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중독재활센터장
“저희 아이는 마약이 담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겁도 없이 약물 사용 경험을 말하며 ‘엄마도 이 기분을 알면 좋을 텐데’라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리석게도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 아이도 저도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의 자조모임에 참여한 중독자 가족 A씨의 고백이다. 중독재활센터는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지만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들이 이곳의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먼 길을 돌아온다. A씨 또한 “이곳에 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중독재활센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마약류 중독자나 그 가족을 대상으로 상담과 재활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마약은 이제 소수의 일탈행위가 아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요즘 ‘합성대마’가 유행하고 있다. 합성대마는 전자담배와 비슷해 겉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대마의 경우 그 자체의 중독성뿐 아니라 다른 마약으로 넘어갈 ‘디딤돌’ 역할을 하기에 더 위험하다. 2023년 발간된 ‘국과수 마약류 감정백서’에 따르면 2017년 단 4건에 불과했던 합성대마 적발은 2021년 484건으로 증가했다.
마약은 넓고 깊게 일상에 침투했다. 2023년 4월에는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서 우유에 필로폰을 섞은 뒤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음료”라고 청소년을 속여 마시게 한 일당이 적발됐다. 2023년 8월 2일 강남구 압구정역 근처에선 향정신성의약품을 투약한 채 롤스로이스를 몰던 20대 남성이 인도로 돌진했고 차에 치인 여성은 3개월여 만에 숨졌다.
마약으로 인해 일상이 위협받자 정부는 2023년 4월 18일 국무회의를 열고 대검찰청을 중심으로 경찰·관세청·국가정보원 등 840명의 인력이 투입된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약중독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질병이자 범죄이므로 마약범죄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각오로 강력하게 수사·단속하고 마약류 중독자는 하루빨리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치료·재활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범정부 역량을 총결집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지 1년이 지난 4월 18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중독재활센터장을 만났다. 박 센터장은 “마약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면서 정부가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데 꼭 필요한 일이다. 마약 공급책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고 중독자에 대해서는 치료와 재활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10대를 위한 예방교육”이라고 강조했다. 마약에 대한 수요를 차단해야 마약으로 인한 다른 사고도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3년 단속된 마약사범은 2만 7611명이다. 2018년 1만 2613명에 비해 두 배 넘게 늘었다. 같은 기간 연간 마약 압수량은 414.6㎏에서 998㎏으로 약 2.4배 증가했다. 특히 10~20대의 마약사범 증가폭이 가파르다. 2018년 143명이었던 10대 마약사범은 2022년 481명으로 약 3.4배 증가했다. 20대 마약사범도 같은 기간 2118명에서 5804명으로 늘었다. 문제는 중독이다. 마약범죄는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률이 높다. 2021년 기준 마약 범죄 재범률은 36%에 달한다.
60대인 박 센터장은 10대에 마약을 시작해 25년간 중독자로 살았다. 정신병원에 감금된 것만 11차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송천쉼터였다. 이곳에서 7년을 생활하며 마약을 끊었고 이후 회복상담사가 돼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마약 경험자가 마약중독자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은 20년째 마약중독자 재활지도를 하고 있다.

중독재활센터에 찾아오는 이들은 얼마나 되나?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1년에 500~600명가량이다. 법적으로 마약 투약이 적발돼 오는 사람들을 더하면 1년에 1500명 정도가 중독재활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마약류 중독재활센터는 서울, 부산, 대전에 있고 올해 14개 지역 센터가 문을 연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1992년 설립 이후 마약 예방과 중독 치료, 상담, 재활 사업 등을 해왔다. 특히 중독자의 재활을 위해 심리·회복 상담과 12단계의 치유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고 있다. 검찰이 마약 초범 등을 대상으로 하는 기소유예 교육도 담당한다. 중독됐다가 재활에 성공한 이들이 회복상담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동안은 전국에 재활센터가 세 군데밖에 없었다. 전국에 널리 퍼져 있는 중독자들이 재활을 위해 갈 곳이 없었는데 이제 갈 곳이 많이 생겼다.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마약중독 후 재활에는 규칙적인 생활이 필수다. 약에 취해 있는 동안에는 자는 것도, 먹는 것도 잊는다. 약과 접촉할 수 없는 안전한 곳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3월 26일 ‘24시 마약류 전화상담센터 1342’가 문을 열었다. 마약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약에 대한 갈망이 시작되면 24시간이 괴롭다. 이들이 언제 어디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안 그러면 다시 약에 손을 뻗게 된다.
마약중독자에 대한 시선은 둘로 나뉜다. 범죄자로 보거나 환자로 보거나.
마약에 손을 댔다면 법이 정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중독재활센터에서는 그 이후를 본다. 중독은 뇌의 문제다. 이들은 질환을 앓고 있는 일종의 환자다. 환자가 마약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 한번 마약중독자로 낙인찍히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문제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도 힘든데 사회적·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으니 또 다시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마약이 아닌 다른 삶의 기쁨과 보람을 찾아야 재범률이 낮아진다.
마약사범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의 연령이 어려지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다.
