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 한 달을 맞았다. 조기 대선으로 정권 인수 과정 없이 시작한 정부라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숨 가쁘게 달려왔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정치 현안만큼 관심 있게 본 부분은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사람들이 격식을 하나둘씩 깨어나가는 모습이었다. 눈에 띄었던 몇 장면을 소개한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모든 사람이 손쉽게 연결되고,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세상에서 소통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젊은 층의 정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사회 지도층의 권위적 모습은 더 이상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한다. ‘문재인 청와대’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먼저 ‘열린 경호’다. 이번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국민들과 격의 없이 악수하고 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남에 있는 어머니 댁을 찾아뵐 때 주민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미니버스에 수행원과 함께 타고 이동하거나, 외부 일정 중에 만난 시민들과도 서슴없이 셀프 카메라를 찍었다. 대선 후보 시절 했던 ‘홍대 프리허그’ 수준의 행보도 보였다. 열린 경호도 좋지만 혹시 무슨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이 들 정도다. 열린 경호와 국민 소통 사이에 적절한 운영의 묘가 발휘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문턱을 낮춘 점도 눈에 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춘추관(春秋館)이란 건물에 모여 있다. 이곳에는 기자실, 구내식당, 기타 사무실, 그리고 브리핑룸이 있다. 브리핑룸은 1층과 2층에 하나씩 있는데 중요한 안건은 2층 브리핑룸에서 발표한다. 역대 대통령들이 상황에 따라 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여러 번 봐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2층 브리핑룸은 공식 행사가 없을 경우 늘 굳게 닫혀 있었다. 이번 정부 들어서는 상시 개방돼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취재진이 춘추관으로 몰려들어 기자실 공간이 좁아지자 청와대는 2층 브리핑룸을 임시 기자실로 열어놓았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1일 오후 신임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청와대 본관을 나와 차담회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권혁기(왼쪽부터) 춘추관장, 조국 민정수석비서관, 이정도 총무비서관, 문재인 대통령, 조현옥 인사수석비서관, 송인배 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일정총괄팀장,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연합
대통령이 직접 커피 내려 마시는 청와대
5월 19일 있었던 일이다. 이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서 인선 내용을 발표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브리핑 내용만큼 중요한 것은 인터넷 접속(연결)이다. 필자처럼 통신사 기자는 속보에 신경을 써야 하기에 인터넷이 느려지거나 갑자기 끊기는 상황이 발생하면 곧바로 ‘사고’로 연결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등장하는 공간에는 보안 문제로 무선 인터넷이 차단되는 경우가 많다. 춘추관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 브리핑이 예고되면 출입기자들은 브리핑룸에 마련된 유선 인터넷 탭에 랜선을 직접 꽂아야 한다. 다행히 그날 문재인 대통령 브리핑 때는 무선 인터넷 접속이 되도록 청와대 측이 조치를 해줬다. 물론 대통령의 외부 행사 때는 경호 문제로 종종 무선 인터넷이 차단된다. 아무튼 그날 무선 인터넷 연결은 꽤 기억에 남는다.
의전 파괴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 62회째 열린 6월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문 대통령 옆자리에 장관과 국회의장이 아닌 국가유공자가 자리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장에 들어설 때 애국지사 및 그 가족들과 나란히 입장했다. 일반적으로 삼일절과 광복절 등 국가 행사를 시작할 때는 장관이 대통령을 맞이하지만 이제부터는 대통령과 해당 행사의 상징성 있는 인물들이 함께 입장할 방침이라고 한다. 청와대는 “이러한 행사를 여는 것은 그분들의 뜻을 기리고 축하 또는 애도하기 위한 자리이기에 의전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훈포장 수여식에서는 수상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무대에 함께 오른다. 그동안 훈포장 수여식에는 수상자만 무대에 나가 훈포장을 받았다. 새 의전 절차에 따르면, 수상자와 가족이 함께 나가서 받게 된다. 한 사람이 훈포장을 받기까지 가족의 헌신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문 대통령이 그렇게 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앞서 5월 25일 청와대에서 처음으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도 형식을 깬 좋은 사례다. 회의 시작 전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참석자가 커피와 차를 직접 따라 마셨다. 문 대통령도 커피포트에서 손수 커피를 내려 마셨다. 자기가 마실 것은 자기가 챙기자는 분위기였다. 참석자들의 재킷도 남이 받아 옷걸이에 걸어주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제 의자 등받이에 걸쳤다.
