명을 할게요. 자녀 세대의 권리 인식은 많이 신장됐는데, 부모 세대는 그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아동 청소년이 아직 어리고 결정 능력이 부족해서 어른의 생각을 따라야 한다’라는 항목에서 차이가 컸는데요. 부모 세대는 55.1%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자녀는 33% 정도만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어른의 말을 들어야지’라는 인식이 크다보니 자녀에 대한 체벌도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듯해요. 참고로 아동학대 행위자의 80% 정도가 부모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아동 권리 인식이 높을수록 부모의 체벌 허용도나 강요적인 태도가 낮게 나타났다는 점인데요. 어른들이 아이를 성인과 같은 인격체로 대할 수 있도록 인식 개선이 필요한 이유라고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고정관념도 꽤 있을 듯합니다.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과도 연결해 생각해볼 수 있고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을 싫어합니다. 아이들이 조금만 잘못된 행동을 하거나 잘못된 버릇이 생기면 이를 고치기 위해 훈육을 하는데요. 체벌로 훈육하는 경우가 참 많아요.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흔히 체벌하면 아이들의 행동이 고쳐진다고 말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체벌하는 그 순간만 잘못된 행동을 안 할뿐이지 근본적으로 그 행위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아이들은 안 합니다. 이번 민법 개정안은 그동안 법이 ‘보호 또는 교양을 위한 징계권’이라는 명분으로 아동학대를 훈육으로 정당화해온 것을 바로잡았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봐요. 체벌은 그 자체로 학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든 보호자가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훈육해야 할까요?
=체벌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이들을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그 방법은 부모교육을 통해 배울 필요가 있어요. 재단에서는 아동학대 예방책의 하나로 부모교육을 계속 강조해왔습니다. 임신한 부모뿐 아니라 대학생 등 예비 부모 자격의 성인까지, 전 국민적으로 부모교육을 다양화해서 언제 어디서든지 쉽게 교육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체벌 말고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부모들이 알면 아동학대가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재단에서는 어떻게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지 부모들의 인식을 바꾸는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부모용 아동권리 교육도 따로 준비하고 있고요.
-좋은 부모되기 참 어려운데요. 부모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는 것도 아동학대 방지책으로 좋은 생각 같습니다.
=여성가족부에서도 부모교육 매뉴얼을 만들어 놓았어요. 학교나 주민센터 등 주변에 부모교육 하는 장도 많이 마련되어 있고요. 재단에서도 2020년 전방위적으로 부모교육 영상을 만들어 누리소통망(SNS) 채널에 올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근 TV 육아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를 보면서, 정부에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영상을 만들어 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가 부모교육을 통해 쉽게 관점을 바꿀 수 있도록요.
▶1월 11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정문 인근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관계자들이 정인이를 추모하는 화환을 놓고 있다.│한겨레
-아동학대 사건 처리가 쉽지 않은 이유는 뭐라고 보세요? 학대 판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언론에 보도되는 학대 사건은 대부분 사망하거나 사망에 이르는 중증 상해를 입은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명백하게 사건을 판단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아동학대 신고는 아동의 신체에 상흔이 남아 있다면 비교적 쉽게 판단되는데, 정서나 방임 같은 경우는 판단의 경계가 모호해 사건 처리가 쉽지 않아요.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척도’를 이용해 학대 여부를 판단하는데, 정인이 사건에서도 평가척도에 오류가 지적되었습니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달라진다면 객관적인 척도라고 볼 수 없겠죠. 누구나 신뢰할 만한,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척도가 하루 빨리 보완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야지 학대 판정을 “당신이 하세요”라며 서로 미루지 않을 것 같아요. 재단에서도 꾸준히 요구했던 부분입니다.
-특히 의사소통을 못하는 아동의 경우 부모가 숨기려고 작정하면 현장에서 한계가 있을 거 같은데요.
