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글쓰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부!(Everything!)”라고 답했다. 비단 노벨상을 탄 작가여서만은 아니다. 그는 글을 통해 인생의 우선순위를 알게 됐고, 중요한 질문에 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펜이나 키보드로 백지를 채워나가기 이전에 생각을 채워나가는 일이다. 할 말이 있어야 쓸 말이 생긴다. 하지만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은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막상 흰 종이 앞에선 말줄임표만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 말은 많은데, 쓸 줄을 몰라서다.
‘글쓰기’에 돌풍이 조용히 불고 있다. 서점의 인문 서가에는 ‘글쓰기’를 다룬 책들이 평대의 절반 이상을 채운다. 각 지역의 도서관이나 독서모임, 문화센터에서도 ‘글쓰기 강좌’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말하기와 듣기가 아닌, ‘쓰기’에 대한 부쩍 늘어난 이유는, SNS나 개인 블로그, 메신저 등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경로가 많아져서다. 경로가 많아지니 경로를 이탈할 위험도 많다. ‘책을 읽고 또는 영화를 보고 나서 나만의 감상을 남기고 싶은데 말문이 막힌다. 하루의 끝에 기록을 남기고 싶은데, 늘 똑같은 하루라 같은 말만 반복하게 된다’ 등이 그렇다. 다른 사람의 글을 훔쳐보면 모두가 반짝이는데, 내 일상만 후줄근한 느낌이다. 이런 막막함을 글쓰기에 대한 책과 강의를 통해 해소하고 싶어 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글쓰기의 보다 근본적인 욕구는 자기표현, 인정에 대한 목마름에서 비롯된다. 작가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네 가지로 답했다. 첫 번째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욕구다. 둘째는 미학적 열정이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서 오는 희열이다. 세 번째는 역사적 충동으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후세를 위해 그것을 보존하려는 욕구다. 네 번째는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타인의 생각을 바꾸어보려는 욕구다. 실제로 그가 쓴 <동물농장>과 <1984> 등은 그의 이런 욕구를 드러낸다.
한편 작가 강원국은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글쓰기를 배운다는 건 내 삶을 잘 살고 싶다는 것”이라 말한다. 바야흐로 만인 저작의 시대에 더 이상 글쓰기는 직업인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머지않아 명함과 함께 자신의 책을 돌리는 시대가 찾아와, 글쓰기 강의를 그만두어야 할지 모른다는 염려를 하면서도 ‘하루빨리 모든 이들이 자기 글을 쓰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자존감이 낮은 자신을 ‘나답게’ 만든 것은 오직 글쓰기였기 때문이다. 강원국은 말한다.
“나는 글 잘 쓰는 재능은 타고나지 못했다.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많은 글을 썼다. 일정 분량을 정해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썼다. 지금은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대부분이 말이나 글과 관련이 있다.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느낀다. 날마다 새롭다. 하루하루가 충만하다.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산다.”
유슬기 | 위클리 공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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