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點心)이라는 단어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그 의미가 아침과 저녁 사이에 마음에 점을 찍듯 간단하게 요기하는 것이라는 설명만큼은 대체로 일치한다.
고려 중기 송나라 사절로 고려에 왔던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은 당시 왕족들이 1일 3식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조선시대의 왕족은 5끼에서 7끼까지 먹었다는 서록도 있지만 평민들은 통상 1일 2식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서민들이 규칙적으로 노동을 하게 됨에 따라 식간에 시장기를 느끼게 되자 아침에 남긴 밥으로 허기를 때우게 된 것이 점심의 유래라는 것이다.
소식이 점심의 내력이라지만 현대인에게 점심은 생활의 활력소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다. 특히 직장인에게 점심은 삶의 즐거움이자 재충전 기회이기도 하다. 최근의 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점심 때 가장 즐겨먹는 음식은 김치찌개라고 한다. 김치가 우리 식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김치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김치찌개의 주재료로 쓰이는 배추김치는 그 내력이 일반의 생각처럼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옛날의 김치는 지금보다 다양했다.
15세기 중반에 어의(御醫) 전순의(全循義)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조리서 <산가요록(山家要錄)>에는 오이지, 가지김치, 토란김치, 동치미와 파, 송이, 생강 등으로 담그는 30여 가지의 김치가 소개되어 있다. 그 이후에 나온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이나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도 죽순, 산갓, 동아, 나박김치는 나오는데 아직 배추김치는 보이지 않는다.
1809년에 나온 <규합총서(閨閤叢書)>에도 갖은 종류의 김치에다 무와 배추를 섞어 담그는 석박지까지 나오지만 그때까지도 배추통김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의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배추통김치가 등장한다. 따라서 지금의 배추김치는 조선후기에 들어와 고추가 김치의 양념으로 일반화되고 외래채소인 결구배추를 재배하면서부터 담가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의 김치는 오늘날의 장아찌 같은 형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이제 배추김치는 우리의 대표적인 부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 보니 김치찌개 또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배추김치의 역사가 짧다 보니 그것을 주재료로 하는 김치찌개의 역사도 길지 않다. 찌개라는 음식형태가 <시의전서>에 조치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현하니 그 자취는 기껏해야 한 세기 정도로 유추할 수 있다. 식품학계에서는 이 무렵 찌개가 국에서 분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고한 식품사학자 이성우(李盛雨) 교수는 김치찌개 맛있게 끓이는 요령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김치를 그대로 넣으면 너무 짜고 그렇다고 물을 많이 부으면 국이 되고 만다. 그래서 김치를 잠깐 물에 담가 알맞게 매운맛과 짠맛을 우려내야 한다. 이 요령이 김치찌개의 참맛을 결정한다. 고기도 기름기를 골라야 하며, 그렇다고 기름덩이는 안 된다. 김치찌개를 퍼먹다가 고깃덩이를 발견할 때 눈으로 보기에도 먹음직해야 한다.”
식당마다 흔한 것이 김치찌개지만 서울 청담동의 새벽집은 그 맛이 유별나다. 고기로 유명한 식당이지만 남다른 김치찌개 맛 때문에 찾는 손님이 더 많을 정도이다. 문제는 훈감한 돼지김치찌개와 개운한 멸치김치찌개 중에서 택일하기가 항상 난감하다는 점이다. 글·예종석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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