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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얽힌 우리말
여전히 코로나19의 기세가 무섭지만 방역 체계가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되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지인들과 술자리 모임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술을 좋아하세요? 필자는 기분 좋은 달콤한 맛에 어떤 음식에 곁들여도 무난하게 잘 어우러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술 막걸리를 즐겨 마시는데요. 요즘은 지역 특색을 갖춘 제품이 많이 나와 여행지에 가면 그곳의 막걸리를 경험하곤 합니다. 전국에서 판매되는 막걸리만 500여 종에 이른다고 하니 여행을 핑계 삼아 ‘막걸리 마니아’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한데요.
사실 막걸리는 대한민국 주류 매출의 일등공신인 소주, 누구나 즐겨 마시는 맥주, 마니아층을 보유한 와인 등에 밀려 외면받기 일쑤였습니다. 10년 전 한류와 함께 ‘K-막걸리’ 전성시대가 열렸지만 이후 급격히 위축돼 인기가 시들해지고 해외 수출도 주춤했는데요.
최근 막걸리 시장이 달라졌습니다. ‘막걸리=싸구려 술’이라는 오명을 벗고 고급화 전략을 목표로 원료, 제조 방식, 숙성 기간 등을 다양화하면서 MZ세대(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로 1980~2000년대 초반 출생한 20~30대를 아우르는 말)를 주요 소비층으로 끌어들이고 있는데요. ‘전통주 당일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주류업체가 있는가 하면 양조장에 직접 찾아가 막걸리를 맛보는 ‘막걸리 양조장 투어’가 성행하고 정기적으로 막걸리를 집으로 보내주는 ‘막걸리 구독 서비스’도 생겼습니다.
막걸리를 즐기는 세대만이 아니라 막걸리 자체도 젊어졌습니다. 주류업체와 기업 간 다양한 협업으로 희소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막걸리를 넣은 빵이나 아이스크림, 초콜릿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이색 제품이 쏟아지는데요.
‘탁배기’ ‘탁주배기’ ‘탁바리’
전통 막걸리는 쌀(찹쌀)과 누룩, 물만 있으면 누구나 빚을 수 있습니다. 쌀, 누룩, 물로 술을 만든 뒤 거르는 방식에 따라 ▲청주 ▲탁주 ▲소주로 나뉘는데요. 청주는 말 그대로 ‘맑은 술’이고 탁주는 ‘흐린 술’입니다. 탁주에 용수(체의 일종)를 박아서 맑은 술만 떠내면 청주가 되고 탁주에 열을 가해 증류시키면 소주가 됩니다.
그렇다면 막걸리와 탁주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데요. 그렇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934년부터 1995년까지 집에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법률이 시행되면서 민가에서 술 빚는 행위는 불법이 됐고 민가의 다양한 막걸리도 자취를 감췄습니다. 상품화된 탁주는 지역명과 함께 막걸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돼 현재 탁주와 막걸리는 동일한 개념으로 쓰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탁주는 막걸리보다 큰 개념입니다. 법으로는 탁주라는 공식어가 있지만 막걸리가 서민 술이어서 한글 표현인 막걸리가 상표로 더 편하고 친근하게 사용되는 셈인데요.
막걸리는 지역에 따라 ‘탁배기’ ‘탁주배기’ ‘탁바리’라고도 불렀는데요. 특별한 안주도 없이 큰 술잔에 마시는 습성이 있어서 ‘대폿술’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대폿술의 ‘대포(大匏)’는 큰 바가지라는 뜻인데요. 그래서 ‘대포 한잔 할까?’ 하는 말은 ‘막걸리 한잔 할까?’와 같은 말로 쓰입니다.
‘막걸리 빚기’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막걸리의 ‘막’에 대한 재밌는 어원도 있습니다. ‘막’을 ‘함부로’ ‘거칠게’로 봐 ‘함부로 막 거른 술’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해석도 있는데요. ‘막’을 ‘금방’ ‘곧’으로 봐 ‘금방 막 거른 신선한 술’이라 막걸리가 됐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동동주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동동주는 혼탁한 정도와 상관없이 발효 뒤 밥알이 동동 떠 있는 술을 뜻합니다. 마치 개미가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부의주(浮蟻酒)’라고도 부릅니다.
얼마전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인데요. 특히 2019년 지정된 ‘숨은 무형유산 찾기’ 공모와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으로 국민이 직접 무형문화재를 제안해 지정된 첫 번째 사례라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막걸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내친김에 정부와 업계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나섰다고 하니 좋은 소식 기다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더이상 ‘어르신들만의 술’이 아닌 막걸리. 우리나라 고유의 술 막걸리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지고 세계로 더욱 뻗어나가 ‘제2의 막걸리 전성기’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백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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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