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알고 있던 일본어
아침저녁으로 한파가 느껴지다가도 한낮에는 기온이 크게 올라 일교차가 큰 시기입니다. 메마른 날씨 속에 일교차까지 크게 벌어지면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죠. 바로 감기인데요. 이럴 땐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과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면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옷차림도 중요한데요. 아침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안에는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 상황에 맞게 체온을 조절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이처럼 계절에서 또 다른 계절로 넘어가는 시기를 ‘간절기(間節氣)’라고 많이 표현하죠. 특히 의류 광고 등에서 ‘간절기 패션’ ‘간절기 코디’처럼 간절기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요.
하지만 간절기는 국어사전에 없는 말로 ‘환절기’로 써야 합니다. 이는 일본어 ‘절기의 사이(節氣の間)’에서 시간적·공간적 간격을 나타내는 ‘사이 간(間)’을 무분별하게 조합해 옮긴 말이라는 주장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에선 일본어에서 간절기를 의미하는 말은 ‘계절이 바뀔 때(季節の?り目)’로 한자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풀어서 쓰므로 간절기는 한자어권 어디에도 없는 정체불명의 단어라고도 주장하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이 바뀌는 시기를 일컫는 ‘환절기’라는 어엿한 우리말이 있다는 점입니다. 환절기라는 우리말이 버젓이 있는데도 굳이 간절기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쓸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진검승부→생사 겨루기, 18번→애창곡
얼마 전 폐막한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에서 15개 종목, 금메달 109개를 놓고 각국에서 온 선수들이 진검승부를 펼쳤는데요. ‘진검승부’란 말도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진검은 나무로 된 칼이 아닌 ‘진짜 검’인데요. 따라서 진짜 검으로 하는, 그래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승부가 진검승부입니다. 일본어 ‘신켄쇼부(しんけんしょうぶ)’에서 왔는데요. 이는 일본에서 18세기 후반부터 사용한 말로 ‘목숨까지 잃을 각오로 승부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진검승부는 일본식 표현으로 바른 우리말 표현으론 ‘생사 겨루기’를 사용할 것을 권장하는데요. 이 외에도 ‘정면 대결, 한판 승부, 맞대결’ 등을 상황에 맞게 쓰는 것도 좋습니다.
색깔에도 이 같은 사례가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며 ‘소라색’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역시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입니다. 소라색은 하늘을 의미하는 일본어 ‘소라(そら·空)’에 한자어 ‘빛 색(色)’이 합쳐진 글자로 ‘하늘색’이라는 우리말로 바꿔 써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는 ‘곤색’ 역시 ‘감색(紺色)’의 잘못된 말입니다. 감색은 짙은 청색에 적색 빛깔이 풍기는 색 또는 어두운 남색을 가리키는데요. ‘감’의 일본어 발음 ‘곤(こん)’에 한자어 ‘색’이 합쳐진 곤색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군청색, 감청색’ 등의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
‘애창곡’으로 비유하는 ‘18번(십팔번)’도 일본어 표현입니다. 일본 에도시대에 등장한 가부키(일본 전통극) 배우가 수많은 작품 중 인기 있는 걸작 18편을 선정해 이를 ‘교겐 18번’이라고 불렀는데요. 이후 ‘교겐 18번’이 ‘자주 부르는 노래’ ‘자신 있는 특기’ 등의 의미로 쓰여 우리나라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선 ‘애창곡’ ‘단골 장기’ ‘단골 노래’ 등으로 바꿔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일본어 잔재라고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개념을 담은 말이라든지, 우리 말로는 표현이 어려운 경우에는 그대로 쓸 수밖에 없겠죠. 그러나 더욱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이 있다면 굳이 일본어로 표현할 이유는 없을 텐데요.
일본에서 온 용어를 한글로 바꾼 좋은 사례도 있습니다. ‘황국 신민 학교(일본 국왕의 국민이 다니는 학교)’의 줄임말이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게 대표적입니다. 지금도 ‘망년회’ 대신 ‘송년회’로, ‘구정’ 대신 ‘설’로 순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세계화로 우리말이 풍부해지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처럼 우리말을 더 많이 사용하며 지켜나가려는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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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