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는 병안목 민달팽이과의 연체동물이다. 괄태충이라고도 불린다. 달팽이와 달리 달팽이집이 없다. 몸길이 4~5㎝, 몸 너비 1㎝의 연하고 여린 몸만 있을 뿐이다. 민달팽이의 꿈은 다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아침에는 눈부신’ 곳에서 눈을 뜨는 일이다.
‘민달팽이유니온’은 단단하고 튼튼한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이 여린 몸을 맞대고 연대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주거문제를 해결하고, 청년 주거권 보장을 위해 나아가자”고 외쳤다. 부동산 시장의 왜곡된 현실이, 가장 약한 고리인 ‘청년층’에게서 터지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2011년 만들어진 이 모임은 더불어 함께하며 쑥쑥 자랐다. 먼저 주요 대학과 연계해 민달팽이 주거 장학금을 도입했다. 2012년에는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를 설립해 주거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이 사업은 ‘위키 서울’의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에는 청년 주거 상담사 과정을 만들어 전문가를 양성했다. 2015년에는 ‘민달팽이주택조합’이 탄생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주거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대학생의 문제가 아닌 세대의 문제였다. 청년에게 안정적인 주거가 공급되고, 이를 바탕으로 안온한 공동체가 형성되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요원했다. 이들은 직접 조합을 만들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로 했다. 이른바 ‘달팽이집’의 탄생이었다.
▶ 1 달팽이집에 사는 이들은 영화감상, 소규모 음악회 등 문화생활을 즐긴다. 2 함께 살며 생기는 건의사항은 자유롭게 나눌 수 있다. 3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조합원이 나눈 후기와 사진. ⓒ민달팽이협동조합
당사자인 청년이 직접 해결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정남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사무국장은 “당사자인 우리가 먼저 나서서 새로운 집의 모델을 제시하고, 그 집의 효용을 실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공급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그리고 부동산 가격이 턱없이 치솟는 ‘민간 주택시장’에서 대다수의 민달팽이 세대는 높은 임대료와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고립된다. 이는 공간의 문제이면서 관계의 문제다. 빈곤사회연대의 자료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으로 대학교 1㎞ 내에 있는 8.5평(28㎡)짜리 방의 평균 보증금은 2627만 원, 월세는 41만 원이다. 김경서 민달팽이유니온 기획국장은 “월세 50만 원을 내고 반지하에 살고 있는데, 공부하는 학생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금액”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보유세, 종부세의 강화뿐 아니라 세입자들이 겪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의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실제로 청년들은 누구보다 비싼 임대료를 지급하고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에서는 2012년 ‘타워팰리스보다 비싼 고시원’이라는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당시 3.3㎡, 즉 1평당 임대료를 보면 서울시내 고시원이 15만 2685원으로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11만 8556원보다 1.28배 비쌌다.
청년 주거문제의 본질은 ‘탈출이 어렵다’는 데 있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지난 10월 8일~14일까지 청년 405명에게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해 취합한 ‘주거 현황’에 따르면 청년의 42%는 4~10평(13~33m2) 공간에, 9%는 4평(13m2)보다 작은 공간에 살고 있었다. 취업이나 학업을 위해 상경한 청년이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살려면 평균 65만 3000원(2018년 8월 기준)의 월세를 내야 한다. 2017년 청년층의 평균 월급이 197만 9000원이었다. 수입의 3분의 1이 방값으로 나간다. 이를 아끼기 위해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 ‘지옥고’를 전전해도 ‘내집 마련’의 길은 요원하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주택가격 통계를 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8억 2975만 원이었다. 청년의 임금으로 이 집을 사려면 월급을 34년 11개월 동안 모아야 한다. 하지만 월급을 전혀 쓰지 않아도 연평균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0.3%로 임금 상승률 2.2%의 5배다.
2014년 5월 문을 연 1호 달팽이집은 질 좋은 주거환경을 낮은 가격에 임대했다. 조합원들이 자신의 돈을 소액이라도 출자했다. ‘달팽이집’의 아이디어가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사업에 채택되어 5억 원을 융자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한 건물을 통째로 빌렸다. 이 공간 안에서 ‘주택의 비영리 공급’, ‘사회적 비용의 절감’, ‘안전망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조합과 달팽이집을 찾는 이들은 단지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공존하며 관계를 맺는 ‘안정감’을 공유했다. 실제로 달팽이집에 살아본 이들은 ‘공유주택’ 이상의 만족감을 느꼈다고 했다. 혼자 살면 집수리, 우편물이나 택배 받기, 공과금 내기 등의 일을 혼자 다 해내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서로 논의하고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집, 새로운 주거문화를 제시하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달팽이집’에 거주하는 방법은 먼저 누리집(www.minsnailcoop.com)에 방문해 입주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월세는 20~30만 원, 보증금은 100만 원 정도다. 입주 신청을 하고 나면 조합원이 되어야 한다. 만 39세 이하의 청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30만 원의 출자금과 매월 1만 원의 운영비를 입금하면 된다. 만약 입주하지 않고 주거 상담이나 공인중개서비스만 제공받고 싶다면 5만 원의 출자금과 운영비를 납부하도록 한다. 2018년 3월 기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을 통한 입주조합원은 120명 정도, 일반조합원은 260명 정도다. 조합원이 되면 매월 2회 2시간 정도 진행되는 예비조합원 교육에 참여해야 한다. 처음에는 교육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나중엔 오히려 서로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창구가 된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반상회나 플리마켓을 열기도 한다.
