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글쓰기’의 영역은 드넓다. 김민석 MBC PD는 드라마 제작국에서 송출실로 발령받아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던 시절, 7년 동안 매일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며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정신 승리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거기에 그는 책 후기, 등산 후기 등을 남겼고 육아일기와 영어 공부법도 연재했다. 쓰다 보니 글감이 많아졌고 읽는 이도 늘어났다. 읽는 이들의 반응은 도리어 그에게 힘이 됐다. 반응이 좋았던 몇 개의 카테고리는 책이 되어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블로그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그런 통로가 된다. 기왕 쓴다면 잘 쓰고 싶다. 그런데 잘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사글사글 상담실’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는 류대성 작가 ⓒ류대성
국어 교사로 근무하다 책읽기와 글쓰기 고전 관련 강의를 이어오던 류대성 작가는 글로 먹고사는 ‘글로자’가 된 뒤 행복을 느꼈다. 자신처럼, ‘쓰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쓰는 사람’은 적다는 생각에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었다. 그의 책 <사적인 글쓰기>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이미 ‘모든 사람이 읽고 쓰는 시대’이며, ‘쓰는 인간’이 대세가 되었다고 말한다.
▶ 류대성, <사적인 글쓰기> ⓒ휴머니스트
“네트워크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단 한 순간도 홀로 지내기 어렵습니다. 오장육부에 스마트폰까지 부착한 오장칠부의 인간이 바로 지금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뭔가 의견이 다르면 동시에 스마트폰을 꺼냅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실시간으로 흡입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화합니다.”
‘쓰는 인간’ 누구나 글을 잘 쓰고 싶어 한다. 짧은 일상의 글이나 여행기라도, 책이나 영화, 공연 리뷰 등 소소한 글이라도 이왕이면 잘 쓰면 좋다. 그런데 힘이 들어가면 글 쓰는 게 부담스럽다. 그러다 보면 안 쓰게 된다. 그 순환의 고리를 끊고자 그는 ‘사글사글 상담실’을 열었다. 사적인 글을 잘 쓰고 싶은 이들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곳이다. 2017년 12월 7일 블로그에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쓰기 상담실을 열자 신청자가 쇄도했다. 대학생부터 회사원까지, 질문은 다양했다. ‘언어 감수성을 예민하게 갈고 닦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모티콘, 줄임말, 신조어를 써도 괜찮을까요?’, ‘나는 된장의 의미로 썼는데, 사람들은 왜 젠장으로 읽을까요?’, ‘필사적으로 필사해야 하나요?’ 등이었다.
이런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 저마다의 답은 있다. 먼저 소설가 정유정은 인터뷰집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애석하게도 “문장 훈련에 관한 한 남다른 비법은 없다”고 답한다. 다만 “틈틈이 책을 보고 일정 분량 글을 쓴다”는 게 그의 비법이다. “테마를 정해 자유로운 형식으로 쓰든, 일기를 쓰든, 청탁 원고를 쓰든, 필사를 하든 한다. 다독과 필사는 한 문장에 복수의 의미를 담는 방법, 평범한 단어를 기발하게 활용하는 방식, 문장 순서를 바꾸는 법, 위트와 유머 등을 동시에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독서는 서평으로 완성된다
좋은 문장을 쓰기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은 어떨까. 신선한 도입부가 생각나지 않아서, 쓸 만한 소재가 없어서,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 쓰기를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한 답은 화학자 출신의 소설가 곽재식에게 들을 수 있다. 그는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에서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충 쓰라”고 권한다. 품질을 떨어뜨려도 되니, 써서는 안 된다고 했던 상투적인 표현이나 수십 번도 더 봤던 거들떠보기 싫은 이야기도 어쩔 수 없다면 눈 딱 감고 갖다 쓰라고 말이다. 그렇게 넝마 같은 글이라도 일단 써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류대성 작가는 내 마음으로 시선을 돌리면 한결 편해진다고 한다. 표현하려는 대상에 현혹된 나머지, 정작 ‘쓰는 이’인 자신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수 있어서다. 자신을 들여다보기 두려워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끙끙대면 흔들리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글을 쓰기 전에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왜 쓰려고 하나?’, ‘나는 무엇에 대해 쓰려고 하나?’, ‘언제 글을 쓰면 좋을까?’, ‘나에게 글이 잘 써지는 곳은 어디인가?’. 작은 글이라도 잘 쓰고 싶다면, 나와의 대화가 필수다.
소설가 김중혁은 최근 책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 자신의 영업 비밀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그도 이미 많은 질문을 받은 터였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주로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나요?’, ‘하루에 글을 몇 시간 쓰세요?’, ‘쉴 때는 무슨 일을 하세요?’ 등이다. 그는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임한다. 무엇보다 27년을 전업 작가로 살아온 그도, 흰 종이는 우주처럼 막막해 보이고 글을 쓰는 일에 지름길은 없다고 말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재능은 관찰입니다. 관찰이란 천천히 보고 오래 보는 일이고, 세상의 속도를 늦추면서 삶의 미세한 틈을 관찰하는 일입니다. 이때 비로소 남들이 보지 못한 자신만의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새로운 비유나 묘사가 막힐 때,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산책’이다. 산책을 하고 나면 그야말로 ‘무엇이든 쓰게 된다’고 말한다. ‘나만의 글을 쓰는 일’에도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사람은 다 다르므로, 누군가의 글에는 누군가의 스타일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때문에 밖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안에서 발견한 후 깎아나가는 게 맞다고 말이다. 영감을 받는 경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모든 생각을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둔다. 쓸모 있는 생각과, 쓸모없는 생각은 정해진 게 아니다. 좋은 생각 같던 생각이 금방 지루해질 때도 있고, 잡념 같던 생각이 근사한 아이디어로 변할 때도 있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의 구분을 없애는 게 글을 쓰는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그는 메모하는 습관을 권한다. 구체적인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 서평가 이원석은 “글쓰기의 출발은 서평”이라고 말한다. 읽은 내용으로 쓰기 때문에 읽은 만큼 쓸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그 감동이 휘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읽은 것을 정리해두어야 한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책에서 읽어낸 것이 무엇인지 적어나가면서, 독자는 책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해석을 정리할 기회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귀한 시간을 얻게 됩니다.”
생각이 어색하고 불완전해도 일단 써본다. 써야 고칠 수 있다. 쓰고 나면 고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감이나 통찰은 의외로 ‘쓰고 고치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독서는 서평을 통해 완성된다.
“독서는 그저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책에 대한 독자의 이해와 해석은 계속됩니다. 해석은 언어로 표현돼야 합니다. 말과 글을 통해 구체적으로 정리돼야 독서는 완결됩니다.”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