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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쓰는 우리말
12월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와 거리 곳곳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만 올해를 보내기 아쉬운 듯 절정인데요. 한 해가 끝나가는 이 무렵을 세밑, 구랍이라고 하죠. 이맘때면 쉽게 들을 수 있는데 ‘연말’이라는 것만 명확할 뿐 구분하자니 애매합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세밑의 ‘세(歲)’는 한자로 해를 뜻하고 ‘밑’은 물체의 아래나 아래쪽을 말하는 순우리말입니다. 따라서 세밑은 ‘한 해의 밑, 한 해의 마지막, 한 해의 끝’이란 뜻으로 연말을 의미합니다. 같은 뜻으로 ‘세모(歲暮)’도 있습니다. ‘해(歲)가 저문다(暮)’는 뜻으로 해가 끝날 무렵이나 설을 앞둔 섣달그믐(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일컫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옛날에는 세밑이 되면 대부분 가정에서는 새해를 맞기 위해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고 차례를 위한 음식을 준비했는데요. 사당에 절을 하고 어른에게도 절을 하는 묵은 세배를 하며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잠을 자지 않는 수세(守歲)를 했다고 합니다.
세밑, 구랍, 제야
그럼 구랍(舊臘)은 언제일까요? 구랍의 ‘구(舊)’는 ‘지나다, 오래다’의 뜻이고 ‘랍(臘)’은 섣달(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을 의미합니다. 즉 구랍은 ‘음력으로 지난해 12월’로 새해가 돼 ‘지난해 12월’을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음력 1월 1일 설날(2022년 2월 1일)이 돼야 비로소 쓸 수 있는데요. 신문이나 방송에서 양력 기준으로 지난해 12월을 ‘구랍’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으로 ‘지난해 12월’이나 ‘지난 12월’이라고 쉽게 표현하는 게 좋습니다.
‘섣달그믐 밤’을 가리키는 말로는 ‘제야’도 있습니다. 양력 12월 31일 밤 보신각에서 울려퍼지는 ‘제야의 종소리’가 떠오르는데요. 섣달그믐이므로 사실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끝 달, 마지막 날 밤’ 쳐야 하지만 이 역시 양력 12월 31일 밤에 치는 게 굳어진 것입니다.
‘연말’ 하면 송년회(送年會), 망년회(忘年會)도 떠오릅니다. 둘다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베푸는 모임’이란 뜻인데요. 원래 ‘망년’은 ‘나이에 거리끼지 않고 허물없이 사귄 벗’을 의미하는 망년지우(忘年之友) 망년지교(忘年之交) 등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나라에선 긍정적 의미로 사용해왔는데요. 일제강점기 때 망년이라는 단어의 쓰임이 바뀌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400여 년 전부터 연말이 되면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만나 한 해 동안 괴롭고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잊어버리자는 의미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잔치를 벌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를 망년(忘年)이라는 단어에 회(會)를 붙여 망년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송년회, 망년회
송년회는 한 해의 마지막 무렵에 그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나누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갖는 모임을 의미하는 말로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망년회는 한 해 동안 있었던 온갖 괴로움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갖는 모임이므로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국립국어원은 망년회를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라고 정의하지만 일본식 한자어 표현이므로 ‘송년회’ ‘송년모임’ 등으로 바꿔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순우리말인 ‘설아래 모임’ ‘설밑 모임’ ‘세밑 모임’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2021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올해 역시 ‘제야의 종소리’도, 떠들썩한 송년회도 없는 연말이지만 돌이켜 보면 가족, 친구, 동료 등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눴던 추억도 많이 있을 텐데요. 소중한 사람들과 2021년을 잘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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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