▶ 1 달팽이집 반상회 모습 2 달팽이집 입주민들은 함께 플리마켓을 여는 등 생활을 공유한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처음에 저희가 달팽이집을 구상할 때, 해외 사례를 공부했습니다. 전문가들도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자리 잡기 힘들다고들 했어요. 저희가 유의미한 모델을 제시한다면, 정책의 입안 속도도 빨라질 거라 생각했어요. 현재로서는 공공임대주택의 보급률도 낮고 속도도 느리니까요.”
현재 공공임대주택의 보급률은 6.7% 정도다. 민달팽이협동조합은 이 비율이 10~15%까지는 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러한 민간의 성공 사례는 공공의 재원을 활용하는 데 활력이 되었다. 협동조합형 주택과 청년주택이 늘어났다.
“청년들은 주거 공간에 첫발을 디딘 이들이에요. 쾌적한 주거공간에 진입장벽이 높은 건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죠. 정부의 정책도 단기적인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청사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세대의 청년들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말이죠.”
부동산으로 불로소득을 쌓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집은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사고파는’ 곳이 된다. 집이 상품이 되고 계급이 되면, 이로 인해 차별을 받고 배제되는 이들도 늘어난다. 협동조합주택은 가장 비싼 ‘사치품’이 된 집이 잃어버린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하다. ‘사고 싶은’ 집이 아닌 ‘살고 싶은’ 집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협력이 계속될수록 부동산 ‘지옥고’는 ‘상생도’로 바뀔 것이다.
전국 협동조합형 주택 보급 현황
서울
예술인을 위한 공간 막쿱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예술인에게 주거비용은 큰 부담이다. 예술인협동조합 주택 ‘막쿱(Mallidong Artists Cooperative·M.A.Coop)’은 예술인에게 주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주거공간이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2013년부터 예술인을 위한 집단 주거공간을 구상해 2015년 3월 예술인들이 입주했다. 막쿱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예술인이면서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 100%(2013년 기준 3인 가구 이하 449만 원)이면 지원할 수 있다. 거주 비용은 저렴한 편이다. 전용면적에 따라 3840만~9440만 원의 임대보증금과 월 임대료 1만 5000~3만 원을 낸다. 공간은 3개 동에 1인 가구 9세대, 2인 가구 10세대, 3인 가구 10세대로 구성된다. 옥상 등 공용공간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입주 예술인의 연령대는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하고, 분야는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미술, 건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막쿱에 살기 위해서는 협동조합에 가입해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사위원회를 거쳐 입주가 예정된 예술인들은 협동조합, 공동체 관련 교육을 6개월 동안 받았다. 더불어 설계를 포함해 어떤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1년여 동안 진행됐다. 입주 후에도 교육프로그램은 계속 진행 중이다.
부천
사회적 주택
경기 부천시에서는 심곡로 63번길 부천역 도보 15분 거리와 소사로 126번길 63-8 소새울역 도보 8분 거리에 위치한 청년 사회적 주택 2개 동을 각각 사회적기업인 ‘행복을나누는사람들’과 ‘조은인테리어’에서 위탁을 받아 입주자를 모집한다. 각 동에 8가구씩 총 16가구다. 입주 대상은 청년층(만 19세부터 만 39세) 및 사회초년생, 대학생이다. 2년 단위 최장 6년까지 주변 시세보다 최대 50% 이하의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동체 주택이다. 입주 청년들을 대상으로 소모임 지원과 학습, 생활, 법률, 노무, 재무관리 등 다양한 맞춤식 멘토링과 부천 사회적경제센터 연계 지원 활동도 진행한다.
전주
공적임대주택
전북 전주시가 시민들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인 ‘위스테이(westay)’를 추진한다. 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이 임대주택의 새로운 주거실험이자 입주인 협동조합 아파트인 ‘위스테이’를 운영한다. 더함은 국토교통부의 시범사업인 ‘위스테이’ 사업 주관사다. ‘위스테이’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이는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주거실험으로, 단순히 주거비용이 저렴하다는 것뿐 아니라, 입주민이 직접 아파트 운영에 참여하고 입주자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나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문화 활동 공간으로 가치를 확장시킨 사례다.
거제
지세포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거제시 지세포에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 들어선다. 지세포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경남 거제시 소동리 일원에 총 991세대가 보급된다. 지역주택조합의 분양과는 다른 개념의 임대아파트로 조합원이 아파트의 공급자이자 운영자가 되는 시스템이다.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임차인이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정책으로 임대차 계약은 2년마다 갱신하며 8년간 이사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주거가 가능하며, 임대료 상승률도 2%로 정부 권장 5%보다 훨씬 낮게 책정되어 있다. 300만 원만 준비하면 청약이 가능하고 나머지 기본 임대보증금은 입주 시까지 분할해 납부하면 된다. 지세포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만 19세 이상 누구나 가입 가능하며 입주민이 직접 시너지센터(케이터링, 애견종합센터, 농수산물직거래센터, 카셰어링, 책이나 의류, 자전거 자산공유 서비스)를 운영하며 시너지센터 참여로 얻게 된 운영 수익은 마일리지로 적립해 관리비 및 임대료 결제 시에 사용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