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국립수목원 내 ‘육림호’ 주변의 풍경
광릉 국립수목원 ‘육림호’를 가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 입구에서 숲속 샛길로 접어들었다. 산책 길을 따라 육림호(育林湖)로 가는 길이다. 숲생태관찰로 맞은편에 키가 20여 m쯤 돼보이는 칠엽수 교목이 넓은 7개 잎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좀 더 걸으니 당단풍나무 몇 그루가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온몸에 가득 매단 채 아침 햇볕에 반짝 빛났다. 여기가 이제 산속의 작은 호수 ‘육림호’다.
11월부터 코로나19 방역체계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되면서 시민들의 숲 나들이 발길도 부쩍 늘어났다. 동시에 10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만끽하지 못하고 11월 늦가을과 초겨울에 즐길 만한 단풍 명소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물가에 맑고 시원한 단풍이 우거진 육림호는 국립수목원의 단풍 풍경을 대표하는 곳이다. 당단풍나무 뒤로 아름드리 복자기나무도 붉은색과 주황색 단풍으로 물들었다. 국립수목원은 11월에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코스로 육림호를 추천했다.
▶광릉 국립수목원 내 ‘육림호’ 주변의 풍경
2010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광릉의 부속림(광릉숲) 한자락에 조성된 국립수목원은 1124ha(헥타르)에 걸쳐 3300여 종 이상의 식물을 만나볼 수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다. 두 가지 식생기후 지역(온대 북부와 온대 중부)이 중첩돼 참나무류와 단풍나무류 등 다양한 낙엽활엽수가 우거져 늦가을 정취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서울 근교의 대규모 수목원이다. 200~300년 된 고목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하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숲길 발밑에는 줄참나무 낙엽이 가득 쌓여 만추를 느끼게 한다. 며칠 전 기온이 영하까지 갑자기 떨어지면서 가을이 순식간에 더 깊어지고 초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국립수목원 안에서도 육림호 물가 주변 나무들일수록 더 고운 단풍을 뽐낸다. 단풍은 풍부한 수분이 유지될수록 더 맑고 깨끗한 색깔을 빚어낸다. 육림호에서 만난 김성식 국립수목원 전문위원은 “며칠 전에 별안간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지면서 잎에 된서리가 내려 울긋불긋 단풍잎이 많이 떨어지고 그 뒤로 한낮 기온이 다시 오르면서 단풍잎이 조금 타들어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육림호 남쪽 호숫가에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멀리 소리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성식 위원은 “저 소리봉 산세가 여기 육림호에 그대로 들어와 비쳐 하늘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산봉우리 전체가 물속에 풍덩 빠져드는 일종의 영지(影池)인 셈이다.
1970년대에 조성된 육림호는 전체 수면 면적 0.3ha로 물가를 빙 둘러 주위에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수목원 안의 관상수원에 물을 대려고 소리봉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여기에서 막고 물을 가둔 인공 호수다. 예전에 호수 주변에 목공소가 있었는데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호수에 터빈을 설치해 60W(와트) 소규모 발전도 했다고 한다. 그 시설 흔적이 호숫가에 지금도 남아 있다.
▶광릉 국립수목원 내 ‘육림호’ 주변의 풍경
초겨울이면 나무마다 새들이 날아와
터빈 발전기 흔적 옆으로는 괴불나무가 빨간 열매를 잔뜩 매달고 불타오르듯 윤기를 내고 있었다.
“겨울이면 이 나무에 멋쟁이 새 같은 작은 겨울철새들이 몰려와 열매를 쪼아 먹으며 여러 마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풍경을 볼 수 있어요.”
김 위원이 말했다. 초겨울이면 국립수목원 숲길에 산수유, 가막살나무, 괴불나무, 백당나무, 덜꿩나무, 작살나무, 팥배나무마다 새들이 붉은 열매를 찾아 날아온다.
육림호는 물가를 빙 둘러 당단풍나무, 전나무, 갈참나무, 산철쭉, 산벚나무, 화살나무들이 감싸고 있다. 북쪽 물가에는 갈참나무 두 그루가 잎을 주황색으로 물들이며 서 있다. 늙은 갈참나무는 호수 쪽으로 기울어 있고 호숫가 벤치에 서 있는 조금 더 젊은 갈참나무는 노랗게 물든 잎을 무성하게 매달고 호수 수면 위로 가지를 무겁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온통 갈색으로 바뀐 산철쭉은 철이 한참 지났는데도 때아닌 연분홍꽃 하나를 매달고 있었다. 그 옆 메타세쿼이아 나무들 사이로 화살나무가 붉은 잎으로 물들고 작살나무도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육림호 동쪽으로 침엽수원 전나무숲길로 이어지는 부근에 들어선 통나무 귀틀집(숲속 카페) 한 채가 호수 풍광에 운치를 더한다. 1970년대에 임업직 공무원 교육을 위한 강당으로 만들어진 귀틀집이다. 카페 주변 단당풍나무와 복자기나무에 알록달록 풍성하게 매달린 붉은 단풍잎들이 가을빛을 절정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울긋불긋 단풍 사이로는 맑은 하늘이 살짝 드러났다. 호숫가 산벚나무 몇 그루도 아직 떨어지지 않고 남은 잎마다 붉게 물들어 햇살에 반짝였다.
