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갑, ‘생명의 숲–경계에 서다’, 한지에 수묵, 227×976cm, 2021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완판!”, “매진”, “싹쓸이”, “ㅇㅇ이 ‘찜’했다”, “호황”, “돈이 몰린다”…. 얼마 전 부산에서 열린 아트페어를 두고 언론, 특히 경제 일간지에서 쏟아낸 말들이다. 하나 같이 자극적이다. 투기를 부추기는 표현이다.
요즘 미술시장 열기는 그야말로 과열.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도 막히고 마땅히 돈 쓸 곳을 찾지 못해 억눌렸던 소비심리가 한순간 폭발한 양상이다. 일부 부유층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다.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층도 이 용광로에 뛰어들었다. NFT(대체 불가 토큰)에 대한 열기는 논외로 치더라도 마치 연예인에 열광하는 팬덤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가는 엇갈린다. 누군가는 기회라 하고 누군가는 거품이라 진단한다. 나는 후자 쪽이다. 미술에 관심이 높아지고 그것을 향유하는 계층이 다양해지는 경향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문제는 속도와 방향. 내가 보기엔 너무 빠르다.
▶박종갑, ‘장막–인류의 길’, 선지에 수묵, 138×60cm, 2021
먹과 몸으로 그린 그림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 좋아하는 음식이나 그림에 대한 ‘호불호’는 지극히 주관적. 양은 냄비에 끓인 즉석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가마솥에서 오랜 시간 고아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설렁탕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앞서 거론한 아트페어에서 팔리는 그림이 양은 냄비 같다면 동양화가 박종갑의 그림은 뚝배기 같다.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인 박종갑은 ‘은근(慇懃)’한 사람이다. 국어사전에 나온 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꾸준하며 정취가 깊고 그윽하며 함부로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작가는 몇 년 전 완주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고즈넉한 시골 마을 제일 안쪽 야트막한 산자락에 있는 작업실은 한때 절집이었다. 불상을 모시던 목조건물과 마당이 딸려 있다. 개, 염소, 고양이, 닭이 함께 산다. 학교에 출근하는 날을 제외하곤 줄곧 이곳에서 지낸다. 올해 초 겸재정선미술관 개인전 출품작이 이 작업실에서 나왔다.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 서울 삼청동 한벽원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이때 작품은 전남 해남에 있는 작은 섬 임하도에서 그린 것들이었다. 전시 제목은 ‘남도·바람·돌’. 제목처럼 섬에서 상주하며 느꼈던 바다, 바람, 돌, 파도 등에서 받은 감흥을 필획의 흔적으로 보여주는 모양새였다. 한벽원미술관 전시장 전체를 에둘러 전시했다.
작품 제작 과정이 담긴 동영상도 상영했다. 자연과 교감하면서 그 기운에 도취된 울림을 온몸으로 표현한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눈발 날리는 야외에서 커다란 붓으로 춤추듯 그리는 작가의 몸짓은 보는 사람마저 흥분하게 했다.
이후 5년 만에 열린 전시가 겸재정선미술관 개인전이었다. 출품작은 한층 안정되고 차분해진 느낌이다. 전시 제목을 ‘회류(回流)’라 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 갇힌 인간이 처한 환경에 대해 돌아보자는 의미다. 인류의 나아갈 미래를 성찰하자는 제안이다.
존재의 본질과 자연에 대한 탐구
박종갑은 인간 존재의 본질 그리고 자연에 대한 내밀한 탐구와 사유를 놓지 않고 있다. 그는 말한다.
“정신보다 물질을 중시하는 오늘날이다. 과시적 소비문화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정신적 근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보이지 않음을 보고 들리지 않음을 듣고자 한다. 정중동(靜中動), 무위행(無爲行)의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사유의 장을 열어보려 한다.”
이 말은 곧 ‘평온한 가운데 기이함을 추구하고 정적인 가운데 동적인 것을 추구한다(平中見奇 靜中見動)’는 작업 방식으로 구체화된다. 작품 ‘생명의 숲-경계에 서다’ 연작이 좋은 예다. 옆으로 길게 펼쳐진 화면은 대자연의 축소판이다. 비록 사람 형상은 보이지 않지만 붓질 하나하나가 바로 인간-몸짓의 존재이며 호흡의 흔적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고자 함의 증거인 셈이다.
박종갑은 오직 검은색 먹만 사용한다. 먹의 농담(濃淡)으로 밝음과 어둠의 색채를 구현한 솜씨가 놀랍다. 그는 지필묵에 대한 관심과 애정, 이해가 누구보다 깊다. 직접 만든 다양한 모필(毛筆)을 사용한다. 심지어 먹도 직접 만든다. 동양화에선 특히 먹이 중요한데 요즘은 질 좋은 먹을 구하기 쉽지 않아서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먹의 맥이 끊기는 실정이다. 이처럼 전통에서 미래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박종갑의 그림이 더욱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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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