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관람 신청이 뜨겁다. 벌써 올해 주말 관람은 모두 마감됐다. 가장 빠른 신청일도 11월이다. 흡사 아이돌 콘서트 예매를 방불케 한다. 국민이 이토록 청와대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새 정부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정부도 자세를 낮추고 열린 마음으로 국민을 반긴다. 청와대를 찾는 사람들과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와대로1’을 동행했다.
지난 7월 5일 폭염주의보가 내렸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연신 부채질을 해댄다. 그런데도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어딘가 들떠 보인다. 더위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게 뭔가 즐거운 일이 있는 것 같다. 공통점은 하나. 모두 ‘청와대 관람 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야기는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정부는 어느 때보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주는 정부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정부의 일거수일투족에도 관심이 높았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정부를 조금 더 가까이,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 했다. 그렇게 청와대를 찾는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위클리 공감>도 새 정부의 청와대를 방문해 분위기를 직접 관찰하기로 했다.
사실 청와대 관람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국민 누구나 신청하면 방문이 가능하다. 어렵지 않게 청와대 누리집에서 관람 일정을 검색했다. 관람 신청은 희망일 최소 20일 전에 가능하다. 인기가 많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주말은 고사하고 평일도 선택의 범위가 좁았다. 하루 신청을 미루면 2~3일이 사라졌다. 시간대별로 모집 인원이 다르지만 하루 총 1500명의 신청 인원이 무색할 만큼 ‘신청 마감’ 표시가 떴다. 7월 현재 가장 빠른 관람 신청일이 11월이다. 심지어 2017년 주말 관람은 모두 마감됐다. 한 달 전, 늦다고 신청한 7월 5일 관람도 감사할 지경이다.
신청한 관람 시간은 오후 2시.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쬈다. 불과 이틀 전까지 장맛비가 전국을 적신 터라 대기가 유독 후텁지근했다. 신청자들은 관람 30분 전까지 경복궁 주차장에 집결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관광버스 네 대를 꽉꽉 채울 인원이 경복궁 주차장 ‘만남의 장소’에 모였다. 버스에 올라 약 5분간 청와대로 이동했다.
청와대로 가는 길. 버스는 광화문, 효자동 삼거리를 지났다. 차창 밖으로 더운 날씨에도 한복을 입고 고궁을 즐기는 관광객이 심심찮게 보였다. 뭔가 어리둥절했다. 분명 몇 달 전만 해도 이 길을 지나면 경찰이 “어디 가십니까?”라고 질문했었다. 차량을 멈춰 세워 검문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효자동 풍경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1인 시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변화에 놀란 건 나 혼자만이 아닌 듯했다.
본관 앞 일반인 관람은 10년 만
버스가 청와대 춘추관에 도착했다. 춘추관은 청와대 출입기자가 상주하는 청와대 내 프레스센터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을 맡았던 춘추관에서 유래한 것으로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곳이다.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요즘은 소통의 공간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참모진이 수시로 브리핑을 하며 기자들의 추가 질문을 받고 답변한다.
일행은 춘추관 옆 홍보관으로 향했다. 모두들 관람증을 받고 검색대를 지났다. 청와대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유의사항이 담긴 영상을 시청했다. 청와대는 북악산을 배경으로 낙산, 인왕산이 자리하고 앞으로는 한강과 청계천이 흐르는 길지라고 했다. 사진 촬영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하고 동영상 촬영은 금지라는 점을 당부했다. 본격 관람에 앞서 모두가 기념품을 받았다. 성인은 전통지갑, 아이는 지구본이었다. 뜻밖의 선물에 관람이 더 즐거워졌다. 다음 장소로 이동 중 태양광 전지판이 눈에 띄었다. 그 앞의 계기판에는 태양광으로 생성된 전력량이 표기돼 있었다. 청와대 내부에서 사용하는 일부 전력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탈원전 시대를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기기가 더 확대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관람 일행은 녹지원에 도착했다. 이름만큼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어린이날 야외행사를 진행하는 곳이란다. 그 뒤로 상춘재가 보였다. 외국에서 온 손님에게 전통가옥을 소개하고 식사 및 회의를 하는 장소다. 1983년 완공된 상춘재는 경북 봉화군의 200년 된 소나무를 이용해 지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이러한 용도로 조달되는 소나무는 “어명이요”라는 말과 함께 도끼를 받는다. 과거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때도 그랬다.
