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이와 같이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3~21일 7박 9일간 유럽 순방 일정 가운데 18일(이하 현지 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 교황청을 공식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10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 후 이동하고 있다. ⓒ연합
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에게 교황께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관심이 많다며 교황을 만나 뵐 것을 제안했다”면서 “김 위원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교황께서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적극적 환대 의사를 보였다”고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교황에게 전달했다.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는가”라는 문 대통령의 질문에 교황은 “문 대통령이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나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 교황이 사실상 방북을 수락한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에 꾸준한 관심을 보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두고 “스포츠가 어떻게 분쟁 국가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고 인류 평화를 위해 얼마나 효과적인 공헌을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3월 7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를 만들기 위한 진지한 여정을 달성하고자 하는 남북한 지도자들의 용기 있는 약속에 기도로 함께 동행할 것이다”(4월 29일) 등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 공동번영을 위해 늘 기도하며 한반도 정세의 주요 계기마다 축복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7일(현지 시간)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집전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 후 기념 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하루 전날인 10월 17일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가 열렸다. 미사는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직접 집전했으며 문 대통령은 외국 정상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기념 연설을 했다. 이는 교황청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방증한다.
교황청 특별미사·기념 연설 모두 이례적
문 대통령은 기념 연설에서 남북 정상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을 언급했다. 한반도에서 진행 중인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서해 평화수역 등 군사적 긴장감이 완화되는 현상들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인류는 그동안 전쟁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써왔다”며 “한반도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교황 성하께서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하신 기도처럼 ‘한반도와 전 세계의, 평화의 미래를 보장하는 바람직한 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며 “오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올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는 평화를 염원하는 세계인 모두의 가슴에 희망의 메아리로 울려 퍼질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10월 13~16일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다. 프랑스는 매해 국빈 방문을 2~3개국만 접수한다. 문 대통령의 프랑스 국빈 방문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 2년 만에 성사된, 매우 이례적 사례다. 문 대통령은 15일 프랑스 개선문에서 공식 환영식을 갖고 대통령궁으로 이동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최근 한반도 정세를 설명하고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협조를 당부했다.
스타트업 강국 프랑스와 청년창업 협력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줄 경우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과 생산시설의 폐기뿐만 아니라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와 핵물질 모두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며 “적어도 북한의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왔다는 판단이 선다면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하며 마크롱 대통령께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이 같은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이에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문 대통령께서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성공할 수 있도록 프랑스는 끝까지 지원하고 동반자가 되겠다”면서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 조치를 끊임없이 취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 문 대통령이 10월 14일 파리 도심의 수소 충전소를 방문해 현대자동차의 수소 전기차 ‘투싼’의 충전 장면을 지켜본 뒤 택시 기사와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양국 정상은 2004년 수립한 ‘한·불 21세기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상호 교역과 투자를 보다 균형 있게 확대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EU로 수출되는 한국산 철강제품은 대부분 자동차, 가전 등 EU 내 한국 기업이 투자한 공장에 공급되어 현지 생산 증대와 고용에 이바지하고 있다”며 “세이프가드 최종 조치 채택이 불가피하더라도 조치 대상에서 한국산 철강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의 철강 232조 조치의 여파로 EU가 한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세이프가드 잠정조치를 발표한 것과 관련, EU·G7 핵심국가인 프랑스의 협력을 구한 것이다.
▶ 1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5일 프랑스 엘리제궁 정원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친교 활동을 겸한 회담을 하고 있다. 2 문 대통령이 10월14일 ‘한·불 우정의 콘서트’를 관람한 뒤 방탄소년단(BTS)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또 과학기술, 신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 등의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유럽 내 스타트업 강국인 프랑스와 혁신성장에 역점을 두고 있는 한국이 청년창업 확대, 중소기업 발굴·육성 등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프랑스는 약 50만 개의 스타트업이 활동하는 유럽 최다 스타트업 국가로, 스타트업 기업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정부의 육성 정책인 ‘프렌치테크’를 시행하고 있다.
▶ 마크롱 대통령이 문 대통령 내외를 위해 마련한 국빈 만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
2017년 5월부터 같은 시기 임기를 시작한 공통점을 가진 양국 정상은 15일 밤 11시 30분경이 돼서야 만찬 일정을 마무리했다. 당초 예상했던 10시를 훌쩍 넘긴 시각으로 이마저도 양국 의전장이 두 정상에게 만찬을 종료할 것을 건의해 가까스로 끝이 난 것.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외국 정상들과 수많은 만찬을 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각에 일정이 끝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국빈 만찬 후 “해외 순방 과정에서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환대를 받았다”고 했다. 이날 한·불 정상은 포용적 성장, 부의 대물림, 공정경쟁, 국가의 역할, 남북·한일·북중미 관계 등 많은 현안을 두고 깊이 있는 대화를 계속했다.
다음 날인 10월 16일 문 대통령은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한-유네스코 간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모든 노력에 대해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남북 주민들 간의 연결 강화,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다. 이어 “(유네스코 차원에서) ‘씨름’의 남북 공동 등재를 추진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이 각각 추진해왔던 ‘씨름’ 등재를 남북이 공동으로 하게 된다면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에서 GP 철수, 지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하면서 “그 일원을 자연생태보존지역으로 지정한다면 인류의 훌륭한 자연유산이 될 것”이라고 유네스코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10월 17~18일 이탈리아·교황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17일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양국 대통령은 외교·국방 협력, 미래지향적 실질협력 증진, 한반도 정세와 글로벌 협력 등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역사의 한 장
이어 문 대통령은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과정에 이탈리아의 지지를 당부했다. 이에 콘테 총리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매우 중요하며 역사의 한 장을 쓰고 있다”고 평가하며 “이탈리아 정부는 항상 지속적으로 완전하게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에 이어 콘테 총리에게도 세이프가드 최종 조치 채택이 불가피하더라도 한국산 품목을 조치 대상에서 제외해줄 것을 희망했다.
▶ 문 대통령과 콘테 총리가 총리궁인 팔라조 키지에서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과 주세페콘테 이탈리아 총리가 10월 17일(현지시간) 한·이탈리아 국방협력 협정서에 서명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엘리자베타 트렌타 이탈리아 국방장관을 지켜보고 있다. ⓒ청와대
문 대통령과 콘테 총리는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정무·국방 협력, 4차 산업혁명 공동 대응을 위한 교역·투자·과학기술 발전, 문화·인적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 제고 등 실질협력에 대해 논의했다. 이에 차관급 전략대화와 산업·에너지협력 전략회의를 신설하고 국방협력 협정, 항공 협정을 체결하는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며 정치·경제·국방·문화 등에서 협력을 약속했다.
두 정상은 문화·교육·관광 분야에서 양국의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한국 전통한지가 이탈리아 지류(紙類) 문화재 복원 재료로 활용되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한지는 이탈리아 성 프란체스코의 카르툴라, 로사노 복음서, 시칠리아 카타니아대학 학위집 등 문화재 8건 복원에 활용된 바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18일 벨기에로 이동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참석한 데 이어 한·EU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정세와 포용적 경제성장 등 경제·사회 발전에 관한 우리 정부의 비전과 정책을 공유했다. 10월 20일에는 덴마크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 정상회의에 참석해 기후변화와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위한 민관 협력 증진과 개도국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