육림호에 들어서자 대여섯명의 탐방객 일행이 국립수목원의 60대 숲해설사한테서 광릉숲 장수하늘소에 대한 설명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것이 서어나무 군락지예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 곤충인 장수하늘소가 여기 광릉숲 저쪽 서어나무 군락지에서 요새 몇 년 동안 나타나고 있어요. 서어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같은 것이 장수하늘소 애벌레가 먹이식물로 서식하는 나무예요. 그 장수하늘소를 먹이로 하는 크낙새도 여기에 서식합니다. 크낙새는 멸종 위기 단계에 있는 새예요.”
▶광릉 국립수목원에 최근 새로 조성된 이끼 정원 ‘이끼원’ | 국립수목원
10월 28일 이끼 정원 새로 조성
호수 물속에는 노란빛을 띤 갈색 빛깔이며 노란 금빛을 한 팔뚝만 한 비단잉어 10여 마리가 헤엄치고 수면 위로는 아직 초록빛으로 뒤덮고 있는 연잎 사이로 회갈색 깃털을 가진 오리들이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흰뺨검둥오리들이네요. 잉어와 잔고기들을 먹이 삼아 이 호수에 서식하지요.”
김 위원은 또 “육림호 수심이 예전에는 굉장히 깊었는데 지난 40여 년간 낙엽이 호수 바닥에 자꾸 쌓여 지금은 수심이 많이 낮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발원지 소리봉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과 당단풍나무며 복자기나무 등 낙엽활엽 교목이 한데 어우러져 육림호에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호수 저 위쪽에 키 큰 졸참나무가 보이네요. 그 옆으로 복자기나무 단풍이, 또 그 옆에 붉나무도 붉게 물들고 있네요. 단풍이 붉게 물든다고 해서 이름도 붉나무이지요.”
특히 광릉 국립수목원에 가면 오래된 숲에 온 듯한 신비로운 정원을 새로 만날 수 있다. 국립수목원은 10월 28일 선태류를 테마로 한 이끼 정원(국립수목원 이끼원)을 새로 조성했다. 이끼원은 전 세계적으로 2만여 종이 넘는 이끼의 다양한 형태와 특성을 고려해 조성됐다. 이끼는 물에 살던 조류가 진화해 육상으로 진출한 최초의 식물로 대부분 그늘지고 물기가 있는 곳에서 서식한다. 특히 이끼는 대기오염이나 가뭄과 같은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환경지표종으로서 활용 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립수목원 측은 “이끼원에는 밝은 환경에서 잘 자랄 수 있는 서리이끼, 고깔바위이끼, 그늘진 환경에서 자라기에 적합한 들덩굴초롱이끼, 들솔이끼 등 총 11종의 이끼가 사용됐다”며 “그동안 수행한 한국형 숲정원 모델개발 연구의 결과물을 활용해 숲의 경관을 모티브로 하는 이끼 정원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숲정원은 산림 식생을 바탕으로 숲의 생태적 가치와 정원의 심미적·실용적·사회문화적 기능을 함께 갖춘 정원이다.
글·사진 조계완 기자
▶고창 문수산 편백숲 | 산림청 누리집
단계적 일상회복 타고 ‘명품 숲’으로
산림청은 11월에 울긋불긋 단풍을 즐기고 낙엽이 지기 전에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가볼만 한 장소로 ‘국립 치유의 숲’ 10곳을 추천했다. 산음(양평), 장성(전남), 청태산(강원), 대관령(강원), 양평(경기), 대운산(울산), 김천(경북), 제천(충북), 예산(충남), 곡성(전남) 등이다.
이현주 산림청 산림교육치유과장은 “국립 치유의 숲에도 늦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고 있다”며 “치유의 숲에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위해 숲길, 툇마루 등산길(데크로드), 물길 등이 잘 조성돼 있다. 단풍빛으로 물든 치유의 숲을 따라 길을 걸어보기를 권한다”고 설명했다.
산림청은 또 ‘국유림 명품 숲’으로 울창한 편백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고창 문수산 편백숲을 추천했다. 산 정상을 중심으로 전북 고창군에서는 문수산이라 부르며 전남 장성군에서는 축령산이라 부른다. 장성 축령산의 명물은 국내 최대의 편백나무 숲이다. 1970년대에 조림한 73ha 규모의 편백나무 숲은 나무 굵기가 최대 지름 36cm 이상으로 우량한 생장을 보이며 곧게 자라고 있다.
문수산은 편백나무 외에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단풍나무숲을 비롯해 고로쇠나무, 비자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 등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붉게 물든 단풍을 자랑한다. 문수사 사찰로 들어가는 숲길 주변의 단풍나무 노거수(수령 200~400년 추정, 500여 그루)숲은 울긋불긋 만추의 정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산림청 주요원 국유림경영과장은 “단계적 일상회복 시기에 한적한 숲에서 늦가을 거리두기 휴식을 권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