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문화탐방로는 총 10.2킬로미터의 길이다. 1구간 정자탐방로는 거연정, 군자정을 출발해 동호정, 람천정, 황암사를 거쳐 농월정까지 이어지는 6.2킬로미터로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소요된다. 2구간 선비탐방로는 농월정에서 오리숲, 광풍루까지 이어지는 4킬로미터 코스로 시간은 약 1시간 소요된다. 두 코스 다 걷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탁족만 즐기고 싶다면 1코스가 적당하다. 밤꽃이 흐드러지게 핀 6월 중순에 이춘철 함양 문화관광해설사와 함양 안의면이 고향인 이시목 여행작가와 함께 걸었다. 들쑥날쑥한 바위를 타고 흐르는 화림동계곡을 금천(錦川)이라 부른다. 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계곡물이 비단같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연정(居然亭) 아래로 흐르는 물빛이 그랬다. 비취색을 띤다. 그러나 밤꽃 향이 풍기는 농사철에는 흙 부유물이 흘러들어 비취빛이 탁해진다고 한다. 팽나무와 느티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길을 지나 들어선 거연정은 물이 탁한 비취색이었다.
거연정은 조선 광해군 치정기 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가 서산서원 옆에 억새로 지은 정자다. 조선말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자 서원이 문을 닫게 되고 정자는 퇴락한다. 후손인 전재학 등이 전시서를 추모하기 위해 새로 정자를 지으면서 기와를 올렸다. 보수공사 중이라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거연정 옆에 자란 소나무에 박새 한 마리가 날아와 마주한다. 박새로 인해 자연에 잠시 앉았다 간다며 아쉬움을 달랬다.
거연정에서 뒤돌아나와 군자정으로 향한다. 군자정과 거연정은 봉전교를 사이에 두고 가까운 거리에 자리한다. 군자정은 거연정보다 70년 앞서 지은 정자이다. 조선 성종 때의 대학자인 일두 정여창(1450~1504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시서의 후손이 지었다. 정여창 선생은 봉전마을에 처가가 있어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고 강론을 펼쳤다고 한다.
군자정을 뒤돌아나와 봉전교를 건넌다. 봉전교는 거연정을 가장 예쁘게 찍을 수 있는 자리라고 이시목 작가가 귀띔한다. 거연정을 휘둘러 흐르는 물굽이가 잘 보이는 곳이다. 지금은 계곡물이 적게 흘러서 물굽이 또한 왜소하다. 봉전교를 건너면 화림계곡 탐방 안내판이 붙어 있다.
계곡길을 수놓은 색색의 꽃들
탐방 안내판에서 화림동계곡에 자리한 정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팔담팔정(八潭八亭) 화림동 절경’이라 한다. 깊은 소 여덟개에 정자 여덟 개가 있는데, 그것을 숲속에 핀 꽃처럼 아름다운 절경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정자와 위치는 전해지지 않는다. 안내판에 나온 정자가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다.
안내판 오른쪽으로 나무데크가 놓여 있다. 데크 앞의 커다란 소나무와 벚나무가 반긴다. 군데군데 커다란 소나무들이 자라고, 그 사이에 잡목들이 울창하다. 데크 난간 옆으로 산수국이 군락을 이룬다. 자주색, 연한 청색, 백색 등 꽃 색깔이 다양하다. 산수국의 매력은 유성화보다 더 화려하게 가장자리에 꽃을 피운 무성화다. 무성화 잎에 아직 물기가 마르지 않아 청초한 색을 띤다.
영귀정을 지나 나무데크는 끝난다. 동호정 방향으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는다. 양파가 수확되는 시기이다. 밭마다 양파가 풍요롭다. 이춘철 해설사가 양파 하나를 캐서 함양 양파는 맵지 않고 맛이 달다고 알려준다. 겹겹이 싸인 양파 속살이 뽀얗다.
함양은 산양산삼, 양파, 여주, 곶감, 사과 등 특산물이 풍부한 고장이다. 올해는 양파가 풍년이다. 풍년이 마냥 기쁘지 않은 이유는 가격 폭락 때문이다. 이래저래 수확하는 농민들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때에는 들녘을 걷는 여행자 마음도 조심스럽다.
굴다리부터 동호정까지 0.9킬로미터로 시멘트 농로가 시작된다. 농로 옆은 인삼, 사과밭이다. 사과는 어른 주먹 만한 크기로 영글었고, 사과 껍질은 푸른색에 살짝 붉은 빛이 나기 시작했다.