2019년 말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누리소통망(SNS) 등을 통해 10대들이 마약을 접하는 기회가 늘었다. 유튜브에서는 마약을 어떻게 구해서 투약하는지를 설명하는 영상도 올라온다. 과거에는 직접 만나서 마약을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비단 일탈 청소년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적을 높이거나 집중력을 키운다면서 병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받는 일도 늘었다.
현행법은 미성년자에게 마약을 판매할 경우 성인 대상보다 더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오는 7월부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마약 범죄를 저지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이 상향 조정됐다. 10대 사이에서 마약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서다. 2024년 1~2월 19세 이하 마약류 사범은 125명이다. 2023년 1~2월 누적 30명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어린 나이에 마약에 노출되면 뇌 손상도 크게 일어나고 그만큼 약에 중독될 위험이 높다. 나 역시 사춘기에 마약을 접했는데 이후 25년간 중독자로 살았다.
마약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기대가 컸는데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였고 탈선으로 이어졌다. 정신병원에만 열한 번을 갇혔다. 그러다 교도소에 가게 됐고 출소 후에도 약을 찾아다니다 보니 신용불량자가 됐다.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대출을 받아 약을 구할 정도로 밑바닥까지 갔다. 이 고통이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약을 한 통 다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의사가 살려냈다. 그때 한 말이 “왜 나를 살렸냐”는 절규였다.
어떻게 벗어나게 됐나?
노숙자가 돼 차가운 길바닥에 누워 있을 때 다른 노숙자가 음식을 챙겨줬다. 따뜻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고 나니 눈물이 터졌다. 당시 약 부작용으로 인한 합병증도 앓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상태였는데 노숙인을 돌봐주던 의사를 만나 당뇨약을 처방받아 몸을 추슬렀고 당시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운영하던 생활시설 ‘송천쉼터’를 찾아갔다. 그 때가 2002년이었다.
송천쉼터에서 얼마나 있었나?
2009년까지 7년 동안 24시간 숙식하며 규칙적으로 살았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해졌다. 나와 비슷한 상태였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중독자로 살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마약을 이미 접한 뒤에는 그 이전으로 되돌리는 데 10배, 20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번의 호기심도 가져서는 안된다. 호기심의 대가는 너무 크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도 파괴된다. 그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중독재활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4년부터 마약중독자 자조모임을 만들어 개별 상담을 했다. 마약중독자들이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중독자’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스스로 약물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투약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곧 약을 하지 않으면 일상이 불가능한 지경이 온다. ‘절대 스스로 끊을 수 없구나. 이게 중독이구나’라는 걸 깨달아야 역설적으로 회복이 시작된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뭔가?
“저도 끊을 수 있을까요?”라는 이야기다. 그럴 때는 마약에 중독됐다가 재활에 성공한 이들의 사례가 힘이 된다. 마약은 당장 끊겠다고 진심으로 다짐해도 다시 갈망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상담을 하면서 이들에게 당장 단약하겠다는 목표 말고 하루하루씩 목표를 세우라고 한다. 하루 성공하면 다음날은 좀 더 쉽다. 한 걸음씩 가야 한다.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예전엔 일탈 청소년이나 재벌가 자제, 연예인 등 일부의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해외 유학을 갔다가 마약을 접한 경우도 많다. “스트레스 풀자”, “기분이 좋아진다”며 지인의 권유로 시작하기도 한다. 센터에 오는 이들도 평범한 학생, 직장인이 늘고 있다. 마약을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여기고 다 같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또 일상에서 마약을 긍정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말들을 쓰지 말아야 한다. ‘마약김밥’, ‘마약베개’ 등이 그렇다. 학교와 조직에서 마약예방교육을 필수로 실시해야 한다.
앞으로 마약치료와 재활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일까?
마약중독자는 약을 끊으면 우울증을 겪는 등 정신적·심리적으로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다. 그만큼 단번에 마약을 끊기란 쉽지 않다. 단약에 성공한 이들도 몇 번의 실패를 거친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약에 중독되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삶까지 무너진다. 중독자 한 명을 치유하는 것은 온 가족의 삶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회복가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도 많겠다.
여러 번 재활에 실패한 친구가 있었다. 나쁜 중독은 좋은 중독으로 풀어야 한다. 그 친구가 요리에 관심이 있길래 조리사 자격증을 따보라고 권했다. 재활센터에 있는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자격증을 땄다. 몇 년 후에 연락이 왔다. 동네에서 작은 음식점을 열었다고 하더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데 내가 더 고마웠다.
마약은 한자로 ‘痲藥’이라고 쓴다. ‘마’ 자가 흔히 ‘마귀 마(魔)’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마비되다에 쓰는 ‘저릴 마(痲)’ 자다. 마약은 ‘악마의 약’이기 전에 ‘마비시키는 약’인 것이다. 정상적인 생각과 삶을 마비시킨다. 처음부터 손을 대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이미 마비가 시작됐다면 이들을 범법자로 낙인찍기보다 마비된 감각이 돌아오도록 도와야 한다. 황폐해진 감각과 일상은 개인의 의지가 아닌 치료와 재활로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박 센터장은 마약중독에서 벗어난 뒤 회복상담사라는 직업을 찾았고 가정을 꾸렸으며 아이도 낳았다. “중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라는 박 센터장의 말을 우리 모두가 되새겨 봐야 한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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