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거점 국립대병원 의대교수 정원을 2027년까지 현재보다 1000명까지 더 늘리기로 했다.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2월 29일 이상민 제2차장(행정안전부 장관) 주재로 회의를 열어 국립대병원 교수정원 증원방안을 논의하고 이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그래도 교수가 부족할 경우 현장수요를 고려해 추가로 보강하기로 했다. 이는 지역·필수의료의 획기적 강화와 의학교육의 질 제고, 국립대병원의 임상·교육·연구 역량 제고를 위한 조치다.
이에 앞서 정부는 2023년 10월 19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필수의료 혁신전략회의’에서 국립대병원 소관을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필수의료에 대해 충분한 투자가 이뤄지도록 각종 규제혁신과 연구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기로 한 바 있다.
이 같은 의료개혁의 시작은 2023년 1월 발표한 ‘필수의료 지원대책’부터다.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소아 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마련했고 10월 ‘필수의료 혁신전략’, 2024년 2월 ‘필수의료 4대 정책 패키지’를 통해 본격적으로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월 6일 발표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의료개혁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사직서를 내고 의료현장을 떠나버린 전공의들을 비롯한 의사집단의 강한 반발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에 위협을 느끼게 했다. 이에 정부는 2월 23일 보건의료 위기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전환했다.
의료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2월 26일 중대본 브리핑에서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문제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박 차관은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그간 누적된 구조적 모순과 필수의료 분야의 낮은 수가로 필수의료 인력이 여건이 좋은 비급여 개원과 피부미용 등 비필수 분야로 지속적으로 유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으로 의료수요가 줄어든 소아과, 산부인과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흉부외과, 심장내과의 의료진 부족은 심각한 상황이고 마취과, 영상의학과에서는 의료진이 개원하는 경우가 많아 필요할 때 의사가 없는 상황이다.

2035년 1만 명 의사 부족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장시간 격무에 시달린다. 이를 뒷받침해줄 후임 의사는 없고 의료진의 업무는 더욱 과중되고 환자들은 제때 진료받지 못한다. 지역의 상황은 더욱 열악해 진찰해줄 의사가 없어 환자가 장거리 이동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이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고 긴 기다림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가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게다가 의료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증가율은 4.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의 2.6%보다 훨씬 높다. 고령화에 따라 만성질환자는 증가할 것이다. 이에 따라 진료 건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35년에는 전 국민의 입원일수가 지금보다 45.3% 증가해 약 2억 일로 늘어나고 외래는 12.8% 늘어나 약 10.5억 일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단지 진료 건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전달 체계의 변화가 필요한데 특히 예방 중심 체계에 맞는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 의료현장에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2035년에 약 1만 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21년을 기준으로 활동 의사 수는 한의사·치과의사를 제외하고 인구 1000명당 2.1명에 불과하다. OECD 가입국 평균이 3.7명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턱없이 적다. 그래서 우리나라 의사의 업무량은 과중하다. 2021년 기준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건수는 6113건으로 OECD 가입국 평균의 세 배 이상이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앞으로 의사 수는 더욱 부족해진다. 의사집단의 고령화가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주요 필수과목 전문의 수를 보면 30대 이하 의사 수는 24.2% 감소한 반면 70대 이상 의사 수는 136.3% 늘어났다. 그런데 2022년 통계를 보면 70세 이상 고령 의사의 대부분인 78.5%는 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중증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고령 의사는 18.5%에 불과하다. 그만큼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 수는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의사 수는 적을지 몰라도 의료서비스의 질은 우수하기 때문에 의사 수를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현재 의료성과는 세계적으로도 존중받는 수준이지만 균열의 조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의료현장에는 과부하가 걸려 있고 의료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치료가 가능한데 사망한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 ‘회피가능사망률’의 지역 격차는 3.6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9년 전인 2015년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자 수가 서울 강남구의 경우 29.6명이지만 경북 영양군은 107.8명에 달한다.
이런 문제를 우리만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사 수 부족 문제는 우리보다 의사 수가 많은 곳에서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선진국은 의대정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의사 수를 증원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7630명이던 의대정원을 2020년 9330명으로 늘렸고 영국은 2000년 5700명이던 의대정원을 2021년 1만 1000명까지 증원했다. 독일도 의대정원을 1만 5000명으로 늘릴 예정이고 프랑스는 2020년 1만 명으로 확대했다.

28차례 논의와 130차례 의견수렴 절차 거쳐
반면 우리는 19년째 의대정원을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오히려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박 차관은 2월 22일 브리핑에서 2012년, 2020년 두 번에 걸쳐 의대정원 증원 시도가 무산됐던 사실을 상기시키며 “의대 증원은 어느 날 갑자기 논의된 사안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12년 전인 2012년 당시 정부는 의사인력 수급 추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이때 2025년 의사 수가 1만 5432명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시됐다. 자연히 의대정원 증원으로 의견이 좁혀졌지만 의사단체의 반대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2020년에도 한 차례 더 의대정원 증원이 추진됐다. 연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을 증원하겠다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전공의들이 파업하는 등 집단행동이 시작돼 이뤄지지 못했다.
