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어쩌다 보니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샀다. 그런데 그 차를 움직일 실력이 내게 없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차를 인수해둘 테니 주말마다 내려와 연수를 받고 실력이 좋아지면 차를 가져가라고 했다. 집 떠난 지 약 20년, 매주 부모님도 만나고 운전도 마스터하는 일석이조의 계획! 하지만 이것이 커다란 착각이라는 점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수 첫날, 전날 밤에 내려와 오전 9시에 일어나니 부모님은 이미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도로가 막히면 연수고 뭐고 어려우니 빨리 준비하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눈을 뜬 지 30분 만에 부모님을 태우고 집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에서 살짝 액셀을 밟자 아버지는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으며 소리쳤다.
“너 지금 시속 몇 킬로얏!”
나는 화들짝 놀라 계기판을 확인했다.
“…26킬로미터요.”
아버지는 머쓱해하며 손잡이를 놨다.
코너를 몇 번 돌고 카메라 보는 법도 마스터하니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제 장이나 보고 오면 완벽한 하루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내비게이션은 그곳까지 40분이 걸린다고 진단했다. 내가 40분을 운전한다고? 아버지는 왜 안 되냐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리고 약 10분 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비 때문에 차선이 보이지 않는데 아버지는 오른쪽 차선이 가깝다고 말하고, 오른쪽 차선을 보려 하면 뒤차가 빨리 가라며 경적을 울리고, 빨리 가려고 앞을 보면 와이퍼가 촐싹거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점점 소리를 높였다. 차선을 바꿀 때는 속도를 내라, 핸들 험하게 꺾지 마라, 네가 늦게 가니 뒤차가 답답해하지 않느냐 등 지금 생각하면 다 맞는 말이지만 큰 소리로 연신 타박을 받으니 나도 기분이 상했다. 결국 비가 이렇게 오는데 속도를 어떻게 내냐, 옆 트럭이 붙으니 핸들을 더 꺾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며 바락바락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건만 꽃나무는 아직 잎도 틔우지 않은 상태였다. 어색하게 흙밭을 바라보다가 그만 돌아가자고 하니 아버지는 마트에 들르자고 했다. 나는 또 촐싹대는 와이퍼 사이로 앞을 보며 지질지질 마트까지 달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오른쪽, 오른쪽!” 하며 손가락으로 창문을 쳤다. 나는 오른쪽 깜빡이를 넣고 핸들을 돌렸다. 순간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아냐 아냐! 내 말을 듣지 맛!”
아버지는 오른쪽 바퀴가 차선과 가깝다는 뜻이었는데 나는 오른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려 한 것이다. 우리는 다시 창과 방패의 싸움을 시작했고 세 식구는 다리가 풀린 나머지 절뚝거리며 장을 봤다. 그날의 전쟁은 셀프 주유소를 지나 아파트 주차장에서야 마무리됐다.
그렇게 거의 매주 나는 부모님과 집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절, 산, 항구 등을 돌았다. 지명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목적지를 아버지가 골랐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는 늘 생존을 위한 고성이 오갔지만 이제 생각하면 그때만큼 부모님과 많은 곳을 돌아다닌 적이 없다. 우리가 무슨 섬에 간 날을 기억한다. 그날도 나는 아버지와 화를 주고받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직선 도로를 달리는데 내 오른쪽 귀에 익숙하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양손을 무릎에 올려두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버지의 계획은 틀리지 않았다.
김은경 출판 기획 에디터 겸 작가_ 12년 차 에디터.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썼다. 2022년에는 ‘성장’과 ‘실행’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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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