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나는 6반 학생이었고 담임 선생님은 6·25전쟁을 겪은 분이었다. 선생님은 수업 중간중간 전쟁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아주 소상히 이야기했는데 집에서 만화영화만 보고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학교에서 전쟁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나는 엄마에게 안겨 전쟁이 나면 어떡하느냐고, 우리 다 죽는 거냐며 딸꾹질이 날 때까지 울었다. 엄마는 그럴 일은 없으니 얼른 그치라고 큰 손으로 내 볼을 훔쳐 주었지만 내가 저녁밥을 안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오늘 밤에 전쟁이 나면 피난을 가야 하니 빨리 이 밥을 다 먹으라고 했다. 나는 딸꾹질을 하며 자개 무늬 식탁 한쪽 구석에서 케첩과 요구르트를 반찬 삼아 꾸역꾸역 밥을 삼켰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딸꾹질과 함께 밥을 삼키다 보니 2학년이 됐다. 나는 2학년 때도 6반에 배정됐는데 같은 선생님이 또 담임이 됐다. 나는 1년 더 딸꾹질과 함께 밥을 삼켰고 엄마한테 전쟁이 나면 우리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전쟁 때 무얼 먹고 어떻게 잤느냐며 구체적인 계획과 사례를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밤 이불 속에서 방 안을 살폈다. 전쟁이 나면 엄마는 동생을 안고 아빠는 이불과 먹을 것을 들어야 했다. 나는 내가 들고 걸을 수 있는 물건들을 고르다가 잠들었다.
여름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은 전쟁 당시 한여름에도 솜이불을 덮었다며 총알은 솜이불을 뚫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에게 오늘부터 솜이불을 덮고 자자고 했다. 엄마는 ‘얘가 더워 죽으려고 한다’며 내 말을 무시했다. 안 그래도 오늘 밤에 전쟁이 나면 어쩌나 하며 잠을 잘 이루지 못했는데 솜이불도 안 덮었으니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겠다며 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울이 와 솜이불을 꺼냈을 때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번에는 가족이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지 않아 걱정이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 이불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겨울밤을 보냈다.
그 해였는지 몇 년 후였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다. 내가 교회에서 기도한 것은 단 하나였다. 제발 전쟁이 나지 않게 해주세요. 가족이 전쟁 때문에 죽지 않게 해주세요. 가족 중 교회에 가는 사람은 없었고 부모님은 전쟁에 무심했다. 우리 가족을 살려달라고 기도할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몇 년간 일어나지 않은 전쟁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전쟁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연히 교회에도 가지 않았으며 여름에는 모시 이불을 걷어차며 편하게 잤다. 그렇게 무심히 살다가 이제야 그날들을 떠올린다. 전쟁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곳의 아이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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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