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글쓰기 강의 첫 시간에 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설문조사를 한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가, 최근 내가 읽은 책과 본 영화, 그리고 수업에 바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놀라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장단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전공을 떠나 꿈이 무척 다양하고 아름답다. 읽은 책은 너무 적고, 반대로 영화는 많이 본다. 그리고 좋은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글쓰기를 싫어한다는 말은 틀리다. 그들 역시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그것도 대학에서 학점을 따기 위한 리포트가 아니라 일상적인 글을.
글쓰기 열망을 가진 사람들은 또 있다. 중년들이다. 정신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인생 황혼기를 맞은 그들. 자신의 삶과 시간을 되돌아보면 한숨도 있고, 웃음도 있다.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남겨보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그래서 글 쓰는 법을 배우러 가까운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그곳에는 언제나 글쓰기 강의가 있으니까. 글쓰기 모임도 이곳저곳에서 생겨났다. 글쓰기에 관한 책도 끊이지 않고 나오고 심심찮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10년 전에 비해 판매점유율도 4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젠, 함께 쓰기다>처럼 글쓰기 모임의 생생한 실전 노하우까지 소개한 책도 있다.
디지털 시대, 모든 것이 말로 가능하고 편지가 사라지고 대신 스마트폰에 몇 개의 단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고작인 시대에 여전히 글쓰기 열망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날이 갈수록 국민의 평균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책은 읽지 않으면서, 글은 쓰고 싶다는 것은 모순이다. 글의 출발, 좋은 글의 바탕이 독서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의 바탕은 독서
생활 속 경험 메모하는 습관 중요
기자 출신에 글쓰기 강의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강의 때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이다. 인기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은 "뛰어난 글재주는 타고난다"고 했다. 공감한다. 글쓰기는 요령을 익힌다고, 맹렬히 연습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 할 것 없이 당대의 명문장가는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재능이 전부라면 슬프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글쓰기 강의를 듣고 노력해봐야 소용이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그런 생각에 열정을 감춘 채 중간에 포기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좋은 글쓰기는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열정과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김수현도 "뛰어난 작가는 몰라도 좋은 작가는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노력’이란 글 쓰는 법을 열심히 익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면 뭘 하나. 쓸 내용과 그것을 표현할 자신의 언어가 부족하다면. 그래서 독서가 먼저다. 읽어야 쓸 수 있고, 읽어야 나의 언어가 나도 모르게 나온다. 독서는 상상력과 사고력을 길러주고, 내가 미처 모르고 있던 감정을 이끌어낸다. 물론 무작정 책만 많이 읽는다고 글쓰기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읽으면서 그때그때 느낌이나 생각을 메모해야 한다. 단어도 좋고, 문장도 좋다.
▶백일장에 참가한 서울 압구정고 학생들 이 지난 6월 2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 서 글을 쓰고 있다. ⓒ동아DB
독서만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연극, 그림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여행에서도 사진만 찍지 말고 메모를 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펜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짧은 메모, 단어 하나가 그때의 모든 기억과 감정을 기억한다. 그래도 굳이 글쓰기 요령 몇 개쯤은 꼭 알고 싶다면 흔히 말하는 ‘문장은 짧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되도록이면 접속사는 쓰지 말고’, ‘단문으로’, ‘쓰고 나서 읽어보고 중언부언은 지우고’.
그러나 이 역시 절대 원칙은 아니다. 문장이 길면 읽기 힘들고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소설가 이태준은 "글은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기를 요구한다"고 했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의 시 ‘뱀’처럼 ‘너무 길다’란 두 단어로도 멋진 시가 되는가 하면,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처럼 처음 한 문장이 무려 100줄이 넘는 것도 있다.
소설 <칼의 노래>의 김훈은 체조선수에 비유했다. 체조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착지다. 아무리 좋은 공중회전도 마지막 땅에 내려서는 순간 자세가 흐트러지면 소용이 없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단문도 좋고, 장문도 좋다. 마무리만 완벽하면 된다. 개미에 호랑이 꼬리를 그리면 안 된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주어와 서술어의 일치, 올바른 조사의 사용을 강조했다.
글은 나의 기억이고 역사
그 안에 진실 있어야 아름답고 감동적
누구는 지금을 ‘말값만 있고 글값은 없는 세상’이라고 했다. 그런 세상에 글쓰기 열풍이 불고 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걸까. 글이야말로 곧 ‘나’이기 때문이다. 글은 나의 삶과 생각, 마음과 느낌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읽고 쓴 글이라도 거기에는 나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내가 쓰는 어떤 글도 나를 표현한다. 그래서 아무리 같은 글이라도 사람마다 다르다. 글은 정직하다. 아니 정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내 것으로 한다면,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글이 투박하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나의 언어와 생각과 느낌이 담긴 글이기에 소중하다. 인생이 그렇듯 표현이 멋있다고, 많은 지식이 들어 있다고 꼭 좋은 글은 아니다. 그 안에 진실이 있어야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셰익스피어의 멋진 대사보다 뒤늦게 겨우 우리글을 깨우친 어느 할머니가 쓴 "인생이 참 무겁다"는 한 줄이 우리의 가슴을 더 울리기도 한다. 이것이 글이고, 글쓰기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스페인 영화감독 루이스 부뉴엘은 말했다. 글은 곧 나의 기억이고 역사다. 이 때문에 글쓰기 열망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글쓰기가 한때의 열풍으로 끝나지 않고 ‘문화’가 되려면, 무엇보다 우리 모두 각자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타인의 삶에 귀 기울이는 마음부터 가져야 한다. 그 마음이 ‘글쓰기와 책이 있는 삶’, ‘글쓰기의 행복’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줄 것이다. 당장 오늘부터 나의 하루 역사가 될 짧은 일기라도 쓰자. 손으로 직접 내 글씨로. 메모라도 좋다.
글· 이대현(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201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