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을 가다
인천지하철 2호선 서구청역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 산자락을 둘러싸고 대학 캠퍼스처럼 병원 건물이 여러 동 들어서 있다. 그 안에 수도권 최초로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된 ‘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중증 치매환자의 치료·관리를 시작한 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을 찾아갔다.
병원 출입문 옆에 ‘보건복지부 지정 치매안심병원’이라고 쓰인 문패가 붙어 있다. 치매안심병원은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행동심리증상(BPSD)이나 섬망 등을 동반한 치매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이다. 치매관리법 제16조의4에 따라 전문 시설·인력·장비를 갖춰야 하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다. 9월 1일 인천 지역에 두 곳이 새로 지정돼 운영을 시작했다. 수도권 지역에는 처음 생긴 것이다. 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도 이번에 치매안심병원으로 지정됐다.
수도권 첫 치매안심병원… 환자 친화적 치료
병원 출입구, 면회를 온 중년 남성이 간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남성은 입원 중인 어머니의 안부를 상세히 묻고 가져온 물품을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떠났다.
10월 4일부터 요양병원 등 감염취약시설의 대면접촉 면회가 다시 가능해졌지만 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은 경계를 온전히 풀지 않았다. 면회 시간과 인원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출입구 앞에서 방문 예약을 확인하고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한 뒤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나니 병원 출입문이 열렸다. 그러고 나서도 전신소독기를 통과해야 병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마중 나온 이연순 의료사회사업센터장은 “치매환자가 문밖으로 나가 배회하는 것은 흔한 증세로 안전을 위해 병원 출입문을 수동으로 작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안은 넓은 복도와 큰 창문으로 개방감이 좋았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어디든 숲이라서 기분이 상쾌하다. 넓은 복도를 운동장 삼아 걷는 환자도 보인다.
이연순 센터장은 “신경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치매전문 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작업치료사 등의 전문 인력이 팀을 이뤄 약물과 비약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며 “치매환자들이 빠르게 지역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일반 요양병원과는 달리 치매안심병원은 치매환자 전용 병동을 설치해 약물 치료는 짧게 하고 인지치료 프로그램 같은 비약물 치료를 병행해 환자 친화적인 치료 중심으로 짧은 기간 안에 증상을 호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이 센터장은 ‘스카프 할아버지’ 사례를 들려줬다. 혈관성치매로 입원한 할아버지다. 식사 때 두르는 앞치마를 스카프처럼 목에 두르고 다녀 붙은 별명이다. 스카프 할아버지는 입원 당시 거동이 불안정하고 밥과 약을 거부하며 섬망과 과잉행동이 심했다. 약물 중재와 함께 다양한 비약물 치료를 하면서 공격성은 점차 사라지고 이젠 욕설도 하지 않는다. 식사도 스스로 하고 약도 거부하지 않는다.
스카프 할아버지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이 센터장은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돌봄과 인지기능 향상을 위한 다양한 비약물 프로그램의 효과”라고 전했다.
공용 거실을 둘러봤다. 역시나 한쪽 벽을 시원하게 뚫린 창밖으로 숲이 펼쳐진다. 여기에 모퉁이 수직정원이 청량감을 채우고 벽걸이 수족관이 생동감을 더한다.
어르신들 노래 부르며 심리안정치료도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가수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곳. 이곳은 병동 한쪽에 마련된 심리안정치료실이다. 문을 살짝 열어봤다. 여러 은은한 색깔의 조명 아래 10여 명의 어르신이 노래를 하고 있다. 비약물 치료법 가운데 하나인 스노즐렌(Snoezelen) 프로그램 시간이다. 내일 진행하는 성악가와 온라인 만남을 위한 노래 연습이기도 하다.
이 센터장은 “스노즐렌은 ‘다감각환경 중재법’으로도 불린다”며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전정 감각 등 다양한 감각에 ‘기분 좋은 자극’을 줌으로써 환자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고 신체적·심리적 재활을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소개했다.
살짝 들여다본 스노즐렌실 내부는 마치 바닷속에 들어간 느낌이다. 푸르른 빛깔의 오묘한 조명이 기분 좋게 시각을 자극한다. ‘엄마 배 속이 이럴까’ 싶게 안락하다.