정부는 2023년 연두 업무보고 때부터 의대정원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는 대한의사협회, 전공의 대표 등이 참여하는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총 28차례 이에 대해 논의했다. 박 차관은 2월 22일 브리핑에서 “특히 5차, 8차, 10차, 20차, 21차, 22차, 23차 총 7번의 회의에서는 의사인력 부족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의사단체는 의사는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할 뿐 증원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논의에 진척이 없어 1월 15일에는 공문으로도 의견 제시를 요청했으나 끝까지 답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사단체 외에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다. 병원, 학회 등 의료계와 환자, 소비자 등을 총 130회 이상 만나 논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보건의료산업노조에서는 1000명에서 3000명의 증원 규모를 제안받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등 공동성명에서는 3000~6000명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
2000명이라는 규모가 도출된 데는 전문가들의 의견과 정부의 정책적 결정이 있었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10년 이후 1만 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각계 의견을 종합했을 때 2035년 1만 명의 의사를 추가 확보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의대정원 증원을 비롯한 이번 의료개혁은 갑자기 추진된 것이 아니다. 2000명이라는 숫자는 증원을 미루다가 발생한 수치다. 박 차관은 “급격하고 크게 늘린 것이 아니라 거듭된 반대로 늦어진 것”이라며 “이번에도 증원에 실패하거나 규모를 축소해 늘린다면 의료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장차 더 많은 수로 급격히 늘려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 수 증가로 인한 문제는 없어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각 의대에서 증원된 학생을 교육시킬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고 따라서 국민이 받을 의료의 질도 저하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1980년대 의대 학생 수가 현재보다 많았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기우에 가깝다. 서울대 의대의 경우 1980년대 학생 수가 260명이었지만 현재는 135명이다. 반면 기초과목 교수는 2.5배, 임상 교수는 3배 늘어났다. 교육 여력이 커진 것이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규모가 의학교육의 질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박 차관은 2월 20일 브리핑에서 “정부는 수요조사 결과를 점검해 2000명을 늘리더라도 현재의 의학교육 기준을 준수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정부는 의학교육의 질 개선을 위한 지원 정책도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사단체에서는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비를 결정하는 요인은 의사 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료비는 고령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고령자가 많을수록 1인당 입·내원 일수가 많다. 의사 수의 영향은 미미한 수준이다. 의사가 많은 지역이어도 1인당 의료 이용 건수가 적은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의사 수가 수요를 창출한다는 ‘유인수요론’이 힘을 얻을 때도 있었지만 이는 오래전 이론에 불과하다. 사회보험 체제를 운영하는 우리나라와 독일, 일본 등에서 의사 수와 진료비 간의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난 지 오래다. 박 차관은 2월 15일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내용의 질의를 받고 “경제학계에서는 유인수요론은 근거 없는 이론이라는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해 말했다.
대신 정부는 의사가 늘면 의료비는 물론 사회·경제적 비용이 절감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른바 ‘골든타임’이 중요한 뇌·심혈관 질환의 경우 골든타임을 준수할 경우 연간 7636억 원의 비용이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 반면 의사가 부족하면 의사에 대한 인건비가 상승하고 건강보험 수가 인상 압력이 강해지며 결국 재정부담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의사 수가 늘어나면 비용이 상당히 절감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의사 수 증원이 의료개혁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차례 증원은 의료개혁의 최소한의 필수조건이며 의료개혁 달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왔다. 2월 1일 발표한 ‘필수의료 4대 정책패키지’가 그 일환이다. 정책패키지는 의대정원 증원이 지역·필수의료의 붕괴 현상을 막기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게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의료인력 확충과 더불어 교육·수련 방식을 혁신한다. 전공의의 수련환경을 개선하고 전공의 중심으로만 운영되던 병원을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단계적으로 전환한다. 현재 ‘빅5’ 대형병원의 의사인력 중 전공의 비율은 높게는 40%가 훌쩍 넘는다. 전공의에 의존하는 구조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불러온다. 반면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이 운영되면 분업체계가 확립돼 의료서비스가 나아질 수 있다.
지역·필수의료 붕괴 현상 막아라!
지역의료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지역에서 의료가 완결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지역 거점 대학병원의 중증·응급진료를 강화하고 필수의료에 특화된 2차 민간·공공병원을 집중 육성한다. 권역 책임의료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지역의료 혁신 시범사업’도 도입된다. 무엇보다 지역의 필수의료 분야 의사를 확보할 수 있도록 의대정원 증원분에서 지역인재 전형을 적극 활용하고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 등을 도입한다. 충분한 수입을 보장하고 파격적인 정주지원을 조건으로 지역·필수의료기관과 근속계약을 맺는 제도다. 맞춤형 지역수가도 확대하고 지역의료발전기금도 신설한다.
의료현장에서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도 집중할 전망이다. 정부는 2월 27일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을 공개했다. 2023년 11월부터 의료계, 환자단체,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를 통해 9차례 협의를 거친 결과다.
특례법은 필수의료 인력이 책임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 의료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해도 환자의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한 경우에는 의료과실로 상해가 발생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으며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중상해가 발생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또 필수의료 행위 과정 중에 환자가 사망한 경우 형이 감면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특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조정·중재절차에 참여하는 경우 적용된다. 진료기록이나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위·변조하거나 의료분쟁조정을 거부하는 등의 면책 제외 사유에 해당할 경우 특례 적용이 배제된다. 이를 통해 환자 입장에서도 특례법 제정을 통해 지금까지는 유명무실했던 의료분쟁 조정·중재절차에 의료진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모든 의료기관의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되기 때문에 의료사고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 걱정 없이 배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정책패키지는 공정한 보상체계를 제고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필수의료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위해 2028년까지 10조 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할 전망이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혀온 과잉 비급여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실손보험을 개선한다. 저평가된 중증응급, 소아 등 항목의 상대가치점수를 인상하고 공공정책수가를 도입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가 곱해지는 수가 정책에서 공공정책수가가 더해지는 방식으로 개선된다. 장기적으로 지불제도의 다변화를 통해 대안적 지불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의료개혁이 필요한 5가지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