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이 동요는 일본 노래밖에 없던 1924년 일제강점기 시절 작곡가 윤극영이 아이들을 보며 지은 노래다. 동요 속의 까치는 일제 암흑 속에서 대한민국을 해방시키는 희망으로 해석돼 의미 있는 동물로 자리 잡았다.
까치는 우리나라의 대표 길조로 소개된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거나 헌 이를 주면 새 이를 가져다주는 이빨 요정의 역할도 하는 희소식과 행운의 전령사다. 이런 까치가 요즘 흉조 취급을 받고 있다. 환경부 지정 유해 야생동물이자 생태계를 교란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이다. 또 까치는 외래종인 동시에 침입종이라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맹금류 공격하고 다른 새 알 약탈하는 유해 조류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설인 양력 1월 1일이 설날이었다. 해방 후 양력설은 ‘신정’, 음력설을 ‘구정’으로 불렀고 구정은 1985년 ‘민속의 날’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1989년 음력으로 새해 첫날인 ‘설날’ 이름을 다시 찾았다. 설날을 되찾은 1989년은 때마침 ‘일간스포츠’ 창간 20주년이 되는 해였고 아시아나항공 취항 1주년의 해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해 두 회사는 전국 각지에서 포획한 까치 46마리를 비행기에 싣고 와 제주에 방사했다.
당시 제주에는 까치가 없었다. 철새가 아닌 까치는 다른 새들보다 오래 날지 못해 바다를 건너는 게 쉽지 않다. 도민들은 제주에서도 까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번식력이 빠른 까치는 불과 10년 만에 수만 마리로 번식해 애물단지로 변했다. 까치가 급증하면서 농작물 피해는 물론 정전까지 일으키는 주범이 된 탓이다.
까치는 잡식성이라서 쥐와 같은 작은 동물뿐 아니라 곤충이나 나무 열매, 감자 등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따라서 봄·여름에는 나무에 사는 해로운 곤충을 잡아먹어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반면 과수 농가 입장에서 까치는 주적이다. 감귤, 감, 딸기 등의 과실을 쪼아 먹고 비닐하우스에 구멍을 뚫는 등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피해를 입힌다.
또 전봇대 배전반 등에 나뭇가지로 둥지를 짓는 과정에서 가끔 철사와 같은 금속성 물질을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때 합선에 의한 정전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제주의 까치 관련 정전 피해액은 연간 10억 원이 넘는다.
제주에는 까치의 천적이 거의 없다. 까치는 여름철에는 단독 생활을 하지만 겨울이 되면 떼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자기보다 몸집이 큰 맹금류를 공격해 쫓아낸다. 다른 새의 알을 훔쳐 먹거나 파충류를 포식하고 작은 새들도 공격한다. 명실상부한 하늘의 조폭이다.
실제로 제주에 많았던 까마귀들이 까치의 유입 이후 경쟁에서 패배해 밀려났다. 더구나 제주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의 희귀 조류까지 공격하는 바람에 제주 고유 생태계의 위협이 심각하다. 물론 까치에 의한 이런 피해는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있는 일이다.
현재 제주에 서식하는 까치 수는 10만~15만 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제주는 2000년 까치를 ‘유해 야생조류’로 지정한 데 이어 2005년에는 ‘수렵 동물’로 고시했다. 이에 따라 제주에서만 매년 2만 마리 이상을 포획하고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까치를 잡는 데 매년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 포획한 까치 1마리당 5000원을 지급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까치가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까치는 다른 새들보다 훨씬 영리하고 똑똑해 농부들이 쓰는 조류 퇴치법이 잘 먹히지 않는다. 피해가 뚜렷하지 않고 현지 생태계에 순응한 지역의 까치는 공존을 모색해야겠지만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면서 특히 멸종 위기종의 생태 피해가 크게 우려되는 지역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은 이젠 옛말이다.
유해 외래종이 입히는 세계 경제 피해액 한 해 560조 원
국립환경과학원은 2007년 제주 까치를 ‘생태계 교란 야생동물’로 지정하도록 권고했다. 또 제주특별자치도는 2009년 아예 까치의 알을 제거하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본래의 서식지를 벗어난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부 외래생물은 급속히 그 개체수를 확산하며 새롭게 정착한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외래 생물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생태계 교란 생물은 외래 생물 또는 외래 생물이 아니더라도 특정 지역에서 생태계의 균형을 교란하거나 교란할 우려가 있는 생물 등을 말한다. 환경부는 1998년 2월 황소개구리, 파랑볼우럭(블루길), 큰입우럭(배스) 등 3종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했다. 이후 그 수가 늘어 현재 총 37종이 지정돼 관리하고 있다.
유해 외래종 확산은 이제 전 세계 모든 지역에서 겪는 문제다. 2023년 9월 유엔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인간 활동에 따라 서식지를 옮기게 된 외래 생물종은 3만 7000여 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3500종은 (생태계를 위협하는) 침입 외래종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49개 나라의 86개 연구팀이 벌인 조사 결과를 종합한 보고서는 적어도 218종의 외래종이 1200여 생물종의 멸종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또 “유해 외래종의 급증으로 경제적 피해가 1970년대 이후 10년마다 4배씩 늘고 있다”며 2019년 기준 한 해 피해액 규모가 4230억 달러(약 560조 원)를 넘는 것으로 추산했다. 결국 사람이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알지 못하고 자연에 개입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외래 생물을 고의로든 우연이든 새로운 지역으로 함부로 옮기는 것은 해당 지역의 농업이나 재래종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번 쏟은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한번 유입된 생태계 교란종은 회수나 소멸이 어렵다. 따라서 외래종의 유입을 최대한 방지하는 게 상책이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