▶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직접 커피를 따르고 있다. 오른쪽은 문 대통령 트위터 moonriver365에 오른 글 ⓒ뉴시스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대통령의 행보도 인상적이다. 5월 27일 토요일 기자실에서 주말 기사를 쓰던 중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떴다. 문 대통령의 트위터 아이디 ‘moonriver365’가 새로운 글을 올렸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트위터에는 “찡찡이에 이어 마루도 양산 집에서 데려왔습니다. 이산가족들이 다시 모였습니다. 찡찡이는 아직 장소가 낯설어 바깥출입을 잘 못합니다. 대신 내가 TV 뉴스를 볼 때면 착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애완 고양이 찡찡이를 안고 TV를 보는 사진과 고양이 배설물을 갈아주는 사진 세 장이 올라왔다. 마루는 애완견 풍산개 이름으로 나이가 많아 건강검진을 받느라 청와대로 늦게 이사했다고 한다.
비빔밥처럼 화합하고 협치하는 정부 기대
그날 문 대통령의 트위터 글과 사진은 언론 기사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큰 화제가 됐다. 정권 초라 대통령의 사생활 이모저모에 국민의 관심이 많은 상황. 기자 생활 처음으로 개와 고양이를 소재로 한 기사를 쓴 하루였다. 마루와 찡찡이의 청와대 생활은 모두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 문 대통령은 마루와 찡찡이 사료값은 물론 공식 행사 이외의 식비, 치약과 칫솔 등은 사비로 부담하겠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비는 급여에서 공제된다고 한다. 여러모로 파격적이다.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청와대에 ‘권위주의’를 없애겠다는 분위기도 신선하다. 5월 19일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오찬 회동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많이 달랐다. 회동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오찬 장소인 청와대 상춘재(常春齋)에 미리 도착해 손님인 원내대표들을 기다리는 문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은 각 당 원내대표들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일일이 웃으며 맞이했다. 그동안은 손님들이 청와대에 먼저 도착해 다 모인 뒤에야 대통령이 입장하는 순서로 행사가 진행돼왔다. 각 원내대표들은 “먼저 나와 계신 거냐”, “항상 저희가 먼저 와서 기다렸는데”, “오늘은 또 다릅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정오에 시작한 점심 회동은 오후 1시 30분으로 예정된 종료 시간을 훌쩍 넘긴 오후 2시 20분에야 끝났다. 메뉴는 통합과 화합을 상징하는 비빔밥이었다. 후식은 김정숙 여사가 꿀과 대춧물에 10시간 이상 졸여 만든 달콤한 인삼정과였다. 김 여사는 일일이 조각보에 포장해 손편지를 곁들여 원내대표들에게 선물했다. 손 편지에는 “귀한 걸음 감사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합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날 회동은 역대 정부 가운데 가장 빠른 ‘여야 원내대표 회동’이란 기록을 남겼다. 여소야대 형국과 정부 인선 관련 국회 협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그만큼 국회와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대통령과 원내대표의 점심 모임은 세간의 우려와 달리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대선 기간에는 서로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정국 안정을 향해 함께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정부 출범 한 달째다. 협치를 강조한 문 대통령의 마음이 임기 내내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대통령-원내대표 회동 때 메뉴로 나온 비빔밥처럼 청와대와 국회가 ‘함께’ 소통하고 ‘협치’하길 바란다. 아울러 영부인이 ‘정성 들여’ 만든 인삼정과처럼 국민들을 위해 항상 정성을 다하는 정부가 되길 기대한다.
장윤희 | 뉴시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