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전국의 빈집은 13만 4009호로 파악됐다. 이 중 절반이 넘는 빈집(7만 8095호)이 농어촌에 있다. 빈집은 ‘시장·군수·구청장이 거주 또는 사용 여부를 확인한 날부터 1년 이상 아무도 거주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는 주택’이다. 방치된 빈집은 지방소멸 가속화 요인으로 꼽힌다. 지역의 위생·안전 등 주거환경을 악화시키고 주변 지역 가치를 하락시키는 등 사회·경제적 문제를 유발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깨진 유리창 효과(하나의 사소한 무질서가 추후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처럼 빈집 한 곳이 추가적인 빈집을 발생시키고 주민의 지역 이탈을 촉진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정부는 빈집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범정부 빈집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시·군·구가 빈집 실태조사, 정비계획 수립 등을 맡고 있으나 빈집이 계속 늘고 있어 시·군·구 차원의 관리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빈집을 정비하고! 채우고! 되살리고! 살기 좋은 생활 여건 조성 및 지역 활력 제고’라는 비전 아래 ▲국가 관리체계 구축 ▲지방자치단체 정비 지원 확대 ▲민간 정비·활용 유도 등 큰 틀을 세웠다. 국가의 빈집 관리책무를 강화하고 지역 특성을 고려한 정비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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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어촌 빈집 관리 기준 일원화
먼저 정부는 전국 단위의 통합적인 빈집 관리체계를 구축한다. 국가, 시·도의 빈집 관리 책무를 신설하고 실태조사, 정비계획 수립, 정비사업 추진 등 시·군·구에 대한 지원 근거를 하반기 내에 마련한다. 빈집 정의, 계획수립·실태조사, 정보시스템 운영 주체 등 도시와 농어촌별로 다른 ‘빈집 관리 기준’을 통일한다.
또 정부는 전국 빈집 정보를 통합관리하고 상시 활용할 수 있는 ‘빈집애(愛)’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전국 빈집 지도, 지원사업 소개 등 관련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소유자가 동의한 빈집 매물과 해당 지역 협업공인중개사 정보를 제공해 빈집 거래를 지원한다. 시·군·구별 협업공인중개사는 빈집 수요자의 요청에 따라 매물상세정보를 안내하고 ‘공인중개사법’에 따라 거래를 중개한다. 정부는 거래 활성화를 위해 협업공인중개사 활동비 지원 등 맞춤형 인센티브 체계를 적용할 예정이다. 빈집 발생·확산 위험을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맞춤형 활용 방안을 제시하는 인공지능(AI) 분석 플랫폼도 개발한다.
전국 빈집 모니터링 및 현황 관리체계도 갖춘다. 정부는 에너지·수도 사용량이 없는 주택 등을 토대로 빈집을 파악해 빈집애 플랫폼 업무시스템에 등록하고 실태조사를 하는 등 빈집 발생 현황을 상시 모니터링한다. 나아가 체계적인 현황 관리를 위해 빈집 현황을 국가 통계로 관리하고 통계 관리 및 조사 비용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빈집 플랫폼 구축… 민간 협업 빈집 프로젝트 추진
빈집 정비·활용 및 안전 확보 지원책도 나왔다. 인구감소지역에는 지역맞춤형 정비·활용을 지원한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활용해 지역 특성에 맞는 빈집 사업을 기획·운영할 수 있도록 사업 설계를 지원하고 우수사례를 발굴한다. 예를 들면 충남 청양군이 운영 중인 ‘1만 원 주택’ 사업을 들 수 있다. 청양군은 방치된 빈집을 무상 임차하고 리모델링해 청년·신혼부부·귀농인 등에게 5년간 임대료 월 1만 원에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의 빈집을 철거한 후 도시숲·주거취약계층 주거시설 조성 등 민간 협업 빈집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행정안전부는 협업 희망 지자체·사업을 발굴하고 지자체는 적합한 빈집과 토지를 매입하며 민간기업은 인력·자금·물품 등 시설 조성을 지원하는 식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한 빈집 정비 활성화 및 기부자 답례품 제공 방안도 추진한다. 예를 들어 민간이 고향 내 빈집 정비를 위해 지자체에 기부하고 지자체는 기부금을 활용했다면 기부자에게 빈집 철거 후 생긴 나대지에 조성된 텃밭의 주말농장 1년 이용권을 제공하는 것이다.
농어촌의 빈집을 개조해 귀농어·귀촌 유입시설을 조성하는 방안도 있다. 농촌 빈집밀집구역 내 빈집을 매입·리모델링해 생활인구, 귀농어·귀촌 예정자, 청년 등을 위한 주거 및 업무 공간 등으로 활용한다. 어촌지역 빈집 또한 예비 귀어인, 청년어업인을 위한 주거공간, 노인돌봄주택, 마을공동시설 등으로 탈바꿈한다.
도시 내 빈집의 경우 공공이 출자한 법인이 매입·철거·활용하는 개념의 ‘빈집 허브’를 도입할 계획이다. 주택정비 및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뉴:빌리지 사업’에 빈집 특화 유형을 신설하는 등 빈집 정비사업에 힘을 싣는다. 또 각종 정비사업과 연계한 빈집 정비 시에는 도시·건축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유형별 인센티브(용적률·건폐율 완화, 사업 절차 간소화 등)를 적용한다.
