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MWC > 이동통신박람회| 한겨레
5G가 바꿔놓을 산업 생태계
1976년 개봉한 한국 로봇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V>의 주인공 훈이는 태권도 고수다. 태권V가 적을 상대할 때 훈이는 태권V 안 조종석에서 태권V를 조종한다. 그러다 강한 적을 만나 상황이 긴급해지면 훈이는 태권V를 뇌파로 조정한다. 태권도 고수인 훈이가 현란한 발차기를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태권V는 똑같이 행동하며 적을 무찌른다. 만약 태권V가 4G 환경에서 훈이의 명령을 받는다면 적을 이길 수 있을까?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다.
4G 환경에서라면 훈이가 눈으로 적의 공격을 인지하고 피하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10~50ms(밀리세컨드: 1/1000초) 후에야 태권V가 움직일 수 있다. 권투 선수의 주먹도 시속 100km나 된다. 50ms가 지연되면 이미 적에게 공격을 당한 후에야 움직일 수 있다. 5G 환경은 다르다. 5G의 지연성은 0.0001초로 인간의 반응 속도보다 빠르다. 사람의 반응 속도와 비교해보면 가장 빠르게 인지하는 청각 0.17초보다 100배는 더 빠르다. 5G 환경은 완벽한 실시간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훈이의 인지 능력보다 빠르게 명령이 전달된다. 아무리 훌륭한 조종수가 있어도 5G 통신 환경이 없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로보트 태권V, 4G 환경이었다면?
2019년 4월 5일. 한국의 3대 통신사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는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4G LTE보다 20배는 빠르고, 지연 속도는 100배나 단축했으며 한 번에 10배나 많은 개체가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5G 서비스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이와 함께 다양한 서비스들이 현란하게 펼쳐졌다. KT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마이클 잭슨의 친구 제리 그린버그 회장을 상암동 케이-라이브로 홀로그램으로 불러내 대화를 했고, 5G VR 스포츠 서비스를 통해 마치 야구장 타석에 들어간 듯한 경험을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LG유플러스의 5G 체험 대형 팝업스토어 ‘일상로 5G길’에 가면 <태양의 서커스> 등 유명 공연을 가상현실(VR)을 통해 VIP석에서 보듯 볼 수 있다. 일상로 5G 안에 있는 혼밥 식당에 자리를 잡으면 옆자리에 손나은, 차은우 등 유명 연예인이 함께 앉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서비스다. SK텔레콤은 기아차 레이를 5G 통신망을 이용한 자율주행차로 만들었다. 자율주행차 레이를 경기도 시흥시 배곧생명공원 인근 도로 2.3㎞ 구간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호출하면 고객 위치로 차가 스스로 온다. 티맵 주차 서비스는 사전에 방문할 주차장의 빈 공간을 확인하고 주차 예약, 결제도 할 수 있다. 자율주행 기술이 접목되면 주차장까지 직접 가지 않아도 자동차가 빈 주차 공간을 찾아 알아서 주차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스마트폰 단말기 업체도 질세라, 삼선전자는 5G 전용 스마트폰을 2019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공개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삼성전자의 무기는 접었다 폈다가 자유로운 폴더블 디스플레이, ‘갤럭시 폴드’다. 갤럭시 폴드는 5G 시대의 대안이다. 5G 시대에는 데이터 용량이 큰 초고화질 동영상을 쉽게 전송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서는 초고화질 영상의 진가를 알아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화면을 키우면 휴대하기가 불편하다. 갤럭시 폴드는 휴대할 때는 접어서, 초고화질 동영상을 볼 때는 펴서 이용할 수 있는 5G 시대의 디바이스다. 원격진료, 자율주행차, AR-VR, 클라우드 게임, 스마트 공장, 초고화질 동영상 등 5G 시대가 만들어갈 장밋빛 미래가 다양한 홍보물을 통해 쏟아진다. KT는 5G 통신이 창출할 사회적 가치를 47조 8000억 원으로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제조업 15조 6000억 원, 자동차 7조 3000억 원, 금융 5조 6000억 원, 헬스케어 2조 9000억 원 등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최첨단 미래 기술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만 같았는데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가 상용화된 4월 5일 한국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로에는 자율주행차가 다니지도 않고 여전히 치료를 받으려면 병원에 가야 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저화질 동영상을 보고 기괴한 VR 헤드셋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없다. 미래 가치를 반영한다는 주식시장조차 5G 시대의 개막 느낌은 들지 않는다. 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의 주가는 올해 들어 평균 12% 하락했다.
