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5일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한 우주 발사체 ‘누리호(KSLV-Ⅱ)’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가운데 ‘우주 보안을 사전에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주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주·보안 전문가들의 제언이 나오고 있다. 우주기술이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과학 등의 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함에 따라 보안이 허술하면 위성 해킹을 비롯해 정보 탈취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주는 과거 냉전시대부터 미국과 소련 간 정보 탈취·염탐의 도구이자 군사력을 알리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의 무대였다. 비밀 우주선이 다른 나라를 염탐하는 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22년 8월 4일 창정2F 로켓에 실려 발사된 후 276일간의 궤도 비행을 마치고 지난 5월 8일 지구로 귀환한 중국의 비밀 우주선도 그중 하나다. 이 우주선은 무인 우주왕복선이라는 사실만 알려져 있다. 우주선의 이름, 관련 사진, 기술 자료, 비행 궤도, 용도, 제원 등 모든 것이 비공개다. 중국 우주 전문가들은 비밀 우주선 기술이 너무 발전한 상태라서 정보 공개를 꺼릴 수 있다고 어림짐작한다.
미국 비밀 우주선 X-37B는 908일로 우주 비행 신기록
한편에서는 중국의 이번 비밀 우주선 비행은 수년간 궤도에 머물 미군의 우주왕복선 ‘X-37B’와 흡사한 우주선을 개발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X-37B와 크기, 디자인이 비슷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X-37B는 태양광을 동력으로 하는 원격조정 무인 비행체다. 2010년 4월 첫 발사 후 지금까지 여섯 차례 발사됐다. 발사될 때마다 비행시간을 늘렸고 특히 6차에는 무려 908일간이나 궤도에 머물다 2022년 11월 지구로 귀환한 바 있다.
미군이 운용하는 X-37B 역시 정확한 임무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미군은 태양열을 극초단파 에너지로 전환하는 등 과학 실험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일부 공개되는 과학 실험 내용 외에 비행 궤도의 세부 사항이나 임무 종료 시기에 대해 사전에 공지하지 않는다. 다만 중국과 달리 X-37B의 외관 사진과 제원 등은 공개했다. X-37B는 전체 길이 8.8m, 높이 2.9m, 날개 길이 4.6m로 2011년 퇴역한 유인 우주왕복선을 4분의 1로 축소한 모양이다.
세계는 X-37B를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X-37B가 지구 궤도에서 장기간 비행하는 건 비밀 임무 수행 때문이라는 추측이 끊이질 않는다. 일부 전문가는 X-37B나 중국의 비밀 우주선을 다른 나라의 정보를 수집하거나 군사적 목적을 위해 쏘아 올렸다고 말한다.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X-37B를 비밀 공격 무기로 간주한다. X-37B가 중국의 국제우주정거장을 염탐했다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군은 X-37B가 지구 상공 240~800㎞의 저궤도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된, ‘재사용 가능한 우주선 기술’과 ‘지구로의 귀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축한다.
우주왕복선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선이다. 인류의 우주비행과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및 운영, 우주에서의 과학 연구 등 다양한 임무를 지원할 목적으로 설계됐다. 반면 지상의 목표물이나 우주정거장, 적의 위성을 공격하는 우주 군사용으로 활용도 가능하다. X-37B나 중국의 비밀 우주왕복선을 첩보위성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각국의 유명 첩보위성, 5㎝ 물체도 식별
다른 나라 엿보기의 일등공신은 첩보위성(스파이위성)이다. 웬만한 선진국에서 다 첩보위성을 띄우고 있는 요즘의 상황은, 우주 공간에서 소리 없는 공격이 벌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의 나라 주요한 건물을 사진 찍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공격이다. 그것은 마치 상대방에 무기를 들이대고 위협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첩보위성에는 크게 정찰위성, 조기경보위성, 도청위성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찰위성이다. 정찰위성은 지상을 들여다보며 적의 동향이나 지형을 살피는 일을 한다. 자기 궤도에서 셔터만 눌러대지 않고 때때로 급격하게 운동해 최대한 지구 가까이 내려온다. 정찰위성은 보통 고도 300~600㎞의 저궤도에 위치하는데, 어느 지역에서 누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내려면 고도가 낮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성이 지면과 가까워질수록 영상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미군의 정찰위성 KH(Key Hole)-12도 평상시에는 600㎞의 고도에 있다가 목표가 정해지면 200~300㎞ 아래로 내려와 목표 지점의 영상을 촬영하고 제자리로 올라간다. 최고 광학카메라로 15㎝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해낸다. 15㎝급 해상도면 지상의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내고 자동차 번호판도 읽는다. 성능이 향상된 KH-13, 14는 5㎝의 물체도 식별한다.
러시아의 정찰 첩보위성 코스모스-2428 또한 20㎝의 해상도로 한반도는 물론 미국, 일본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살피고 있다. 프랑스는 헬리오스(HELLIOS) 시리즈를 발사해 감시 중이고 이스라엘은 오펙을 발사해 자신들의 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정찰위성이 가장 앞선 나라는 일본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해 일본을 분노케 만든 것이 계기가 돼 2003년 첫 첩보위성 H-2A를 쏘아 올렸다. 현재는 7개 정찰위성이 지상을 감시하며 비밀리에 한반도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년 내 다량의 정찰위성 배치’ 계획을 밝혔다. 5월 31일 북한은 한미 동향 파악을 위한 군사정찰위성 1호기를 쏘아 올렸지만 실패하고 2차 발사를 예고했다.
우리나라도 북한을 감시할 30㎝급 군용 정찰위성 5기를 개발하는 ‘425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425는 고성능 영상 레이더인 ‘사(SAR)’ 레이더 탑재 위성과 ‘전자광학 이오(EO)’ 및 ‘적외선장비 아이알(IR)’ 위성의 영어 발음을 딴 합성어다. 2023년 하반기에 1호기 발사가 목표다. 누리호 3차 발사 성공에 이어 곧 우주로 띄울 우리의 첩보위성도 기대해보자.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