약 1000평의 녹지원 한가운데에는 172년 된 둥근 모양의 반송이 자리하고 있다. 순간 까치가 날아와서 반송에 앉아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했다. 푸르른 녹지원에 가만히 있자니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시름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녹지원 앞으로 대통령의 집무실 여민1관이 보였다. 역대 대통령들도 갑갑한 마음이 들 때면 녹지원을 보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으리라.
다음 장소는 구 본관터였다. 수궁터, 경무대터라고도 불린다. 수궁터는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수궁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경무대터는 이승만 대통령이 집무실 및 관저로 이용하며 경무대로 지었다고 한다.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경무대의 청색 지붕을 따서 청와대로 공식 개명하고 본관으로 사용했다 하여 구 본관이라고도 불린다. 모든 이름에 터가 붙는 까닭은 옛 건물이 일제의 잔재라1993년 철거되고 사진으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구 본관터는 참 굴곡진 곳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이 총독 관저를 지었고, 광복 후 미 군정 당시에는 최고 책임관이 관저로 사용했다. 이처럼 사연이 많은 것은 풍수지리상 산줄기 정기가 모인 혈, 입수(入手)이기 때문이다.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쓰인 비석도 있다. 과거 관저 공사 시 300~400년 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天下第一福地’라는 바위가 발견됐는데 이를 옮겨 적어둔 것이란다. 사람들은 기념 촬영을 하며 복을 담아 갔다.
구 본관터에서 내리막길을 지나자 제복을 입은 경찰이 문을 열었다. 흰색에 금색 무궁화가 그려진 문이 열리자 탄성이 이어졌다. 청와대의 하이라이트 건물, 본관이었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파란 기와지붕이 돋보였다. 외부는 전통 목구조이지만 내부는 현대적 구조로 지어졌다. 본관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소규모 회의실, 인왕실이 있다. 본관 좌우로 별채가 있는데 정면 왼쪽은 세종실로 국무회의를 하고, 오른쪽은 충무실로 손님과 식사하는 장소다.
1991년 완공된 본관은 대통령이 집무를 하고 외빈을 접견하는 곳이다. 최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예방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이곳에서 면담을 가졌다. 사람들은 “어머, 텔레비전에서 보던 건물이네”, “실제로 보니 좋다”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다만 본관 내부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지금의 거리는 특별하다. 일반인이 본관을 지날 수 있게 된 것이 근 10년 만이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달라진 점은 이뿐이 아니다. 과거 녹지원, 본관 대정원, 영빈관에 국한됐던 사진촬영 장소가 구 본관터, 본관까지 확대됐다. 관람객을 안내하는 경호실 소속 직원과 경찰도 열린 자세를 보였다. 곤란한 질문에도 위트 있게 답변하고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지막 관람 장소 영빈관에 도착했다. 이름처럼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다. 대통령이 대규모 회의나 만찬을 하는 연회 장소로도 쓰인다. 간혹 국가대표 선수들이 청와대에 초청돼 식사하는 모습은 대개 영빈관을 배경으로 한다. 영빈관 천장에서 우리 민족의 영광과 발전을 상징하는 월계수, 태극, 무궁화 모양이 눈에 띄었다.
▶ 청와대 관람을 손꼽아 기다렸다는 백세윤 양, 이도윤 군이 본관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C영상미디어
이날 관람객은 특정 연령대가 없었다. 오승은(42) 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과 함께 왔다. 오 씨는 “다른 엄마들이 교육 차원에서 좋다며 청와대 관람을 추천했다”고 말했다. 딸 백세윤(5) 양은 “유치원 선생님이 청와대 갔다 온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달라고 했다”며 즐거워했다. 세윤 양의 친구 이도윤(5) 군은 관람 며칠 전부터 설?다며 “대통령 할아버지를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서 다음에 다시 와야겠다”고 했다. 이날은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 국빈방문과 G20 정상회의 참석차 유럽으로 떠난 날이었다.
평소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휴대전화에 담고 다닌다는 관람객도 있었다. 한빛(29), 정소영(25) 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왔다”며 “빨리 추가경정예산안이 통과돼서 공무원 채용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 1 전남 장성군에서 온 단체 관람객이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 이름만큼 푸른 녹지원
3 구 본관터에 ‘천하제일복지’라는 글귀가 쓰인 비석
4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영빈관 ⓒC영상미디어
전남 장성군에서 37명이 단체관람을 오기도 했다. 대통령이 일하는 곳은 어떤 곳인지 직접 보고 싶었단다. 5~6명의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외국인에게는 통역기가 지급됐다. 미국에서 온 아민 오나트(38) 씨는 “청와대 관내 규율이 엄하면서도 느슨한 것 같다”며 “대통령궁(palace)을 매우 가까이에서 보니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영빈관을 나서자 시민이 거리를 오갔다. 청와대와 시민 사이에 문 하나뿐이었다. 방금 청와대를 지나왔나 싶을 정도였다.
