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딴 젊은이는 남부럽지 않은 국내 무역투자회사에 들어갔다. 연봉도 괜찮았다. 그런데 딱 2년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대학생 때부터 품어왔던 ‘사업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불처럼 타오르는 열정으로 큰 회사를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명(社名)을 ‘이그니스’로 정했다. 사업 아이템은 기능성 식사. 올해 서른둘인 젊은 사업가의 ‘푸드테크 열정’을 들어봤다.
“대학 때부터 같은 과 친구랑 사업을 했었죠. 우리 둘은 말 그대로 사업가 체질이었어요. 친구가 프랑스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데 프랑스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봤고, 우리나라 필기구를 해외에 수출도 했죠. 당연히 실패. 자금과 경험 부족 때문이었죠. 졸업하던 해에 저는 대우인터내셔널에, 친구는 대우건설에 들어갔습니다. 둘은 딱 3년 만 근무하자고 약속했죠. 월급 받아서 사업자금도 모으고 경험도 쌓자고 했지요. 연봉요? 5000만 원대였어요. 대졸 초봉치고 아주 좋았죠. 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6개월 일찍 그만뒀지요.”
박찬호(32) 대표의 말은 간단명료했다. 할 말만 하는 이였다. 그는 ‘이그니스 대표’ 대신에 제품 브랜드를 넣은 ‘랩노쉬 대표’로 써달라고 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대학 때부터 뜻을 같이했던 친구(윤세영)는 현재 같은 회사에서 전략담당 총괄이사로 근무한다.
“영어 단어 ‘노쉬(nosh)’에는 ‘식사’라는 의미가 들어 있어요. 랩노쉬는 실험실(랩)에서 만든 혁신적인 식사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으로 6억, 클라우드펀딩
1억 3000만 원 조성
무역투자회사에 다니던 20대 후반의 젊은 사원은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사업 아이템을 찾는 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미국, 유럽, 일본 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러던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기능성 식사. 미국, 영국, 일본에는 기능성 식사 시대가 도래했다는 걸 알아챘다. 기능성 식사 판매 업체로 미국의 소이렌트, 영국의 휴엘, 핀란드의 암브로나이트, 네덜란드의 조이렌트, 펄브가 활발히 영업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식사는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정서적 식사와, 바쁜 일상생활에서 필수 영양분을 공급해주면서도 시간을 절약하고자 하는 기능성 식사. 저는 현대사회에서 기능적 식사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기능적 식사를 사업 타깃으로 삼았죠. 영유아가 먹는 분유도, 다이어트 식품이나 헬스를 하는 분들이 먹는 단백질 보충제도 기능적 식사입니다. 또 있어요. 씹는 게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간편식과 환자용 간편식도 여기에 포함돼죠. 기능성 식사는 간편하면서도 영양소는 고루 들어 있고 포만감도 오래갑니다.”
박찬호 대표의 말을 들으니 이 사업,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10월에 회사를 설립했는데 제품 출시는 2015년 11월에서야 된 이유를 물었다.
“제품 개발에 필요한 개발 자금을 모으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갔어요. 친구와 제가 회사를 그만둘 때 모은 1억 원은 금방 날아갔죠. 투자자를 찾는 데 힘들었어요. 그런데도 제품 개발은 계속했죠. 돈만 생기면 개발비로 썼습니다. 그러다 2015년 7월 정부의 도움으로 6억 원 규모의 펀딩을 받았어요. 날개를 단 셈이었죠. 그해 10월에는 ‘리워드 형식(투자금을 제품으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클라우드펀딩 1억 3000만 원을 받았죠. 개미투자자들이었는데 저희 회사 제품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국내에도 기능성 식사 ‘시장’이 있다는 걸 직접 확인했죠.”
박찬호 대표는 2015년 11월부터 제품 생산, 판매에 들어갔다. 클라우드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에게는 투자금액과 이자를 더한 액수만큼의 제품을 전달했다. 반응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투자자들은 다시 제품을 주문했고 재구매율이 40%에 달했다. 보통 재구매율이 10%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대성공이었다. 제품은 회사 홈페이지와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판매했다. 그러던 중 대기업 유통업체 올리브영 측에서 연락이 왔다. ‘입점해 달라’고. 랩노쉬 제품은 현재 전국의 올리브영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테크 들어간 기능성 식품
전성시대 올 것
랩노쉬 제품은 한국영양학회가 권장하는 1일 섭취량과 각종 영양소를 그대로 따랐다. 40여 가지의 원료가 들어간 분말 형태의 제품이다. 가루가 들어 있는 플라스틱 통에 물만 넣고 흔들어 마시면 된다. 고3 수험생, 아침을 많이 거르는 직장인, 다이어트를 하는 젊은 여성들이 주 고객이다.
