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저녁이었다. 교내 사제관 옆을 지나는데 외국 경비원들의 움직임이 제법 부산하다. 평소 학교 풍경이 아니다. 혹시 방한중인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오시려나? 예수회 출신 신부님 중에서는 처음으로 교황이 되신 분이시니, 예수회 사제 공동체를 방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공식 일정 중에는 없었다.
그러면 비공식 방문일까.
시간이 지나자 차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교황님을 알현하게 되었다며 제법 들뜬 얼굴들이었다. 어떤 가족은 ‘비바 파파’라고 적은 피켓도 준비했다. 과연 그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이끌리게 하는 것일까. “성(聖)과 속(俗)의 차이일까, 아니면 교황님을 통해 치유를 구하고 지평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믿음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가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경비원들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저편에서 검은색 자동차 한 대가 다가왔다. 문이 열리고 교황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군중들에게 화답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아주 평화로운 환대였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다리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느낌들이 교감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소통이 이뤄지는 것 같았다.
교황이 사제관으로 들어갔는데도 사람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곧 다시 그 문으로 나오겠지, 그러면 다시 그 느낌 만끽해야지, 하는 심사들이었으리라.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사제관 출입구의 점멸등이 켜질 때마다 눈들이 쏠렸다. 점멸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교황께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시 환호했다. 군중들 속에 있던 한 아이에게 교황께서 입을 맞추시며 축복해 줬다. 아주 따스한 풍경이었다. 진심으로 어린아이를 섬기는 모습이었다. “다스림이 곧 섬김인 영원한 나라”를 강조했던 프란치스코 교황다운 풍경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교황은 가능하면 낮은 곳으로 임하여 소통하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평화, 정의, 공동선, 연대, 협력, 행동 등 매우 중요한 열쇳말들을 우리에게 제시하시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들이지만, 우리 삶의 실상이 그에 미치지 못하니 절실한 말들임에 틀림없었다.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함께하는 모두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에만 머물뿐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가까이서 뵌 교황은 진정한 사람의 아들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아들처럼 행동하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기에 진정한 사람의 아들을 만나는 일에 사람들이 그토록 매료되었던 게 아닐까. 마치 ‘이슬’과도 같은 사람의 아들의 풍경에 같은 세례명을 쓰는 나 역시 숙연해졌던 밤이다.
글·우찬제(문학평론가·서강대 문학부 교수)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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