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지역의 노래와 굿 음악을 소재로 하나 됨의 광복을 노래하는 국악 밴드 악단광칠│악단광칠 (ADG7) 공식 누리집
1990년대 말, 외신들이 이제 막 해외시장에 알려지기 시작한 한국 대중음악에 붙여준 이름은 다름 아닌 K-팝이다. 외신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익숙했던,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J-팝의 네이밍(이름 짓기) 규칙을 자연스럽게 한국의 대중음악에 적용한 것이다. 한국 문화에 무지했던 외국인들 입장에서 생각해볼 때 이는 직관적인 작명이었고, 이는 한국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기반으로 근대적인 대중문화 산업을 발전시켜온 입장에서 일찍이 세계화의 물꼬를 튼 J-팝은 분명 K-팝의 롤 모델(본보기상)이었고, K-팝이라는 이름은 가요에 비해 세련된 느낌을 줄 뿐 아니라 쉽게 홍보하고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으로 유리했다.
세계화에 기반한 현대화에 관심이 높았던 당시 정부나 각종 기관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 당연했다. 그러니까 K-팝이라는 음악은 출발부터 세계화라는 것을 상정한, 또한 외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주류’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돌=K-팝’이라는 인식에 대한 거부
이 지점에서 의도치 않은 왜곡 아닌 왜곡이 일어났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은 소위 ‘아이돌’ 산업 위주의 재편이 가속화됐고, 특히 해외에 알려진 제도권 음악의 경우 외국 시장을 겨냥한 아이돌 음악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았다. 외신들이나 외국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K-팝의 아이돌 음악이야말로 한국 대중문화의 현대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장르로 여겨졌을 것이고, 이미 J-팝에 익숙한 팬들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길 수 있었던 음악 스타일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단순히 한국 대중음악의 약자였던 K-팝이라는 단어는 K-팝 안에서 아이돌 음악이나 일부 주류 대중음악과 제반 산업을 가리키는 용어로 그 의미가 변해버렸고, 이 용어는 국내로 역수입돼 아이돌 음악이나 제도권 인기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새가 굳어졌다. 기존의 ‘가요’라는 명칭보다는 포괄하는 범위가 좁지만, 글로벌 시장 속의 한국 대중음악이라는 함의를 가진 새로운 범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유튜브가 출범하고 K-팝, 그중에서도 아이돌 아티스트들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행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아이돌=K-팝’이라는 인식은 더욱 강화됐다. 그러자 ‘아이돌’로 구분될 수 없는, 혹은 그 산업에 직접적으로 속해 있지 않은 부류의 음악가들이 이 네이밍을 거부하는 흐름도 포착됐다.
록, 리듬앤블루스(R&B), 힙합과 같은 장르 음악을 하는 음악가들은 아이돌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K-팝이라는 카테고리에 거부감을 느꼈고, 그저 자신들의 음악을 ‘힙합’ ‘록’과 같은 장르 이름으로 구분해주길 바랐다. 비슷한 시각이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공유됐는데, 이들은 한국계이면서도 의식적으로 K-팝 음악가로 묶이기를 꺼렸다.
아이돌 음악과는 다른 K-팝 세계에 주목
하지만 2012년에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일대 신드롬을 일으키자 K-팝에 대한 또 한 번의 인식 전환이 있었다. 한편으로 바깥에서는 한국에 아이돌 음악과는 다른 K-팝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본격적으로 의식하는가 하면, 아이돌을 비롯한 K-팝 전반에 대한 관심도 대폭 증가했다.
K-팝이 단일한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로서 주목받자 그 전까지 아이돌과 차별화를 두며 의식적으로 K-팝을 거부하던 음악가들이 기꺼이 K-팝이라는 네이밍을 껴안거나 아이돌 및 주류 K-팝과 공존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K-팝에는 아이돌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서서히 부각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방탄소년단(BTS)이 글로벌 기준에 비춰 손색없는 최첨단의 음악으로 현상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지금, K-팝이라는 용어의 쓰임새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음악 팬들은 방탄소년단의 음악과 기존 아이돌의 K-팝을 구분하는가 하면,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한 한국 대중음악의 장르 음악들에 관심을 보이며 구별 짓기에 나서고 있다.
외국의 K-팝 팬들은 한국의 R&B 음악을 ‘K-R&B’, 인디 음악을 ‘K-indie’, 힙합을 ‘K-hip-hop’이라고 굳이 별개의 용어를 만들어 부른다. 미국의 음악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서비스 애플뮤직은 주류 K-팝과 다른 작가주의형 K-팝을 가리켜 ‘네오 K-팝’이라 명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K-국악, K-클래식까지 사실상 K를 붙이지 못할 음악이 없다는 점에서 K-팝에 붙은 ‘K’라는 알파벳도 이제 단순한 국적 이상의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예스러운 구분법이 돼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한국의 기술로 외국 현지 기반의 그룹을 만드는 기술 허브의 단계로 진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K’는 그 문화적 기원을 뜻하는 표식쯤으로 의미가 축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팝이 어느 때보다도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 이름의 쓰임새는 점점 그 의미와 유효성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대_ 음악평론가이자 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K-팝에 대한 연구로 음악학(Ethnomusicology)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