“어떤 분들은 미숫가루나 선식이랑 다를 바 없는 것 아니냐고 해요. 그렇지 않아요. 미숫가루나 선식은 곡물을 갈아 만들다 보니 탄수화물이 대부분입니다. 저희 회사 제품은 3대 영양소는 말할 것도 없고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까지 들어 있어요. 포만감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미래형 식사라고 자부해요.”
임직원 17명인 이 회사의 2016년 매출은 20억 원. 올해는 100억 원이 목표다. 지난 1분기 매출액이 벌써 20억 원을 넘었다.
“앞으로 이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질 겁니다. 현재 미국이나 일본에는 가정용 대체식 시장보다 기능성 식품 시장이 더 커요. 우리나라는 아직 햇반, 3분 카레와 같은 가정용 대체식 수준에 머물고 있지요. 우리도 머지않아 테크(Tech)가 들어간 기능성 식품 전성시대가 올 겁니다.”
박 대표에 따르면, 랩노쉬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유사 제품 10개 이상이 시중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어떤 제품은 랩노쉬 제품 모양을 그대로 베낀 것도 있다고 한다.
“그냥 놔둬요. 시장이 커져야 하거든요. 대기업이 들어와도 상관없어요. 저희 제품은 경쟁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니까요. 앞으로 내놓을 신제품 개발도 끝냈어요. 유사 제품은 경쟁력이 없으면 시장에서 자연 도태됩니다.”
박찬호 대표는 액체·고체형 제품, 식용 곤충으로 만든 제품, 식물성 고기 제품 등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꿈을 물었다.
“아시아 최고의 기능성 식사 선도 기업으로 키워야죠. 왜 세계가 아니고 아시아냐고요? 아시아인의 입맛은 미국, 유럽 사람들과 달라요. 특유의 맛이 있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은 꽤 까다롭습니다. 여기서 성공한다면 충분히 아시아를 공략할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아시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자신이 있습니다.”
관광벤처·푸드테크 통합공모전 개최
투어패스코리아 대상 수상
58개 우수 팀은 키친인큐베이터 등 각종 지원 받아
2017 관광벤처·푸드테크 통합공모전 시상식이 3월 30일 서울시 마포구 신촌 르호봇(1998년에 문을 연 민간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G캠퍼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6개 수상 팀 관계자와 예비창업자, 정부기관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통합공모전은 제7회 관광벤처 사업 공모전과 제2회 푸드테크 경진대회를 통합한 것이다.
이번 통합공모전에 참여한 팀은 모두 491개. 지난 1월 24일부터 한 달간 ▲푸드테크 스타트업 ▲예비관광벤처 ▲해양관광벤처 부문별로 공모를 진행해왔다. 이들 중 1차로 58개 팀을 ‘우수 팀’으로 선정했다. 우수 팀 중에서 다시 20개 팀을 선별해 3월 23일 결선대회를 개최했다. 최종 수상자로 6개 팀이 결정됐다. 대상인 국무총리상은 울산 남구 고래관광 여행객을 위한 투어패스 네트워크 구축을 사업 내용으로 하는 ‘투어패스코리아’가 차지했다. 5개 팀은 부처별 장관상을 수상했다.
1차 우수 팀으로 선발된 58개 팀은 정부로부터 각종 지원을 받는다. 먼저 푸드테크 스타트업 부문 10개 팀은 CJ와 연계한 ‘키친인큐베이터’ 맞춤형 컨설팅을 받는다. 또 ‘농식품 벤처 창업 지원 특화센터’ 입주 기회가 부여되고 농식품 현장 창업보육 지원도 받는다. 예비관광벤처 부문 38개 팀은 우선 사업화 자금(업체당 3000만 원·자부담 25% 필수)을 받는다. 또 맞춤형 컨설팅, 홍보마케팅(국내외 박람회 참가) 등 성장 단계별로 각종 맞춤형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해양관광벤처 부문 10개 팀도 마찬가지로 사업화 자금(업체당 2250만 원)을 비롯해 스타트업 교육, 맞춤형 컨설팅, 홍보마케팅 등을 지원받게 된다.
백승구 | 위클리 공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