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오해하기 쉬운 한자어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 밥만 제대로 챙겨 먹어도 따로 보약이 필요 없다’는 옛 어른의 말씀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정량 섭취하는 ‘밥’은 최고의 보양식이죠. 그런데 세끼 중 아침과 저녁은 순우리말이지만 점심은 한자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점심은 ‘점찍을 점(點)’ ‘마음 심(心)’이 합쳐진 말로 아침과 저녁 사이에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먹는 음식이란 뜻입니다. 마음에 점을 찍듯 시장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조금 먹는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건데요.
이렇듯 우리 생활 곳곳에는 순우리말인 줄 착각하고 사용하는 한자어가 의외로 많은데요. 오늘은 우리 삶에 깊게 스며든 한자어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물론·도대체·심지어·어차피…
“물론이지!” 당연하다는 말 대신 자주 사용하는 이 말은 ‘아니다 물(勿)’ ‘논의할 론(論)’이 합쳐진 한자어로 ‘논하지 않는다’ 즉 ‘말할 것도 없음’을 뜻합니다. 당연하다의 당연(當然)도 한자어인데요. ‘마땅할 당(當)’ ‘그럴 연(然)’이 합쳐진 말로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함’을 의미합니다.
주로 의문을 나타낼 때 쓰이는 도대체(都大體) 역시 한자어입니다. 도(都)는 도시 혹은 전부를, 대체(大體)는 큰 몸, 큰 줄거리를 뜻하는 것으로 ‘전체의 큰 줄거리’를 말하는데요. ‘다른 말은 그만두고 요점만 말하자면’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심지어(甚至於)는 일반적으로 ~도, ~까지, ~조차 등과 함께 쓰여 부정적 어조로 사용되는 말인데요. ‘심할 심(甚)’ ‘이를 지(至)’ ‘어조사 어(於)’가 합쳐진 말로 ‘더욱 심하다 못해 나중에는’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차피(於此彼) 역시 ‘어조사 어(於)’ ‘이 차(此)’ ‘저 피(彼)’가 합쳐진 말로 ‘이렇게 하든지 저렇게 하든지’ 또는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를 말합니다.
순식간·별안간·오밀조밀…
순식간(瞬息間), 별안간(瞥眼間)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식간은 ‘눈깜짝일 순(瞬)’ ‘숨쉴 식(息)’ ‘사이 간(間)’이 합쳐진 말로 ‘눈을 한 번 깜짝하거나 숨을 한 번 쉴 만한 아주 짧은 동안’을 말합니다. 이에 비해 별안간은 ‘언뜻 볼 별(瞥)’ ‘눈 안(眼)’ ‘사이 간(間)’이 합쳐져 ‘갑작스럽고 아주 짧은 동안’을 의미하는데요. 순식간이 별안간보다 좀 더 빠른 느낌이 듭니다.
순우리말인 오목조목(자그마한 것이 모여서 야무진 느낌을 주는 모양)과 비슷한 느낌의 오밀조밀(奧密稠密)은 ‘솜씨나 재간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한 모양’을 나타내는 한자어인데요. ‘아랫목 오(奧)’에 ‘빽빽할 밀(密)’ ‘빽빽할 조(稠)’ ‘빽빽할 밀(密)’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하필(何必, 다른 방도를 취하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꼭) ▲지금(只今, 말하는 바로 이때) ▲시방(時方, 말하는 바로 이때) ▲점점(漸漸, 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 ▲역시(亦是, 어떤 것을 전제로 하고 그것과 같게) ▲혹시(或是, 그러할 리는 없지만 만일에) ▲과연(果然,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어색하다(語塞하다, 잘 모르거나 아니면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사람과 마주 대하여 자연스럽지 못하다) 등도 순우리말 같은 느낌의 한자어인데요. 억지로 만들었지만 ‘하필 지금 전화(電話)가 와서 진지(眞摯)했던 회의(會議) 분위기(雰圍氣)가 점점 어색해졌다’는 문장의 경우 ‘와서’만 빼고 모두 한자어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이 현재 우리말에서 한자어는 일반명사 비중만 70% 이상, 교과학습에서 개념어는 90% 이상 차지할 만큼 절대적인데요. 한자어에서 시작됐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점차 고유어로 정착된 만큼 이 역시 순우리말 못지않은 소중한 우리말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무엇보다 한자어는 세분화된 뜻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은 만큼 문장 안에서 각 한자어의 뜻을 제대로 알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문장의 뜻을 파악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는 데 유용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말들의 어원을 제대로 알고 쓰면 그 말의 뜻을 더 깊숙이 알 수 있는 만큼 우리의 언어표현이 더 풍부해지고 국어에 대한 지식도 높여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