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북구 국립재활원에 가면 일반 병원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장실에 문이 없다. 대신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그리고 복도 폭이 널찍하다. 휠체어 환자가 불편함 없이 이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배려다.
국립재활원은 국내 유일 재활전문 국립중앙기관이다. 보건복지부 소속으로 1986년 첫걸음을 뗐다. 국립재활원의 역할은 크게 ▲재활진료 ▲재활연구 ▲건강보건관리로 나눌 수 있다. 장애인이 진료를 받고 성공적인 사회복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이곳에서 2024년 한 해에만 입원 환자 2만 4521명, 외래 환자 2만 254명이 전문재활 및 집중치료를 지원받았다.
국립재활원의 재활은 신체 기능 개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장애인성재활, 장애인운전능력평가처럼 환자 맞춤형 사회복귀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퇴원 후 일상생활에 적응하고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국립재활원을 찾았다. 1층 강당에서는 휠체어를 탄 척수손상장애인들이 체육 활동에 한창이었다. 이곳에서는 치료와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 병원과 생활체육센터의 역할을 함께하는 셈이다. 운동도 종목별 구성이 아니라 신체 능력에 따른 기능별로 그룹을 구성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다. 헬스장에서는 전문 지도자가 1~2개월 동안 기계 이용법 및 운동법을 가르친 다음 환자 스스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운동재활과 신준필 주무관은 “기초체력이 있어야 재활 치료가 더욱 효과적이다. 치료 이후에도 사회에 복귀해 꾸준히 운동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재활과는 해마다 재활체육 체험행사를 연다. 장애인 생활체육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 계절에 따라 레포츠(수상스키, 동계스키), 래프팅, 요가, 필라테스 등을 다양하게 운영한다. ‘장애가 있는데 스키를?’ 이런 편견을 부수는 과정이기도 하다. 중증장애 환자도 탈 수 있는 좌식형 스키, 입식형 스키가 있어 누구든지 도전할 수 있다. 매년 4월에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한 ‘거북이 걷기’ 행사가 열린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앞을 향해 나아가며 꿈꾸는 목표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입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보조기기 개발 ‘열린플랫폼’
국립재활원에만 있는 시설이 또 하나 있다. 옥상에 있는 장애인운전연습장이다. 국립재활원은 물리적 장벽이 높은 장애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독립적인 이동성이라는 점에 주목해 1994년 국내 최초로 ‘장애인 운전지원 사업’을 도입했다. 이곳에서 최근 5년간 총 2143명이 장애인 운전교육을 수강했으며 수료자 절반 이상(51.2%)이 자가운전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운전교육도 장애 특성을 반영했다. 장애인 특수개조 차량(전동휠체어를 탄 상태로 운전석까지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 운전보조기기가 장착된 운전교육 차량, 수어가 가능한 전문 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신체 여건에 따라 핸들선회장치, 확장페달 등 보조기기에 대한 적응 훈련도 받을 수 있다.
이런 보조기기는 운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립재활원에는 보조기기 연구개발에 필요한 기술·지식·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는 생태계 ‘열린플랫폼(열린사람들·열린페이지·열린제작실)’이 만들어져 있다. 상시 공모를 통해 선정된 보조기기는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은 ‘오픈소스’로 공유한다.
자립생활지원기술연구팀 오윤성 연구원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세상에 없던 보조기기를 만들거나 고가 보조기기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을 쓰기 어려운 장애인들이 호흡과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술 마우스’를 3D 프린터로 제작하면 20만 원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목욕의자 등받이와 안전벨트, 전동휠체어 후방카메라 모듈, 이지 플러그(소근육 동작인 어려운 사람이 콘센트 전기 코드를 쉽게 뽑을 수 있도록 제작된 확장 손잡이) 등도 열린플랫폼을 통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현재 열린제작실은 전국 4개 지역(경기, 충청, 경상, 전라)으로 확산돼 지역사회 장애인과 노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배리어 프리’ 건강검진센터
장애인 건강보건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은 비장애인과 비교해 12% 낮다. 건강검진에 대한 인식이 낮은 데다 전문장비 부족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국립재활원은 이를 반영해 ‘배리어 프리’ 장애인건강검진센터를 만들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사, 저시력 장애인을 위한 영상 확대기 등 물리·심리적 장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통로는 휠체어 이동이 쉽도록 최소 너비가 160㎝ 이상이다. 선 채로 신장과 체중을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를 위해 누워서 검진받을 수도 있다. “덕분에 키와 몸무게를 처음 재본다는 사람도 있다”는 게 건강검진센터 직원의 얘기다. 휠체어 높이에 맞춘 탈의장과 채혈대, 높이 조절이 가능한 유방촬영 전용의자와 등받이 보조쿠션까지 일반 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밖에도 첨단기술이 집약된 곳이 있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시범 거주공간인 ‘스마트홈·스마트돌봄스페이스’다. 이 공간에서는 목욕, 배설, 식사 등 돌봄 관련 문제를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돌봄로봇’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버튼만 누르면 음식을 입까지 넣어주는 로봇 팔,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 간격으로 자세를 바꿔주는 침대, 몸 전체를 띄워 침대에서 욕실까지 이동시켜주는 기기 등을 시범 거주공간에 설치해 현장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올해로 취임 3년 차를 맞은 강윤규 국립재활원장은 “사회 전체가 재활서비스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최상의 재활서비스에 필요한 모델을 개발해 혁신을 이끌겠다”고 말했다.
이근하 기자
*국립재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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