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도 TPO가 필요하다. 공적인 글쓰기에는 더욱 그렇다. Time, Place, Occasion에 맞춘 문서가 잘 쓴 글이다. 대상이 회사의 내부인인지 외부인인지에 따라, 보고받는 간부가 부서장인지 본부장인지 CEO인지에 따라 다르게 작성해야 한다. 사적인 글쓰기는 쓰는 사람이 문체를 선택할 수 있지만 공적인 글쓰기는 읽는 사람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사적인 글쓰기는 자기 자신을, 공적인 글쓰기는 읽는 이를 잘 알아야 한다. <회장님의 글쓰기>를 펴낸 강원국 작가는 “직장 글쓰기는 논술도 소설도 아니며 심리가 절반 이상”이라고 말한다. 관계가 나쁘면 아무리 잘 쓴 글도 읽지 않는다. 관계는 심리라, 상대를 잘 읽어야 한다. 결국 공적인 말과 글, 소통과 관계, 심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비즈니스의 처음과 끝에는 문서가 있다. 기획으로 시작해 보고로 마친다. /ceo를>/ceo를>>/>에 의하면 직장인의 75%는 문서작성에 공포증을 앓고 있다. 문서를 쓰느라 하염없는 야근을 하면서도, 자신 없는 문서를 들고 떨리는 마음으로 상사의 책상 앞에 서는 게 직장인의 현실이다. <제안서의 정석>에 이어 <기획의 정석>을 펴낸 저자 박신영은 작가가 되기 전에는 ‘여왕’이라 불렸다. 대학 시절 23번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른바 ‘공모전의 여왕’이다. 2년 연속 제일기획 대상, LG애드 대상 등 공모전을 휩쓴 뒤 제일기획에 입사해 실무 기획의 내공을 쌓았다.
“공모전을 준비할 때는 심사위원의 발표가 끝난 후 할 말을 예상하는 연습을 했어요. 이 기획안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죠. 기획안 PPT를 만든 뒤에는 한 장씩 넘기면서 이 과정이 논리적인지를 체크했고요.”
▶ 박신영 기획스쿨 이사 ⓒtqtq studio 이성원실장
그는 교육컨설팅 기업 폴앤마크를 거쳐 현재는 ‘기획스쿨’ 이사로 기획 관련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기획이 막막한 이들을 위한’ 기막힌 기획스쿨이다. 제안서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직장인들에게 <수학의 정석> 같은 길잡이가 되길 바랐다는 저자는 사고력만큼 중요한 게 기획력이자, 보고력이라고 말한다. 기획력은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직장인뿐 아니라 취업준비생 그리고 조별 과제를 앞둔 학생에게도 유용하다. 보고력은 보고해야 할 상사가 있을 때 필수다. 때문에 보고력을 키우려면 상대방을 먼저 알아야 한다.
“회사에서 여러 팀을 옮기면서 다양한 팀장님을 만났습니다. A 팀장님께는 칭찬받은 스타일의 기획서가 B 팀장님께는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 했고, C 팀장님은 A 스타일과 B 스타일을 섞어야 좋아했고, D 팀장님은 섞는 걸 아주 싫어하기도 했죠. 그때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이므로 거기에 맞춰서 일을 진행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보고서의 기본, 역지사지
보고는 회사 안의 언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회사의 언어로 서류화하지 못하면 평가절하된다. 사고력이 높은 사원보다 표현력이 좋은 사원이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 데일 카네기는 “한 사람의 성공은 15%의 기술 지식과 85%의 언어 표현 능력에 달려 있다”고 했다. 표현력은 생각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능력이므로 문서 작성을 넘어 미팅, 발표, 회의에까지 이어진다. 한 장의 보고서가 갖는 힘은 업무 전반에 미친다. 더구나 최근에는 업무 간소화를 위해 ‘한 장으로 보고하는’ 추세다. 두꺼운 보고서는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피곤하다. 때문에 ‘잘 읽히는’ 보고서는 상대방 입장에서 작성하는 것이다. 이때 상대방의 입장을 알 수 있는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결론이 무엇인가’, ‘근거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하나’. 박신영 이사는 이 세 가지 질문만 습관화하면 아무리 긴 글과 말도 핵심을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장의 보고서를 쓸 때 필요한 역량은 세 가지입니다. 핵심 내용을 명쾌하게 요약할 수 있는 핵심 파악법, 복잡한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는 방법, 이 내용을 짧고 명확한 문장으로 쓰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보고서를 쓸 때는 보고의 목적을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횡설수설하지 않고 깔끔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반드시 ‘결론은 한 문장으로’ 연습해야 하고요.”
전보를 치던 시절에는 글자 수대로 돈을 받았다. 박신영 이사는 그 시절을 자주 떠올린다. 전보를 치듯 말을 요약하는 연습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꼭 해야 하는 필요한 말만 골라낸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아는 것’이나 ‘내가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준비했다는 것을 알리는 순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궁금해하는 순서가 문서의 목차가 된다. 때문에 공적인 문서는 ‘두괄식’으로 쓰는 게 좋다. <일하는 문장들>을 쓴 저자 백우진은 중요한 자료일수록 최종 의사결정권을 쥔 인물에게 전해지는데, 의사결정권에 가까운 자리일수록 그 보고서에 할애할 시간과 신경이 제한된다고 말한다. 답을 먼저 제시하는 두괄식은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므로 다음에 제시되는 논리와 사례의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읽는 이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상사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시한다면, 보고서는 그의 입장에서 다시 작성해야 한다. 때문에 공적인 글쓰기의 전문가들은, ‘다시 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 기업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 중인 박신영 이사 ⓒ기획스쿨
“저는 뭐든지 100번씩 해봅니다. 공모전에서 23번 떨어졌다고 해도 100번을 안 해봤으니 좌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빠르게 결론 내지 않고, 반대로 한 번 결과가 좋았다고 계속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보고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다. 보고력은 결국, 상대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오늘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여덟 가지 글쓰기 도구
1 구조부터 세운다. 튼튼하게
2 논리로 승부한다. 날카롭게
3 규칙을 지킨다. 깔끔하게
4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인다. 간결하게
5 맞춤법은 꼭 지킨다. 꼼꼼하게
6 숫자는 확인한다. 정확하게
7 표에서 내공을 보여준다. 근사하게
8 스타일로 완성한다. 세련되게
유슬기│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