=현장조사 후 사례를 관리할 때 부모들이 현관문을 안 열어줘요. 그래서 현장에서는 사례 관리도 공공성을 가지고 뛰어야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여러 차례 방문해야 하고 가정사인데 왜 개입하냐며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허다해요. 어느 공무원이 청원 글귀에 ‘구걸하듯 전화한다’라고 올렸는데 이 말에 공감합니다. 과거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할 때 한 집을 열 번 방문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아동학대 현장조사만이라도 공공성을 띄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례 관리 또한 점차 공공성을 띄어야 재학대를 방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동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비롯된 듯한데요. 아동학대 신고 현황은 어떤가요?
=‘내 아이지만 나도 함부로 때리면 안 되는 존재’라는 인식만 있으면 아동학대는 안 할 거 같아요.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애들이 맞으면 ‘남의 가정사’라고 여기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최근에는 그러지 않아요. 엄청난 변화라고 봅니다. 아동학대 신고는 해마다 늘고 있어요.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느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좀 모호하긴 해요. 신고 건수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아이들이 맞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맞고 있는 아이를 봐도 신고도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고려하면, 옆집에서 애 우는 소리가 들린다며 신고한 경우는 굉장히 발전한 거죠. 한 통의 전화로 아이를 학대에서 구출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아동학대 신고가 늘어난 것을 나쁘게 보진 않습니다.
-즉시분리 외에 형량가중, 가해자 신상공개 등을 하자는 목소리도 이번에 나왔어요. 효과적일까요?
=아동학대는 사건 처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고, 된다고 해도 미미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가 계속 나오면 ‘아이는 때려서는 안 되는구나, 아동학대 하면 이런 처벌을 받는구나’ 하고 일반인이 인지한다는 측면에서는 괜찮을 수 있다고 봐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아이는 성인과 같은 인격체라는 인식 개선부터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인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때리진 않잖아요. 근데 버릇 고친다고 아이들을 때려요. 정인이 사건을 사건 자체만 보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의 인식을 바꾸는 캠페인을 한다면, 어른들의 태도도 바뀌고, 정인이처럼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나는 아이는 줄어들지 않을까요. 정부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실시하면서 아동을 권리의 주체자로 보겠다고 천명했어요. 부모의 인식을 변화시킬 전문 서비스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정치적인 목소리는 큰 반면, 현장에서의 애로사항은 묻혀 있는 듯합니다.
=현장에서는 몇 년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예산이라도 본예산으로 편입시켜 달라고요. 범죄피해자기금 230억 원 중에서 보건복지부 예산은 11억 원에 불과합니다. 0.03%도 안 되는 금액이죠. 시·군·구별로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있어야 하고, 학대 피해 아동들이 갈 수 있는 쉼터도 같이 만들어야 하는데 모두 부족한 상황이에요. ‘즉각분리제’를 실행한다면 쉼터는 더 필요해지죠. 정부는 상담원들의 전문성 강화나 처우 개선도 하겠다고 했지만, 모든 게 결국 예산 싸움입니다. 정부에서 예산을 동반한 정책을 책임 있게 내놓을 때가 아닌지 말하고 싶어요.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앞으로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할까요?
=정말 입에 담기 싫은 말인데요. 아동보호법이 아이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라나는 법 같아요. 아이들이 사망하는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아주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아동학대처벌 특례법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최근 3년간 100명 이상의 아이들이 학대로 사망했어요. ‘아동학대는 범죄예요, 아이들을 때려서도 안 돼요’라는 인식이 강력하게 사회에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저출생 시대, 정부에서는 아이 많이 낳으라고 돈을 쏟아붓는데, 아이를 좀 더 잘 키울 수 있는 방법도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정부에 가장 당부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부처 간 보는 관점이 다른 거 같아요. 관련 부처가 모여 각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보는 자리가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경찰, 법무부, 교육부, 그리고 그 안에 현장 전문가도 함께하는 특별팀(TF)을 만들어 논의하면 좋겠어요.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