청와대 사랑채, 신청 없이 이색 체험 가능
1시간 20분의 공식 관람이 끝났다. 그 시간이 유독 짧게 느껴졌다. 이런 아쉬움은 칠궁 관람으로 달랠 수 있다. 칠궁은 후궁의 사당을 만들어놓은 곳으로 평소에는 방문할 수 없다. 청와대 관람 시에만 선택자에 한해 가능하다.
▶ 청와대 사랑채에 마련된 대통령 집무실 체험 ⓒC영상미디어
칠궁을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은 길 건너에 있는 건물로 이동했다. 이곳은 ‘청와대 사랑채’다. 1층에는 한국 전통문화 전시관이, 2층에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곳이다. 청와대 방문의 연장선상에서 즐길 수 있다. 대통령 환영인사, 전·현직 대통령의 활동 모습 등 청와대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대통령 집무실 체험, 경호관 포토존, 청와대 배경 기념사진도 담을 수 있는 이색 체험 공간이다. 청와대 사랑채를 찾은 홍병기(65) 씨는 “청와대가 개방됐다는 뉴스를 듣고 사전 신청 없이 왔다가 들어가지 못했다”며 “아쉬운 마음에 사랑채에 방문했는데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간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찾은 사람들은 종종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를 만났다고 SNS 인증샷을 올린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내외를 만나는 게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들의 영역에 국민을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모두가 청와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선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청와대를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돌려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다. 청와대에 국민의 공간이 늘어나고 있다. 열린 청와대가 참 반갑다. 어쩌면 본관에서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그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청와대 관람 신청
관람 순서 : 만남의 장소 → 홍보관 → 녹지원 → 구 본관터 → 본관 → 영빈관 → 칠궁(선택) → 청와대 사랑채(선택)
관람 신청 : 청와대 누리집(www.president.go.kr)에서만 가능
운영일 : 매주 화~금, 둘째·넷째 주 토요일(공휴일·명절 관람 불가)
신청 인원 : 개인관람 10명 이하, 단체관람 11~200명
관람 시간 : 오전 10시, 11시 / 오후 2시, 3시 (1시간 20분 소요)
신청 기간 : 관람 희망일 20일~6개월 전 신청 가능
유의 사항 : 관람은 한 달에 한 번만 가능, 토요일 단체관람 불가
문의 : 청와대 ARS 02-730-5800
청와대 앞길 50년 만에 전면 개방
“평소 가로막던 길이 열린 길이 됐다”
청와대 근처를 지날 때 “어디 가십니까?”라는 질문은 으레 당연했다.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개방돼 야간에는 일반 시민의 통행을 제한했다. 곳곳에 설치된 검문소에서 경찰은 수시로 검문을 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보안을 요하는 곳이니 사람들은 불편해도 감수했다.
청와대가 가로막힌 건 1·21 사태가 기점이 됐다. 1968년 북한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서울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2017년 6월 26일부터 청와대 앞길을 24시간 통행할 수 있게 됐다. 50년 만이다. 어느 지점에서나 청와대 방향으로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일대는 관광지, 산책로가 됐다. 권위주의적인 공간을 탈피하고 국민과 한 걸음 가까워지기 위한 정부 노력의 일환이다. 청와대 앞길을 지나는 김정하(36) 씨는 “평소 차량을 가로막는 길이었는데 열린 길이 된 걸 보니 놀랐다”며 “보안상 괜찮을까 우려도 되지만 문재인정부의 열린 자세와 소통의 의지가 엿보여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 ‘청와대 앞길 50년 만의 한밤 산책’에 참석한 김정숙 여사와 시민들의 모습 ⓒ연합
청와대는 개방 첫날인 6월 26일, 이를 기념하며 ‘청와대 앞길 50년 만의 한밤 산책’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는 김정숙 여사,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 유홍준 교수 등과 수십 명의 시민이 참여해 경복궁까지 15분 정도를 걸었다. 정부는 둘레길을 활짝 열며 국민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선수현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