서리는 금물이다. 시멘트 농로가 끝나고 다시 나무데크다. 데크 사이에 나무의자가 놓여 있어 쉬어가기 좋다. 선비문화탐방로는 굴곡이 없는 평평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무릎 관절에 무리가 적다. 그래서 다리가 조금 불편한 노약자도 걸을 수 있다. 대신 등산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이 길이 지루할 수 있다.
큰 바위 여러 개가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동호정으로 향한다.
장마철에는 동호정 징검다리가 잠기기도 하는데, 신발을 벗고 건너면 된다. 대신 미끄러지지 않게 주의한다. 동호정 앞에 반듯하게 펼쳐진 바위가 차일암이다.
정유재란 희생자 넋을 기리는 ‘황암사’
“선비들이 여기서 풍류를 즐겼어요. 장정 100명은 앉을 수 있답니다. 여기저기 팬 웅덩이가 술통이었어요. 사람이 많으면 넓은 웅덩이에 술을 붓고요, 사람이 적으면 적은 웅덩이에 술을 부어 조롱박으로 떠먹었지요. 저쪽 소나무숲에서 송홧가루 날아오면 송화주가 되겠지요.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선비들에게 딱 맞는 자리지요.” 이춘철 해설사가 금적암(琴笛岩), 영가대(詠歌臺) 글씨를 짚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동호정(東湖亭)은 동호 장만리 선생의 후손들이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1890년에 세웠다. 그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등에 업고 수십리 길인 의주로 피난했다고 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충신 정려를 받았다.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 자연을 벗 삼아 이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동호정을 벗어나 계곡 동쪽을 따라 걷는다. 작은 솔숲을 지나자 오른쪽에 호성마을로 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몇 미터 오르자 낡은 나무다리다. 다리를 지나 계단식 논이 펼쳐진다. 논 옆으로 너른 박석이 깔려 있다. 박석을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박석 위로 칡넝쿨이 뻗어 나온다. 논에는 다리가 난 올챙이가 와글와글하다. 호성마을을 지나고 길은 다시 호젓한 화림동계곡 옆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너럭바위에 세워진 경모정을 지난다. 공중화장실을 지나면 다시 나무데크다. 이 데크 구간은 계곡 쪽으로 숲이 울창하지 않아서 계곡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마을 뒤편으로 황석산이 머리를 삐죽 내밀고 있다. 암봉 황석산은 해발 1,192미터로 황석산 봉우리와 계곡의 지형을 이용해서 만든 황석산성이 있다. 이곳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요새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큰 싸움이 있던 곳이다. 정유재란 때는 왜구 2만7천명이 쳐들어와 수천 명에 이르는 병사와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다. 황암사는 그 넋들을 위로하기 위해 숙종 때 지은 사당이다.
너른 바위 펼쳐진 계곡이 주는 ‘탁족’의 즐거움
람천정을 지나 다리를 건넌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눠진다.
람천교 다리는 수교다. 장마에 다리가 잠겼을 때는 우회로를 걷는다. 람천교를 건너기 전에 방향표지판에 ‘황암사(임시통행로) 1.4킬로미터’라고 적혀 있다. 이 길로 가면 된다.
황암사(黃巖祠)를 둘러보고 서하교를 지나 서하교 뒤편에 난 도로길을 걷는다. 철제 난간이 세워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잠시 철제 난간이 끊기는 구간이 있다. 이곳으로 내려가면 다시 계곡길이 시작된다. 나무데크를 따라 약 50미터 더 가면 계곡으로 난 계단이 보인다. 여기부터 너른 바위가 펼쳐진 계곡이 눈까지 시원하게 한다. 탁족을 즐기기에 좋은 계곡이다.
자료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농월정은 사라졌다. 2003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주춧돌이 남아 그곳에 농월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밤에 물에 비치는 달을 희롱한다는 농월정에 앉아 달을 맞이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유수에 깎인 바위에 앉아 잠시 탁족의 즐거움을 누린다. 산그늘 내린 푸른 물빛이 그윽하다. 계곡 이 끝에서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 저 끝에서 메아리로 받아줄 것 같다. 푸른 물이 소리의 파도를 타고 흐른다.
글과 사진·김연미(여행 칼럼니스트)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