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박 9일 유럽순방에서 북한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입체외교’를 펼쳤다. 문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을 상대로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제재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며 “북한에 경제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조치를 국제사회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유럽순방 기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라스르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 등 유럽의 주요 지도자들과 정상회담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난 것도 역사적 장면이다. 아셈(ASEM,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모색하는 ‘녹색 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정상회의에도 참석했다. 이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 교황청, 벨기에 브뤼셀, 덴마크 코펜하겐을 누볐다.
문 대통령은 프랑스, 영국 등 안보리상임이사국의 위상을 존중하면서 끈기 있게 한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프랑스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해 유엔안보리상임이사국인 프랑스의 협조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후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및 발사대 폐기 약속에 이어 미국의 상응 조치 시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핵물질을 만들 수 있는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까지 밝혔다”며 “북한이 계속 비핵화 조치를 추진하도록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견인책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8일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연합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방북 의사를 이끌어낸 것은 문재인 대통령 유럽순방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전 세계 12억 9900만 명(전 세계 인구의 17.7%)에 달하는 신자를 거느린 가톨릭의 수장에게 받은 ‘지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추진에 큰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0월 18일(현지 시간)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교황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예방했다. 오후 12시 5분부터 45분까지 단독 면담이 진행됐고, 이후 10여 분 동안 선물 교환 및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멈추지 말라”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교황청을 방문했지만 ‘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면서 “‘주교시노드(세계 주교대의원회의)’ 기간 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어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하게 해주셔서 배려에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께서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 공동번영을 위해 늘 기도하며 한반도 정세의 주요 계기마다 축복과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이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웃으면서 듣고 있다. ⓒ연합
이어 문 대통령은 “지난달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위원장에게 교황께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관심이 많다며 교황을 만나 뵐 것을 제안했고, 김 위원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적극적 환대의사를 밝혔다”며 김 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교황에게 전달했다. 문 대통령은 또 “김 위원장이 그동안 교황께서 평창올림픽과 정상회담 때마다 남북 평화를 위해 축원해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고 전하자, 교황은 “오히려 내가 깊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느냐”는 문 대통령의 질문에 교황은 “문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나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또 “한반도에서 평화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 및 위안부 할머니, 꽃동네 주민 등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신 데 대해 감사하다”고 사의를 표했고 교황은 “당시 한국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위안부 할머니들이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고 회고했다.
예방 종료 후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수행원들을 소개하고, 교황을 위해 준비한 최종태 작가의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모습과 성모마리아를 형상화한 작품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이 “평화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고 말하자 교황은 “감사하다. 너무 아름답다”고 답했다.
교황은 올리브 가지와 17세기 베드로 성당을 그린 그림, 본인의 저서를 선물했다. 교황이 “성덕과 복음, 기쁨, 생태 보호에 대해 쓴 저의 책들을 드린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한국에서 번역해놓은 교황님 책을 다 읽어봤다. 원어대로 번역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황께서 무신론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쟁반 위에 있는 비둘기 모형과 묵주를 우리 측 수행원들에게 선물했다. 교황은 마지막 인사로 “대통령과 평화를 위해 저도 기도하겠다”고 말했고, 문 대통령은 “교황은 가톨릭의 스승일 뿐 아니라 인류의 스승”이라고 화답하며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수행원들이 10월 19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본부 내 유로파 빌딩에서 EU 관계자들과 확대 정상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
10월 18일 문 대통령은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해 아셈 정상회의 일정에 들어갔다. 10월 19일 문 대통령은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및 장클로드 융커 집행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국과 EU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미래 발전 방향과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 정세 및 글로벌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번 한-EU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 취임 후 열린 첫 회담이다.
회담에서 정상들은 한국과 EU가 3대 핵심 협정(기본협정, FTA, 위기관리 참여)을 기반으로 협력을 심화, 발전시켜나가고 있음을 평가했다. 또한 한-EU 간 호혜적인 교역과 자유 다자무역 증진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최근 시행된 EU의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로 한-EU 간 호혜적인 교역 관계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EU 측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EU 집행위는 지난 7월 19일부터 23개 철강 품목에 대해 잠정 세이프가드 적용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또한 정상들은 과학기술, ICT, 혁신, 중소기업 등 분야에서 공동으로 긴밀히 노력해나가기로 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공조도 강화하기로 했다.
EU 측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환영하고, 평화를 위한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과 기여를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들은 한반도의 평화뿐만 아니라 오늘날 국제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동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기후변화, 지속가능한 개발, 불법어업 방지 및 난민 문제 등 국제사회의 문제도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19일부터 ‘글로벌 도전과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동반자’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12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양자 정상회담 일정 등을 소화했다. 문 대통령은 우선 ‘포용적 성장과 지속가능 연계성 증진을 통한 미래를 위한 협력’을 주제로 한 세션의 선도 발언 등을 통해 다자무역 질서 지지, 포용적 경제성장, 경제 디지털화 등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비전을 밝혔다.
이어 열린 업무오찬 세션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북미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정세 변화와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한 한국 정부의 구상과 노력을 설명하며 지지를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아셈 정상회의에서 “한반도 평화가 아시아-유럽의 공동번영으로 이어질 것”이며, “동아시아철도공동체가 동북아의 다자 안보협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0월 19일 영국 테리사 메이 총리,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연이어 만나 “북한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비핵화를 진척시킬 경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나 대북제재 완화가 필요하고 그런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밝혔다.
라스무센 총리 “비핵화 외교 노력 지지”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아셈 열린 브뤼셀 유로파 빌딩에서 메이·메르켈 두 총리를 각각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후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 및 발사대 폐기 약속에 이어 미국의 상응 조치 시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핵물질을 만들 수 있는 영변 핵시설 폐기 용의까지 밝혔다”며 “북한이 계속 비핵화 조치를 추진하도록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견인책에 대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9일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이사회 본부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나 악수를 나누는 문 대통령(우) ⓒ연합
메이 총리는 문 대통령을 향해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진전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며 “대통령의 노력으로 한반도에 이전과는 다른 환경과 기회가 조성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메이 총리는 회담에서 브렉시트로 우려되는 한·영 무역관계에 대한 보완책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두 정상은 그간 적용돼온 브렉시트에도 한·EU 자유무역협정(FTA)의 포괄적 조치들은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사실상 합의를 이뤘다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한편 메이 총리와 문 대통령은 이날 두 차례에 걸쳐 만났다.
10월 20일 문 대통령은 1박 2일간의 벨기에 일정을 마친 뒤 제1차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덴마크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의 마지막 일정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된 북한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누릴 녹색성장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언급했다.
한국과 덴마크 정상은 10월 20일 한반도 비핵화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CVID)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 정상은 또 제약·바이오기술, 디지털 의료, 복지 분야에서 파트너십을 더욱 강화하고, 내년 양국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이날 크리스티안보르 궁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11개 항으로 구성된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두 정상은 양국이 2011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과 2016년 ‘2016-2019 공동행동 계획’ 채택 이후 크게 발전해왔다는 데 공감하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를 위해 공동 가치와 우선순위를 토대로 긴밀한 협력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기로 했다. 또 양국 간 디지털화와 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의 협력 증진을 환영하고, 이 분야의 대화·협력 증진은 양국이 노동시장·교육·사회 부문에서 미래의 기회와 도전에 대비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아울러 국제사회가 녹색경제로 이행하는 데 민관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P4G 정상회의에서 취해진 중요한 조치를 인정하고, 국가·기관·민간이 구체적 방안을 개발하고 확산해 파리기후변화협정과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 명시된 목표를 실현하도록 협력해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