오히려 5G 통신 상용화를 앞두고 가계 통신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비판이 쇄도했다. 통신사들은 월 5만 원대부터 시작하는 요금제를 제시했다. 기존 LTE 최저 요금제를 감안하면 약 2만 원 증가하는 셈이다. 통신사들은 요금 자체는 비싸지만 데이터당 요금은 훨씬 저렴하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기존 3만 원대 요금제를 쓰던 소비자들은 5G를 쓰지 못하게 됐다”며 “부익부 빈익빈 요금제”라고 비판했다. 초고화질 영화를 2초 만에 내려받을 수 있다는 홍보에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까지 빠를 필요가 있나요?”
5G는 우리 산업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만들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잘 모르겠음’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가득한 ‘모르겠음’이다. 5G의 초저지연성은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섬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눈과 귀, 신체로 느끼는 모든 상황을 통신 네트워크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100배 많은 동시 접속은 공장에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스마트기기를 한 번에 연결하는 사물인터넷(IoT) 환경의 기반이 된다. 통신 세대의 변화가 혁신 산업군을 출현시켰듯, 초저지연성이라는 5G의 특징은 또 다른 혁신을 기대하게 한다.
예를 들어 3G 통신은 휴대폰 문자 서비스 대신 카카오톡 등 메신저 서비스를 출현케 했다. 처음에는 메신저 서비스가 그저 무료 문자 서비스로 보였지만 모바일 환경에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거대한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메신저 서비스를 기반으로 게임, 차량 호출, 지급결제, 송금, 모바일 상거래 등 각종 서비스가 만들어졌고 심지어 은행(인터넷 전문은행)도 메신저 서비스 위에 올라탔다. 4G 통신 역시 처음 나왔을 때는 ‘굳이 그렇게 빠를 필요가 있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이를 기반으로 한 동영상 서비스는 순식간에 미디어 지형을 바꿔버렸다. 모바일 분석 기관 와이즈앱이 2년간 스마트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튜브 사용 시간은 월 257억 분으로 3G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카카오톡(179억 분), 네이버(126억 분)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비단 새로운 콘텐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청년층만의 현상이 아니다. 50대 이상의 유튜브 사용 시간(79억 분)은 이미 20대와 30대를 넘어섰고, 10대(86억 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희망하는 직업 10위권 안에는 전통적인 ‘좋은 직업’을 제치고 ‘유튜버’가 5위를 차지했다.
▶2월 24일 갤럭시 스튜디오를 찾은 소비자들이 삼성전자 최초 5G 스마트폰 ‘갤럭시S10 5G’를 체험하고 있다.| 삼성전자
굳이 그렇게 빠를 필요가 있냐고?
통신회사들 역시 5G 시대의 주역은 자신들이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혁신가들의 몫이라고 말한다. 스웨덴 통신 장비업체 에릭슨은 2026년 전 세계 5G 단말·장비 시장은 344조 원, 통신 서비스는 410조 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까지는 통신산업의 영역이다. 그런데 5G를 기반으로 생겨날 새로운 융복합산업 영역은 무려 14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 역시 통신 기술의 진화가 새로운 산업을 일으킨다는 것을 감안해 진작부터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위한 정책 지원을 해왔다. 가장 먼저 5G 통신 기반을 구축하면 그만큼 5G를 기반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보려는 혁신가들도 다른 나라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13년 정부와 통신 3사, 이동통신 제조사(삼성, LG 등),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은 민관합동 5G 포럼을 창립했고 5G망 조기 구축, 서비스 상용화를 준비했다. 세계 최초의 5G망 구축을 위해 주파수를 조기에 할당하고 5G를 통해 신규 수익 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시범 사업도 지원했다. 표준 기술 정립, 5G 기반 디바이스 발굴, 보안 기술 강화 등 5G 시대에 대비한 정책들도 선도적으로 준비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직후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설치하고 IoT 전용망 구축, 5G 상용화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인프라 확보를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리고 2020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 중국, 일본 등보다 한발 앞서 2019년 3월까지 도입하기로 했다. 또 5G 통신 환경을 기반으로 2020년까지 전국 모든 신호등에 인공지능을 탑재하고, 자율주행 드론으로 범죄를 추적하는 기술을 2022년까지 완료하겠다는 융복합산업 지원 목표도 정했다.
5G 시대의 개막은 통신사를 중심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5G 시대의 주역은 통신사가 아니다. 3G 시대의 주인공은 모바일 메신저 스타트업, 4G 시대의 주역은 동영상 플랫폼이었던 것처럼 5G 시대의 주역은 초연결성, 초저지연성을 활용해 자신의 영역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사람들에게 더욱 편리하고 유쾌한 경험을 선사해줄 혁신가들이다. ‘5G 시대가 됐다는데 왜 변한 게 없지?’라고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5G를 기반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당신이 바로 5G 시대의 주인공이다.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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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