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한 세월 살아낸 한국인 감동의 K-스토리

2022.05.15 최신호 보기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애플TV플러스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렀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 ‘산다는 것’ 중에서
대하장편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마로니에북스)에 실린 시 한 구절을 다시 읽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애플TV플러스가 1000억 원을 투자한 드라마 <파친코>를 보고 난 직후였다. 이 드라마는 <토지>에 비견할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속박과 가난의 세월’을 살아낸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든다.
일본과 우리나라를 무대로 제작된 <파친코>는 애플TV플러스에서 공개된 직후 미국과 일본, 우리나라에서 동시에 화제가 됐다. 물론 화제의 결은 다소 차이가 있다. 한·미·일 각국이 지난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 드라마를 보기 때문에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불편하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와 1980년대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부산과 일본 도쿄, 오사카를 주 무대로 하여 격동기를 살아낸 선자(젊은 시절 김민하 분, 노년 시절 윤여정 분)를 중심으로 한 4대에 걸친 가족사가 펼쳐진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의 시각으로 기술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했기에 재미 동포, 재일 동포 등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의 삶에 집중한다.


▶영화 <미나리>│판씨네마㈜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의 기록
짧은 시간 동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쌓은 민족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듯 <파친코>는 시청자, 특히 우리나라의 시청자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전 세계인 중에서 누구보다도 치열한 삶을 살아온 한국인이기에 앞으로도 이런 부류의 드라마가 세계시장에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땅에서 펼쳐진 역사를 소재로 한 대하장편소설들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박경리의 <토지>를 시작으로 빨치산의 삶을 다룬 조정래의 <태백산맥>, 조선 민초의 삶을 그린 황석영의 <장길산>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근현대의 역사 속에서 몰락해가는 양반의 이야기를 다룬 최명희의 <혼불>이나 조선의 도적을 그린 홍명희의 <임꺽정> 등도 파란만장한 우리 역사의 기록이다. 조선 보부상들의 기록인 김주영의 <객주>도 있다.
미국으로 건너가면 그곳에도 녹록지 않은 한국인의 삶이 있다. 구한말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으로 이주해 노예처럼 일하던 우리나라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진 한 장만으로 미국으로 시집간 우리나라 여성들의 기막힌 사연도 있다. 미국에 이민 간 이민자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미나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목받으며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다.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됐다가 그곳에서 한평생을 보낸 재독 동포도 있다. 또 카레이스키로 불리는 고려인의 삶도 있고 조선족으로 불리는 재중 동포의 삶도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펼쳐졌던 조총련과 민단의 치열한 이념 싸움은 또 어떤가? 강제징집을 당해 태평양 한가운데서 죽어가야 했던 청년들도 있었고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희생된 꽃다운 조선의 여성들도 있었다. 이 작은 나라의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전 세계 어디서든 잡초처럼 근성을 갖고 살아온 것이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진한 감동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사람이었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뜨거웠다. 아버지는 선자에게 세상을 떠나기 전 ‘부모 될 자격’에 대해 말한다.
“옛날에는 내 팔자가 왜 이리 모진가 할 때가 있었지(중략). …그라고 보니께 팔자랑 상관이 없는 기라. 내가 니 부모 될 자격을 얻어야 되는 기더라. 선자야. 아버지가 강해져 가꼬 세상 더러분 것들 싹 다 쫓아버렸으니까. 아인나 니도 금세 강해질 거다. 나중에는 니 얼라들도 생기겠지. 그때 되면 니도 그럴 자격이 돼야 된다. 선자 니는 할 수 있다. 나는 니를 믿는다.”
폐질환으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선자는 삶의 격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헤쳐나간다. 드라마 속 한국인들은 가난하고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람 간의 정이 있으며 없다고 차별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어디에 살든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머리 숙이지 않고 자존감을 지킬 줄 안다.
엄밀하게 따지면 <파친코>는 K-드라마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그렇지만 K-스토리임은 분명하다. 앞으로도 글로벌시장에서 한국과 한국인의 삶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더 각광받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진한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탄한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 수 있는 탁월한 제작진과 배우가 이 땅에는 차고 넘친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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