주요 밀집 구역 내 빈집에는 인근 치안을 강화한다. 시·도자치경찰위원회와 협업해 범죄예방 폐쇄회로(CC)TV, 야간조도 개선 등 범죄예방 기반시설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빈집 안전관리 홍보물을 제작하고 소유자·지자체의 안전관리 및 점검을 독려하는 등 빈집 안전조치를 이어간다.
더욱 튼튼해진 지자체 빈집 정비 역량도 기대할 수 있다. 정부는 시·도 및 시·군·구 내 도시·농어촌 간 통합 업무 추진을 위한 참고 조례안을 마련한다. 이를 토대로 미제정 33개 시·군·구의 조례 제정 및 기존 조례를 보유한 193개 시·군·구의 조례 개정을 지원한다. 이와 더불어 시·도, 시·군·구 내 ‘빈집전담팀’을 운영해 빈집 정보 통합체계를 꾸린다. 이 팀은 빈집 현황을 관리하고 정비·이행 계획을 수립하며 빈집 안전조치 등을 맡게 된다.
정부는 빈집 실태조사 미수행 농어촌을 대상으로 실태조사 비용을 지원하고 도시 내 빈집 밀집 지역 등의 정비방안 마련을 돕는다. ‘연 단위 실태조사 현행화’, ‘3등급 빈집 중 철거 우선순위 판단 항목’ 등 실태조사 통합 가이드라인을 보완한다. 빈집 유형·면적·인근 입지 등을 기반으로 활용 유형을 제시하고 정비 절차를 지원하는 빈집맞춤형 정비·활용 매뉴얼을 수립한다.
빈집 정비 지원 예산 두 배로… 철거 후 세 부담 완화
정부는 소유자가 부재·불명하거나 다수인 빈집은 지자체가 제3자에게 빈집 정비·관리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검토한다. 비공식 거래 등으로 소유자 확인이 어려운 경우 지방세 납세 정보로 실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는 주소 기반의 정보 연계도 추진한다. 또한 국민비서를 활용해 빈집 실태조사 시 소유자에 출입 통지, 철거 등 통지서를 발송하는 전자고시 서비스를 활성화한다.
빈집 소유자의 관리책임 강화 및 철거 비용 부담 완화, 빈집 거래 지원체계 구축 등 민간이 자발적으로 빈집을 정비하고 활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내 빈집을 중심으로 정비사업 국비를 2024년 50억 원에서 2025년 100억 원 규모로 늘리는 등 철거 지원을 확대한다. 또 소규모 건축물 해체계획서의 전문가 검토를 생략해 철거 관련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정부는 법인·단체가 빈집을 활용한 농어촌 민박 사업을 경영할 수 있도록 ‘빈집재생민박사업’ 신설을 추진한다. 빈집 소유자 대신 빈집의 시설물 유지·관리, 단기임대사업관리 등을 운영하는 ‘빈집관리업’도 도입한다. 빈집 정비사업에 대한 조세·부담금 감면, 각종 사용료·점용료 부담 완화 등 특혜 확대도 추진한다.
빈집 정비 지원을 위한 지방세 부담 완화 조치도 이어질 예정이다. 정부는 철거 후 토지 공공활용 시 재산세 부담 완화 적용 기간을 현행 5년에서 ‘공공활용 기간 전체’로 늘린다. 빈집 철거 후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기간은 2년에서 5년으로 확대한다. 철거 시 중과세율(10%포인트)이 적용돼 빈집으로 방치하는 경우를 막기 위함이다.
이 밖에도 정부는 지자체별 빈집 정비 지원사업 및 정비 우수사례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OTT, 유튜버 등과 협업해 만드는 빈집 재생·소통 프로그램)를 제작하고 범정부 매체를 활용해 홍보한다. 소유주의 빈집 방문 및 정비를 유도하는 고향빈집방문 캠페인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근하 기자
국내 빈집 관리 사례

강원 춘천시
빈집 철거 사업
방치된 빈집을 매입해 철거·정비한 뒤 주차장, 공원 등 주민이 원하는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했다. 도시미관 저해 및 안전사고 발생을 차단하고 원도심 골목 주차난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전남 곡성군
‘워크빌리지 IN 곡성’
한옥마을 유휴시설을 워케이션(휴가지 원격근무) 오피스 공간으로 탈바꿈한 사례다. 이곳에서 공유차량·관광·공유주방 서비스도 제공된다. 2025년 3월까지 약 93개 기업과 457명 임직원, 개인 82명이 참여했으며 재방문 희망률이 96%에 달한다.

전북 ‘희망하우스
빈집 재생사업’
오래된 빈집을 리모델링해 무주택가구를 위한 단기 임대주택(최대 5년)으로 활용 중이다. 주거취약계층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제공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지역민들의 주거안정을 도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주 ㈜다자요
빈집 숙박시설 운영
㈜다자요는 농어촌 빈집을 10년간 장기임대해 리모델링한 뒤 중개 플랫폼을 활용해 숙박시설로 제공하고 있다. 기업 워케이션 장소 등으로 인기가 많아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