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상흔으로 얼룩진 6월이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변이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예술혼을 불사른다. 그런 이유로 전쟁 속에서 탄생한 빼어난 문학 작품과 그림, 명곡들이 많다.
베토벤은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09년에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썼고 차이콥스키는 러시아가 나폴레옹군을 물리친 ‘조국전쟁’을 테마로 한 ‘1812년 서곡’을 완성했다.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피아노 3중주곡을 썼다. 그룹 U2는 ‘선데이 블루디 선데이(Sunday Bloody Sunday)’를 발표하면서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영국군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6·25전쟁은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3년여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도 노래는 만들어졌고 전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했다. 6·25전쟁 시기에 발표된 노래들을 들여다보면 전쟁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가거라 삼팔선아>를 부른 가수 남인수│유튜브
6·25전쟁의 상처가 잘 드러난 노래 전쟁의 불길한 예감은 1948년 남인수가 부른 ‘가거라 삼팔선아’(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에서 예고됐다.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 땅을 가고 오건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 리 길/ 꿈마다 너를 찾아 꿈마다 너를 찾아/ 삼팔선을 헤맨다.’
남한에서 미 군정이 시작된 시절에 대중가요계가 먼저 남북분단의 비극을 경고한 것이다. 1950년 6월, 그 불길한 예감이 결국 현실이 됐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6·25전쟁의 상처가 잘 드러난 노래다. 박시춘이 곡을 쓰고 그의 친구 강사랑이 작사했다. 흥남부두와 영도다리와 국제시장 등을 배경으로 1·4후퇴 전후의 누이들로 상징되는 금순이가 등장한다. 흥남부두에서 무작정 배에 올라 부산항으로 피난 왔지만 혈육과 헤어져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눈물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울고 넘던 이별 고개.’
‘단장의 미아리고개’의 ‘단장(斷腸)’은 말 그대로 장을 끊어내는 듯한 고통을 말한다. 노랫말을 쓴 원로가수 겸 작사가 반야월(다른 예명 진방남)은 전쟁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통의 기억을 노래로 만들었다.
1950년 9월 초, 피란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반야월의 처 윤경분은 어린 딸과 함께 피란길에 나섰다. 서울 미아리고개를 막 넘었을 때 허기를 견디지 못한 어린 딸이 자욱한 화약 연기 속에서 숨을 거뒀다. 정신없이 돌무더기를 만들어 딸의 시신을 묻어야 했다. 반야월이 그 슬픔을 담아서 1956년 가수 이해연(2019년 작고)이 처음 불렀다. 최근에는 송가인 등이 다시 불러 젊은 층에도 친숙한 노래지만 그 비극성은 들을 때마다 가슴을 울린다.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 가수 현인│유튜브
70여 년 흐른 오늘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 ‘전우여 잘 자라’는 6·25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노래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현인 노래)는 노랫말처럼 밀고 밀리는 전장의 참상을 전하고 있다. 작사가 유호(1921~2019)는 서울 수복을 맞아 명동에서 박시춘을 만나서 술을 마시다가 북진통일에 나서는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이 가사를 썼다. 이들 콤비가 만든 또 다른 전쟁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지금도 자주 부르는 명곡이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 많은 피난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잣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4년 여름 남인수가 부르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피란 생활을 끝내고 부산역에서 ‘서울 가는 12열차에 기대앉은 젊은 나그네’가 ‘끊지 못할 순정 때문에’ 소리 없이 운다는 노래다. 그 행간에는 삶의 막다른 길목에서 겪어야 했던 전쟁의 공포, 가난과 설움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남인수는 특유의 고음 창법으로 설움의 극치를 펼쳐 보인다. 남인수는 무대에서 앙코르를 받으면 어김없이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6·25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8군 무대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밝고 경쾌한 노래들이 생산됐다. 재즈풍의 노래 ‘수샤인 보이’나 경쾌한 댄스풍의 노래 ‘늴리리 맘보’ 같은 곡들이 유행했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흐른 오늘에도 6·25전쟁 때 만들어졌던 노래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통일의 그날이 온다면 전쟁의 상흔을 담은 노래들도 즐겁게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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