이 센터장은 “물침대를 이용해 몸이 물 위로 떠다니는 느낌을 줘 자극하기도 한다”며 스노즐렌의 다양한 감각적 자극을 설명했다.
색색의 잔잔한 물결이 넘실대는 듯한 공간에서 노래하는 어르신들의 소리가 파도처럼 기운차다. 이 센터장은 “스노즐렌 외에도 원예치료, 인지재활치료, 미술치료, 음악산책치료, 신체활동치료, 동물매개치료 등 다양한 비약물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치매환자의 증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배회, 초조, 불안, 신경과민, 불면, 흥분과 폭력성이다. 치매환자의 치료 순응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단순히 약물 치료만으로는 치매환자 돌봄이 어렵다.
이 센터장이 말하는 인간다움을 존중하는 돌봄이란 무엇일까? 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은 ‘휴머니튜드(Humanitude) 케어’를 우리나라 최초로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인간 존중 바탕 선진 돌봄 기법
프랑스어로 ‘인간다움’을 뜻하는 휴머니튜드는 치매환자의 신체를 구속하는 강제적인 돌봄에서 벗어나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선진 돌봄 기법으로 세계 11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장은 “‘보다, 말하다, 만지다, 서다’의 네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치매환자와 신뢰를 쌓아가는 돌봄”이라며 “환자와 눈을 맞추고 계속 말을 걸고 다정하게 만져주며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이를 통해 치매환자가 서고 걷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치매안심병원을 돌아보면서 치매환자는 주로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약물 복용으로 낮에도 잠자기가 일쑤라는 세간의 편견을 지웠다. 치매 어르신을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보고 돌보는 일.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주저할 일이 아니다.
“기억은 잃어버렸어도 인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치매환자들이 일상생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에 지역사회와 국가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글 심은하 기자, 사진 이연순 의료사회사업센터장
예방·돌봄·치료·가족 지원
전 주기적 치매국가책임제
정부는 2008년 ‘치매와 전쟁’을 선포한 이후 다양한 대책을 추진 중이다. 2011년 ‘치매관리법’을 제정했고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도입해 치매 예방부터 돌봄, 치료, 가족 지원 등 전 주기적 치매 관리체계를 국가에서 돌보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에 지역사회 치매관리 거점기관으로 전국 256개 시·군·구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해 상담과 진단, 예방 활동, 사례관리 등 통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치매안심센터는 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5월 12일부터 대면 프로그램을 축소 또는 중단했으나 2022년 5월 2일부터 전국 256곳 치매안심센터가 운영을 정상화했다. 앞으로 대면 프로그램은 물론 치매환자와 가족 상담, 검진, 조호물품 제공 등 모든 서비스를 정상 운영한다.
현재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어르신은 399만 명(치매환자 50만 명)으로 센터를 방문해 치매 예방 및 인지강화교실 참여, 쉼터를 통한 낮 시간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다. 가족들도 치매안심센터 내 가족 카페를 이용하며 치매환자 가족이 쉼터를 이용하는 동안 휴식하거나 가족 간 정보를 교환하고 자조 모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공립 노인요양시설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치매전담형 장기요양기관 115곳을 신설 중이며 이 가운데 25곳을 완공했다. ‘치매안심병원’은 2019년 9월 첫 번째 치매안심병원(경북도립안동노인전문요양병원)이 출범한 지 3년 만에 수도권 지역에도 생겼다. 이로써 전국의 치매안심병원은 9곳(▲인천광역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 ▲인천제2시립노인치매요양병원 ▲경상북도립안동노인전문요양병원 ▲경상북도립경산노인전문요양병원 ▲경상북도립김천노인전문요양병원 ▲대전광역시립제1노인전문요양병원 ▲광주시립제1요양병원 ▲청풍호노인사랑병원 ▲제주의료원부속요양병원)으로 늘었다.
현재 추진 중인 제4차 치매종합관리계획(2021~2025)은 전국 치매안심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사회 자원을 연계해 환자가 치매 진행 정도에 따라 전문화된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치매환자 가족의 경제적·정서적·육체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돌봄 지원도 늘릴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치매환자와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치매안심센터 운영 활성화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